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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현대소설

김은국 장편소설 『순교자(殉敎者.The Martyred)』

by 언덕에서 2013. 4. 18.

 

 

김은국 장편소설 『순교자(殉敎者.The Martyred)』

 

 

 

 

 

재미교포 작가 김은국(金恩國.1932∼2009)의 영문 장편소설로 1964년 발표되었다. 원제명은 ‘The Martyred’(George Braziier Inc., N.Y.C., 1964)이다. 영문으로 된 이 소설은 1965년 영문학자 장왕록이 한국어로 번역하여 [삼중당]에서 간행하였다. 이어 1990년 저자 자신이 한국어판 「순교자」를 [을유문화사]에서 간행하였다.

 이 작품은 한국계 최초로 [노벨 문학상] 후보에 오른 재미작가 김은국의 대표작이다. 6·25전쟁 당시 평양을 배경으로, 이념의 대립이 빚어낸 비극적 사건의 진실을 밝혀나가며 그 과정에서 겪는 신앙과 양심의 갈등을 그려냈다. 

 한국의 비극적 역사 속에서 발생한 특수한 사건을 인간의 실존과 보편적 운명이라는 세계 문학적 주제와 연결시켰으며, 이를 추리 소설적 요소를 이용해 풀어낸 흡입력 강한 작품이다. 6ㆍ25전쟁을 배경으로 신과 인간의 관계를 다룬 종교소설로서 일약 미국의 베스트셀러가 되어 독일어로도 번역되었다. 1965년 유현목에 의해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재미교포 작가 김은국(金恩國.1932-2009)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대학 강사를 지낸 이 대위는 육군특무대로 평양에 파견되어, 육군본부 파견대 정보국장 장 대령의 휘하에서 근무한다.

 그러다가 6ㆍ25 당시 12명의 목사가 평양에서 순교한 사실을 조사하게 된다. 6·25전쟁 직전 평양에서 열네 명의 목사가 공산군 비밀경찰에 체포되었는데 그중 열두 명은 총살당했고, 살아남은 자는 단 두 명뿐이다. 1950년 11월, 국군의 평양 입성 후 육군본부 정보처 평양 파견대의 장 대령은 ‘나’(이 대위)와 함께 열두 명의 ‘순교자’들에 관한 사건을 수사하기 시작한다. ‘나’에게 맡겨진 임무는 생존자 중 한 명인 신 목사를 찾아가 사건의 진상을 알아내는 것이었다. 그러나 신 목사는 그 사건에 대해 잘 모른다고 하며 대답을 회피한다. 차차 조사 과정에서 순교자들의 신앙과 순교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캐어 들어간다.

 이와는 달리 장 대령은 공산당에게 희생당한 12명의 순교자를 애국적인 관점에서 추모식을 크게 거행하여 평양의 신도들과 시민들에게 자유민주주의의 우월성과 정신적 승리를 알려주려고 하는 국가주의적 견지를 보인다. 목사 살해 사건을 정치 선전의 목적으로 이용하려던 장 대령은 살해된 열두 명의 목사들을 ‘순교자’로 규정하고 추도예배를 계획한다. 그러던 중 신목사가 자신이 열두 목사들의 처형 현장에 있었다고 발표하면서 사건 관련자들을 혼란에 빠뜨린다.

 그런데, 애초에 14명의 목사가 체포되어 12명은 순교하였으나 신 목사와 한 목사는 생존하였다는 사실을 알고 이 대위는 이 두 생존자를 찾아 순교자들의 최후의 모습과 그 신앙의 진실성을 확인하는데 마음을 기울인다. 여기서 이 대위는 진실을 추구하는 진지한 자세와 냉철한 지성의 소유자로 형상화되고 있다.

 이 대위의 친구인 해병대 장교 박 대위는 그 아버지가 지나치게 신앙에 충실한 독선적 광신자였으므로 인간미가 결여된 병적인 인물로 보고 사실상 두 부자는 의절한 상태로 서로 떨어져 지낸 사실이 알려진다. 박 대위는 12명의 순교자 속에 그의 아버지가 들어있음을 듣고도 오히려 존경심보다는 광신적인 신자들이 으레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중에 신 목사의 편지에 박 목사가 아들을 지극히 사랑한 사실과 자신이 추구하는 신앙의 궁극적 의미와 아들이 전공하는 역사학이 특수 사건에서 보편적 진실을 탐구할 때 봉착될 인류의 종말문제와 이념적 거리가 그리 멀지 않음을 말한 사실이 밝혀진다. 그리고 최후로 공산당원에 의하여 처형되면서 “기도할 수 없어”라고 말한 데서 그 아버지의 인간적인 고뇌가 담김을 깨닫고 박 대위는 순교한 아버지와 정신적 화해를 이룬다.

 한편, 박 목사의 신앙심에 감동하고 따르던 젊은 한 목사는 마지막 처형장에서 박 목사가 기도를 거부한 사실에 충격을 받고 정신이상자가 되어 사형은 면하였으나 폐인이 된다.

 순교자들에 관한 진실과 목자로서 사명감 사이에서 갈등하던 신 목사는 마침내 굳게 닫았던 입을 연다. 신 목사의 생존에 관하여는 배신자라는 많은 의혹 속에 신도들의 집단항의를 받지만 12명의 처형을 목격한 공산군 정 소좌가 체포되고, 그의 실토에서 목사들이 비굴하게 죽었으나 오직 신 목사만이 당당하게 공산 당원에게 저항하여 오히려 죽음을 면하였다는 진상이 밝혀진다.

  

 

영화 <순교자> 1965 제작

 

 

 이 소설은 신 목사의 인간적인 성숙성과 신앙인으로서의 겸허한 자세가 절제 있고 지적인 문장으로 잘 묘사되어 있다. 특히, 중공군의 개입에 의하여 극심한 고난에 처한 피난민 신도들에 대한 헌신적인 노력의 과정과 이 대위와 장 대령의 권고를 물리치고 서울로 피난가지 않고 병든 몸을 이끌고 절망에 빠진 노약자들을 보살핌으로써 그의 고결한 인간애의 정신이 번져나게 하였다.

 소설에 등장하는 가장 주목되는 인물은 신 목사이다. 그는 극심한 절망과 고통에도 오히려 패배하지 않고 신앙의 의미를 깨닫고 실천하며 신앙적 교리의 요구와 현세적·역사적 필연성의 요구에 충실하는 삶의 자세를 보여준다.

 군의관 민 소령에게서도 중공군의 개입으로 평양이 텅빈 상태에서 후퇴하다가 중지하고 중환자를 위하여 야전병원으로 복귀하는 감동스러운 직분의식과 그 인간주의의 고결한 사상적 실천을 보게 된다.

 이 대위는 신이 침묵하는 시대의 지성인으로서 인간주의를 수호하는 지식인상으로 제시되고, 신 목사는 역시 신이 침묵하는 시대에 고통과 절망의 역사적 현장에 서서 신의 섭리로써 인간답게 살아갈 지혜를 구하는 숭고한 교역자상으로 나타나 있다. 이 작품은 위난의 역사적 상황에서 인간주의의 구현을 이야기로 펼쳐 보인 작품으로서 진지한 도덕적 책임을 추구한 걸작이라고 평가된다. 이른바 상황에 투신하는 도덕적 결단을 형상화한 주제가 보편적 진실의 감동으로 창조되었다.

 

 

 작가 김은국은 1932년 함경남도 함흥의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났다. 평양고등보통학교를 다니던 중 해방을 맞이했고, 1947년 북한에 공산정권이 들어서자 가족 전체가 남한으로 내려와 목포에 정착했다.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자 군에 입대, 미군 사령관 아서 G. 트루도 소장의 부관으로 근무하다가 제대 후 1955년 트루도 소장의 도움으로 미국으로 건너갔다. 아이오와 대학교, 존스 홉킨스 대학교 등에서 문학 및 창작 석사학위를 받은 후 대학 강의와 소설 집필을 병행하던 그는 1964년 첫 소설 『순교자』를 발표했다. 전쟁이 일어난 지 14년, 작가가 한국을 떠난 지 9년 만의 일이었다.

 6·25전쟁을 배경으로 이념의 대립이 만들어낸 열두 명의 ‘순교자’를 둘러싼 진실을 미스터리 형식으로 추적해나가는 이 작품은 출간 즉시 미국 언론과 문단의 관심을 끌었다. 작가 펄 벅은 “신앙을 갈망하는 데서 비롯되는 의혹과 고뇌를 다루는 어려운 일”을 해냈다며 격찬을 아끼지 않았고, [LA 타임스]는 『순교자』를 “위대한 소설이라 부를 수 있는 20세기 작품군에 포함될 만한 작품”이라 칭하기도 했다. 장편소설 『순교자』는 대중적으로도 큰 인기를 모아 미국 전역에서 20주 연속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켰고, [내셔널 북 어워드] 최종심까지 올랐다. 또한 김은국은 이 작품으로 한국계 최초로 [노벨 문학상] 후보에 올랐다. 세계 10여 개 언어로 번역, 출간되었으며, 1965년 고 유현목 감독에 의해 영화화되었고 연극으로 여러 차례 각색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