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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현기영 중편소설『순이 삼촌』

by 언덕에서 2013. 9. 12.

 

 

현기영 중편소설순이 삼촌

 

 

 

 

 

현기영(玄基榮.1941∼ )의 중편소설로 1978년 계간지 [창작과 비평]에 발표되었다. 이듬해인 1979년 11월 작가는 첫 창작집 「순이 삼촌」을 펴냈다. 그 표제작이 문제가 돼 며칠 후 그는 합동수사본부에 연행돼 2박 3일간 모진 고문을 받으며 집필 동기를 기술해야만 했다. 제주도 출신으로서 아직도 제주 도민을 죄고 있는 4ㆍ3사건의 원(怨)을 풀려다 현씨는 필화를 겪은 것이다.

 제주 출생의 소설가와 시인들은 누구보다 고통을 느끼면서 작품을 쓴다고 한다. 현기영, 현길언, 문충성, 고원정씨 등이 그들인데 그들의 어깨 위에는 한결같이 4ㆍ3사태라는 짐이 올려져 있다. 그들 중에서도 현기영씨는 제주도민들의 아픔을 가장 많이 작품화한 작가로 유명하다.

 중편소설 「순이 삼촌」은 4ㆍ3사건 때 벼락같은 총질 속에서도 용케 살아남아 목숨을 부지하고 있던 순이 삼촌의 이야기를 소설화한 작품이다. 순이 삼촌이 자식이 둘이나 묻힌 옴팡 밭에서 사람의 뼈, 탄환 등을 골라내며 평생을 살아오다가 어느 날 꿩약을 먹고 자살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야기는 비록 소설이지만, 북제주군 북촌리의 마을에서는 의외로 할아버지보다 할머니들이 많은 데서도 사연을 유추할 수 있고, 같은 날 같은 시간에 제사 지내는 집이 많은 데서도 슬픈 사연을 짐작할 수 있다. 낭만과 환상의 섬에 역사의 비극이 점철돼 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나는 고향인 제주도의 어느 동네에 줄줄이 제사가 있는 날 고향을 방문한다. 나는 서울의 자기 집에서 집안일을 봐주다 사라진 순이 삼촌이 자살했음을 알게 된다. 제사 때문에 모인 친척들은 순이 삼촌의 죽음을 놓고 이야기하면서 자연스레 1948년 그날에 일어났던 일을 이야기하게 되었다.

 음력 섣달 열여드렛 날, 그 마을에 군인들이 와서 연설을 들으러 국민학교 운동장에 모이라고 하였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 다 그렇게 국민학교 운동장에 모아 놓았는데, 약 천 명이 넘는 숫자이었다. 그런데 정작 연설은 안 하고 군인 가족들을 나오라고 하였다.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을 교문 밖으로 끌고 가서 모조리 총으로 쏘아 죽였다. 마을에서는 집집마다 불길이 치솟아 오르고 있었다. 그때 사람들을 모아놓고 죽인 장소가 바로 순이 삼촌네 밭이었다. 순이 삼촌은 바로 그곳에서 유일하게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사람이다.

 오늘이 바로 그 날이다. 해마다 오늘이면 온 동네가 제사를 지내는 것이다. 친척들은 그때 중대장이라는 사람이 작전이라고 말한 것을 놓고, 또 한 시간 후에 대대장이라는 사람이 와서 총살 중지 명령을 내렸던 것을 놓고 누구의 책임인지를 왈가왈부하고 있다. 당시 토벌대원으로서 서북 청년이었던 고모부만 그 당시를 변명의 투로 말하고 나머지는 모두 분노하고 있었다. 특히 길수 형은 흥분해서 그 진실을 밝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어쨌든 그런 와중에서 순이 삼촌은 기적적으로 살아남았으나, 그 후 순이 삼촌은 그 충격으로 정상적이지 못한 정신 상태를 가지고 살아왔다. 그리고 이제 순이 삼촌이 죽음을 택한 곳은 바로 수십 년 전 자신이 쓰러졌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옴팡 밭이었다. 

 그 옴팡 밭에 붙박인 인고의 30년 세월이 흘렀다. 30년이라면 그럭저럭 잊고 지낼 만한 세월이건만, 순이 삼촌은 그러질 못했다. 흰 뼈와 총알이 출토되는 그 옴팡 밭에 발이 묶여 도무지 벗어날 수 없었다. 당신이 딸네 모르게 서울 우리집에 올라온 것도 당신을 붙잡고 놓지 않는 그 옴팡 밭을 팽개쳐 보려는 마지막 안간힘이 아니었을까?

 그러나 그 오누이가 묻혀 있는 그 옴팡 밭은 당신의 숙명이었다. 깊은 소(沼) 물귀신에게 채여 가듯 당신은 머리끄덩이를 잡혀 다시 그 밭으로 끌리어 갔다. 그 죽음은 한 달 전의 죽음이 아니라 이미 30년 전의 해묵은 죽음이었다. 당신은 그때 이미 죽은 사람이었다. 다만, 30년 전 그 옴팡 밭에서 구식 총구에서 나간 총알이 30년이 우여 곡절한 유예를 보내고 오늘에야 당신의 가슴 한복판을 꿰뚫었을 뿐이다.

 

 

「순이 삼촌」은 제주도 북제주군 조천면 북촌리의 마을 이야기라 해도 과언이 아닌데, 이곳의 해변에도 제주의 파도는 시원스레 몰아친다. 봄에는 언덕마다 제주의 어느 지역보다 고운 유채꽃이 만발하고 더운 날에는 바로 옆 함덕 해수욕장에 육지 사람들이 몰려와 해수욕을 즐기는 것이 바로 북촌리의 풍경이다.

 처참한 비극을 오랜 세월 싸안고 있다가 나온 작품이 바로 「순이 삼촌」이다. 이 글을 이끌어가는 화자의 친척인 순이 삼촌(제주도에서는 촌수를 따지기 힘든 가까운 친척을 흔히 삼촌이라고 부른다)은 제주도 4ㆍ3항쟁의 혼란 속에서 두 아이를 잃고 기적적으로 살았으나, 평생을 죽은 목숨처럼 살아간다. 그때의 상처가 끝내는 정신병이 되고 결국 순이 삼촌은 자살하고 만다. 그 죽음의 의미와 역사의 진실을 밝혀 가는 과정이 이 소설의 줄기를 이루고 있다.이 작품은 발표된 뒤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1978년에 발표된 현기영의 중편 「순이 삼촌」은 30년 간 동안 묻혀있던 4ㆍ3 사건의 진실을 거의 최초로 공론화한 문제적 소설이다. 비록 이 소설로 인해 작가 자신은 보안사에 끌려가 끔찍한 고문을 당하고 책도 발매금지되는 고초를 겪었지만, 이 작품이 지닌 문학사적ㆍ역사적 의의는 그로 인해 더한층 막중해졌다.우리 역사에는 해방 뒤 분단과 전쟁으로 일어난 처참한 비극이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이 땅 곳곳에서 양민들이 좌ㆍ우익 이념의 대립으로 죄없이 죽어갔고, 씻을 수 없는 상처를 가슴에 안았다. 우리 입에 흔히 오르내리는 거창 양민 학살 사건, 여순 반란 사건, 지리산 빨치산들의 저항과 죽음 등, 분단과 관련된 역사의 비극은 수십 년 세월이 지난 지금도 불투명한 모습으로 우리 역사에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그 중에서도 남쪽에 홀로 떨어진 큰 섬 제주도에서 일어난 4ㆍ3항쟁의 비극은 아직도 많은 부분이 가려진 채 제주 도민의 가슴에 상처로 남아있다.

  4ㆍ3사태라 불리기도 하는 4ㆍ3항쟁은 1948년 4월 3일 제주도에서 일어난 좌익 세력의 무장 봉기를 말한다. 이 사건을 그 껍질만 본다면 ‘공산주의자들의 폭동’이라는 식으로 매도해 버릴 수 있겠지만, 당시 제주도민의 정서와 처지, 그리고 제주도에 흐르고 있던 민족의식을 생각해 보면, 4ㆍ3항쟁은 무자비한 진압에 맞서 자신과 가족의 생명을 지키려는 싸움이었다.

 

 

 

 

☞현기영. 민족문학의 대표적인 작가. 1941년 제주 출생. 서울대 영어교육과를 졸업한 뒤, 20여 년간 교직에 몸담았다. 197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아버지」가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으며, 제5회 신동엽창작기금, 제5회 만해문학상, 제2회 오영수문학상을 수상했다. 그 후, 1999년 『지상에 숟가락 하나』로 한국일보문학상을 수상했다. 사단법인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장과 한국문화예술진흥원장을 역임했다.

 주요 저서로는 소설집 『순이삼촌』, 『아스팔트』, 『마지막 테우리』, 장편소설 『변방에 우짖는 새』, 『바람타는 섬』『누란』, 산문집 『젊은 대지를 위하여』, 『바다와 술잔』 등이 있다. 깊이 있는 주제와 중후하고 개성 있는 문체로 오늘의 삶의 의미를 되새기는 그의 작품들은 우리에게 깊은 울림과 감동을 전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