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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박영한 중편소설 『카르마』

by 언덕에서 2013. 8. 6.

 

 

박영한 중편소설 카르마 

 

 

 

 

 

박영한(朴榮漢. 1947 ~ 2006)의 중편소설로 2002년 [이름출판사]에서 간행되었다. 이 작품 이후 위암 수술은 받은 작가는 투병 중 사망했고 이 소설은 그의 유작(遺作) 이 되어버렸다.

 윤회의 질곡에서 서성대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해 본 적이 있는가? ‘카르마’는 산골 오지에서 만난 사지가 절단된 남자, 그의 집 뒷방에 사는 정신박약 부부 등의 일상을 그렸다. 실존 인물인 산골 가족들과 섞여 한겨울을 나는 동안 주인공인 중년 소설가는 신산했던 자신의 성장기와 가족사를 떠올린다.

 관절염으로 걸을 수 없어 바닥을 기어 다녔던 어머니, 학자이자 시인으로서 재능을 타고났으나 동냥자루를 메고 방랑자로 떠돌다 길거리에서 삶을 마감한 이복 맏형, 병으로 요절한 둘째 형, 극심한 빈곤 속에서 아직 명줄이 끊어지지 않은 아들을 내다버려야 했던 아버지 등 작가 자신의 고통스러운 기억들이 산골 생활을 통해 되살아난다.

 

 

소설가 박영한( 朴榮漢.  1947 ~ 2006)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우연히 강원도 산골의 오지 마을을 지나던 소설가인 주인공이 자신도 모르는 어떤 이끌림에 의해 박씨의 민박집에 머물게 된다.  낯선 듯 낯설지 않은 ‘모진 목숨들’이 살고 있는 그 집에서 곁방살이를 하면서 이야기는 전개된다. 주인공 ‘완’은 산골 오지 마을 민박집에서 가족이라는 굴레로 얽힌 가족들의 모습에서 자신의 부모형제 환생을 만난다. ‘몽당한 절굿공이 같은 팔’을 가진 민박집 주인 박씨와 ‘머저리 같은’ 박씨의 형 내외가 바로 그들이다.

 박씨는 심한 관절염으로 땅을 기어 다니며 ‘축생 같은 생애를 살다간’ 어머니를, 박씨의 형은 광기를 주체하지 못한 채 요절한 둘째 형과 태생적 설움을 극복하지 못하고 가출한 이복 맏형의 모습을 닮아 있다.

 민박집에서 주인공은 그동안 미처 깨닫지 못했던, 아니 생각조차 하기 싫었던 자신의 가족사를 되돌아본다. 마치 오래된 활동사진을 보는 것처럼, 박씨 가족의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오버랩 되는 과거 속의 그날들. 주인공이 애써 외면하고, 극복하려 했던 가족들은 바로 자신의 모습이었다.

 두 달여간 민박집에 머물던 주인공이 사라진 박씨 형에 대한 부담감을 떨치러 떠나려 할 때 박씨의 반응은 이야기의 클라이맥스를 이룬다. 박씨의 입에서 터져 나오는 주인공에 대한 원망은 마치 주인공의 죽은 어머니와 형이 자신에게 퍼붓는 것으로 들린다. 어머니에게 형에게 폭력을 가하고, 그들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자 했던 주인공에 대한 원망이 박씨의 입을 통해 적나라하게 터져 나오는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주인공은 과거의 자신이 아니라는 것이다. 원래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자에겐 길을 장애도 많은 법이라며 모든 걸 자신의 탓으로 돌릴 정도로 변화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끊으려야 끊을 수 없는 자신의 과거와 화해를 시도한다. 그것은 바로 윤회를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다. “임자 없는 무덤이 어디 있으며, 전생 없는 현재가 어디 있겠소”라면서.

 몇 달 후 가족과 함께 다시 찾아온 민박집에서 주인공은 또 다른 환생을 본다. 딸의 얼굴에서 죽은 어머니와 자신의 모습을 본 것이다. 전생 같기도 하고 내세 같기도 한 윤회의 흔적들. 소설 속 주인공이 스스로에게 의문을 던졌던 것처럼, 과연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이곳은 전생인가, 현생인가, 내생인가? 

 가족사를 통해 윤회 사상을 관통하고 있는 이 소설은 윤회를 모티브로 실상과 허상의 경계가 어디인지를, 그것이 있기는 한지를 묻고 있다.  소설가 박영한은 그야말로 소설 보다 더 소설 같은 불우한 인생을 산 사람이다. 박씨의 형을 ‘거대한 짐승’으로 착각한 주인공은 그가 짐승이 아니라 사람이었음을 알고 <선가귀감>의 한 구절을 떠올린다.  

 

우습구나 이 몸뚱이

아홉 개의 구멍에선 늘 더러운 물이 줄줄 흐르고

온갖 종기가 한 조각 엷은 가죽에 싸였구나

가죽 주머니엔 오물이 하나 가득

피고름조차 뭉쳐 있구나

우리 몸뚱이란

냄새나고 더럽고 하찮은 것

탐내고 아낄 게 아니로다

 

 

 

 인간이란, 아홉 개의 구멍에서 오물을 흘리는 존재라는 사실을 꿰뚫은 서산대사의 가르침은 주인공 ‘완’에게만 아니라 읽는 이에게로 전이된다. 주인공이 바라본 박씨의 형은 어쩌면 우리의 실상이며, 그것을 바로 알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주인공과 결코 다를 바가 없다.

 이 작품은 작가가 이 작품을 쓰기 4년 전 강원도 산골 오지에 몇 달간 머문 경험을 토대로 썼던 걸로 알려져 있다. 「카르마」는 산골 오지에서 만난 사지가 절단된 남자, 그의 집 뒷방에 사는 정신박약 부부 등의 일상을 그렸다. 실존 인물인 산골 가족들과 섞여 한겨울을 나는 동안 주인공인 작가는 신산했던 자신의 성장기와 가족사를 떠올린다.

 관절염으로 바닥을 기어 다녔던 어머니, 학자이자 시인으로서 재능을 타고났으나 동냥자루를 메고 방랑자로 떠돌다 삶을 마감한 이복 맏형, 병으로 요절한 둘째 형,극심한 빈곤 속에서 아직 명줄이 끊어지지 않은 아들을 내다버려야 했던 아버지 등 작중 주인공의 고통스러운 기억들이 산골 생활을 통해 되살아난 것이다.

 자식들에게조차 외면당했던 거동이 불편한, 고독한 어머니와 역시 고독함으로 자신을 술로 해치고 있는 집주인 남자는 오버랩 되며 ‘나’를 끊임없이 죄의식의 구덩이로 몰아간다.

 

 

 

‘모든 것들이 결국은 윤회생사의 긴 과정에 끼어든 한 토막 삽화였으며, 그 삽화의 연장이 나를 비롯한 중생들의 현재 모습임을 이 나이 되어서야 깨닫게 되다니…’.

 

 방심한 채 무심히 놓아둔 마음이 날카롭게 저며 오거나 흐린 미소로 입가를 스쳐 지나갈 때, 낯선 사람에게서 내 속에 묻어 둔 어떤 이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때, 순간 아득하고 묘한 기분에 휩싸여본 적이 있을 것이다.

 작가는 과거를 들추고 상처를 갈무리하는 과정에서 ‘어머니 - 나 - 딸’로 이어지는 업(業)의 고리를 확인한다. 산골오지의 체험과 자전적 이야기가 소설의 바탕을 이루는 가운데 작가는 범신론적 우주관을 동반한 ‘나’에게 어머니와 형제들은 등짐처럼 진 ‘카르마(업·業)’였던 것이다. ‘  

 

 

 

 

 

  

 

 

 

 


 

 

☞박영한(朴榮漢.1947.9.14∼2006.8.23) 소설가. 경남 합천 출생. 이후 부산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어머니의 질병과 어려운 가정 사정으로 인해 부산의 여러 지역을 사글세로 전전하는 한편,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3년간 공장 및 부두 노동자, 거리의 악사, 가정교사 등 부랑 생활을 하면서 문학의 꿈을 키웠다.

 1970년 부랑 생활을 마치고 연세대학교 국문과에 입학하였으나 곧 휴학하고 군에 입대한 뒤, 궁핍하고 절망적인 상황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베트남전쟁 파병에 자원하였다. 1976년 30세의 나이로 대학교를 졸업하고, 이듬해 베트남전쟁의 체험을 담은 중편소설 <머나먼 쏭바강>이 [세계의 문학]에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1978년 <머나먼 쏭바강>을 장편소설로 개작해 출간하자마자 단숨에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소설가로서 입지를 굳히고, 이후 창작에 전념하였다.

 1988년과 1989년에는 젊은 시절에 도농(都農)의 접경지대를 떠돌며 관찰하고 체험한 생활을 바탕으로 <왕룽일가>와 <우묵배미의 사랑>을 잇달아 출간해 도농 접경지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해학적이고 걸쭉한 입담으로 풀어 내 한국 세태 소설의 한 계보를 형성하였다.

 동의대 문예창작과 교수 역임. [오늘의 작가상](1978), [동인문학상](1988)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