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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현대소설

카트린 클레망 장편소설 『테오의 여행((Le)voyage de theo)』

by 언덕에서 2013. 4. 3.

 

카트린 클레망 장편소설 『테오의 여행((Le)voyage de theo)』

 

 

〔이 소설에 묘사된 신전과 의식들은 모두 내가 직접 보았던 것입니다. 종교 교리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다는 아닙니다.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보지 않으면…… 자신의 귀로 징, 방울, 탬버린, 심벌즈, 플루트, 키타라 소리를 듣지 않으면…… 자신의 코로 백단향, 용연향, 녹은 버터, 막대 향, 타는 장작 냄새를 맡지 않으면, 종교를 제대로 알 수 없습니다.〕 ― 한국어판 서문 중.

 

 

 

 

 

프랑스 소설가 카트린 클레망(Catherine Clement, 1939~ )의 장편소설로 1998년 발표되었다. 클레망은 유대교 혈통으로, 2차 세계대전 직전 파리에서 태어나 자랐다. 조부모는 아우슈비츠에 끌려가 돌아오지 못했고, 프랑스에 정착해야 했던 클레망의 어머니는 반(反) 유대주의에 대한 두려움으로 클레망을 가톨릭학교에 보냈다. 그런데 클레망은 절실한 가톨릭 신자가 되는 대신, ‘신이 있다면, 왜 아우슈비츠를 내버려두었을까?’ ‘자신들의 신념을 위해 다른 이를 죽이려는 자들을 왜 말리지 않는 걸까?’ 같은 신의 존재에 대한 고민으로 학창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끊임없이 신에 대해 생각해온 클레망은 이후 외교관인 남편을 만나 결혼했고, 전 세계를 돌아다녔다. 그 덕분에 그녀는 우리에게 익숙한 세 일신교(유대교, 이슬람교, 그리스도교) 뿐만 아니라, 세계의 수많은 종교를 ‘현장’에서 체험할 수 있었다. 격렬하고 때로는 평온한 종교 현장에서 클레망이 얻은 것은 당연하고도 평범한 진리, 바로 서로에 대한 신뢰와 사랑 그리고 관용이었다. 그리고 그 생생한 험을 토대로 소설 『테오의 여행』을 써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열네 살 테오는 다정한 가족과 함께 평온한 삶을 살고 있었다. 그런데 어려서부터 줄곧 몸이 약해 어머니를 걱정하게 했던 테오는 결국 불치병에 걸리고 만다. 순식간에 학교도 쉬고 집과 병원만 오가는 신세가 되어 울적해진 테오에게 뜻밖의 손님이 찾아온다. 하나뿐인 고모 마르트가 찾아온 것이다. 마르트 고모는 전 세계를 돌아다니는 괴짜로, 파리의 식구들에게 얼굴을 비추는 일은 아주 드문 일이었다. 그런 고모가 테오의 소식을 듣고 한달음에 달려온 것이다. 갑자기 나타난 고모는 천연덕스럽게 테오를 데리고 세계 여행을 떠나겠다고 하면서, 여행만이 테오를 낫게 할 수 있다고 고집한다.

 사실 테오네 가족에게는 한 가지 비밀이 있다. 원래 테오의 어머니는 쌍둥이를 가졌었지만 출산하면서 테오만 살아남았던 것이다. 온 가족은 테오가 충격을 받을까 두려워 그 사실을 숨기는 데 전전긍긍했다. 마르트 고모는 바로 이 비밀 때문에 테오가 병이 난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최대한 집에서 멀리 떨어져 있으면 회복될 거라고 여긴 것이다. 의사들이 더는 가망이 없다며 두 손을 들고 집으로 돌려보냈기에 테오의 부모도 복잡한 마음으로 여행을 허락한다.

 그런데 이 여행은 준비 과정부터 의미심장했다. 분명히 아주 오랫동안 여행을 떠난다고 했지만, 아무도 테오에게 어디로 가게 될 건지 알려주지 않았다. 온 가족이 테오만 빼놓고 여행 준비를 했다. 테오가 알고 있는 것은 단 한 가지, 고모가 내는 수수께끼를 풀어야 다음 여행지가 어딘지 알 수 있다는 것이었다.

 세 일신교인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가 교차되는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된 테오의 여행은 힌두교와 불교, 중국의 도교와 일본의 신도, 수피즘, 아프리카의 민속 종교, 브라질의 다신교와 아메리카 아프리카인의 침례교를 거쳐 다시 체코 프라하의 유대인 게토 구역으로 돌아와 마무리된다. 유혈 충돌과 성령이 공존하는 예루살렘, 가난한 이들에게 가진 것을 베풀자는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이 무색하도록 화려하기 그지없는 바티칸을 지나, 모든 인도인의 삶이 잠긴 갠지스 강을 건넌다. 정신이 어찔해지는 부처의 미소를 맞닥뜨리고, 만개 후 흩날리며 지는 벚꽃 잎에 담긴 의미를 느낀다. 프랑스의 ‘톨레랑스(관용)’ 못지않은 수피들의 관용 정신에는 여태껏 보아온 종교끼리의 다툼과 배척이 무색해진다. 아프리카에 이르자 그때까지 만나온 ‘성령의 힘’이 드디어 발휘되는 건지, 테오를 괴롭히던 병도 기세가 꺾인다.

 

 

 

 이 소설은 학구적이고 이성적인 프랑스 소년이 ‘세계 종교 여행’을 하며 세계 주요 종교와 과학의 영역을 벗어난 토속 신앙을 맞닥뜨리는 것이 주된 골조다. 저자는 세계 종교의 역사와 현실을 알리는 것에 힘을 쏟기 위해 ‘돈이 넘치도록 많은 데다 시간도 많고 세계 문화와 역사에 해박한 마르트 고모’와 ‘너무도 똑똑하여 한 학년을 월반했기에 여행을 위해 일 년을 휴학할 수 있는 소년 테오’라는 다소 비현실적인 설정을 만들어냈다. 그런데 별다른 갈등관계를 빚지 않는 이 설정 덕분에, 오히려 독자는 저자가 전하고자 하는 바에 충실히 집중할 수 있다. 게다가 조금 더 생각해보면, 이 지나치도록 비현실적인 배경 설정을 감수하지 않고서는, 그러니까 만약 테오와 마르트 고모가 이 뿌리 깊고 복잡한 종교 전쟁의 한복판에 서 있었다면 저자가 독자들에게 보여주려 애썼던 세계 종교 상황을 제대로 전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작금의 세계 종교 상황은 그만큼 미묘하고 복잡하다.

 

 

 

 테오는 똑똑한 아이다. 처음 세계 종교 여행을 떠날 때도, 자신은 이미 책이나 학교 수업을 통해 종교에 대해 많이 알고 있다고 자부한다. 하지만 막상 현실로 마주했을 때는 자신이 알고 있던 것과 다르거나, 전혀 몰랐던 면면 때문에 놀란다. 테오가 모르고 있던 가족의 비밀, 쌍둥이의 존재를 부정했던 것 때문에 테오가 병이 났다는 마르트 고모의 추측은 소설 후반으로 갈수록 들어맞는다. 테오의 쌍둥이는 여자였다. 테오 스스로가 쌍둥이의 존재를 인식하고, 남자인 자신 안에 출생 전부터 함께 해오던 여성적 존재가 공존함을 인정하면서 테오의 몸은 물론 마음까지 평온을 되찾는다. 물론 테오가 의도적으로 쌍둥이의 존재를 부정했던 것은 아니지만, 어찌 보면 자신과 공존했어야만 하는 이 존재를 타의에 의해서 아예 모르고 지냈을 것이다. 타인의 생각, 타인의 믿음, 타인의 문화…… 역사 속에서 우리 인류는 자신의 것이 아니면 배척하고 비판하며 온갖 폭력과 전쟁을 만들어냈다. 특히 모든 이해관계가 얽힌 종교에 있어서 그 잔혹함은 극에 달했다. 지금도 종교 때문에 세계 곳곳에서 피비린내가 그치지 않는다. 그 결과 우리 역사는 이리저리 피가 묻고 멍이 들었다. 그러나 현현히 살아 숨 쉬는 세계를 만나고 쌍둥이의 존재를 분명히 인지하게 되면서 테오의 병이 치유되었듯, ‘틀림’을 ‘다름’으로 인정하고 나와 타인은 공존해야만 하는 존재임을 받아들인다면 우리의 평화도 회복될 수 있지 않을까?

 

 

 

 

 하나의 종교만 아는 자는 아무 종교도 모른다. 인정하고, 공존하고, 사랑해야 한다. 저자 클레망은 이 책 『테오의 여행』을 두고 ‘평화의 책’이라고 말했다. 주인공 테오를 세계 종교 문화의 장으로 이끄는 마르트 고모는 피비린내 나는 종교 역사를 한 걸음 물러서서 바라본다. 잔혹하고 비정한 종교 전쟁의 역사에 대한 묘사는 수도 없이 나오지만, 정작 주인공인 테오와 마르트 고모는 안락한 여행을 계속한다. 『테오의 여행』 속 테오와 마르트 고모는 평화와 차별 없는 사랑을 강조하는 원래의 종교 편에 서서, 변질되어버린 종교의 비참한 모습을 안타깝게 바라보고 있는 듯하다. 만약 그들이 그리스도교 신자였다면 선교 목적 침략의 정당성과 프로테스탄트와의 갈등, 그리스도교 교리의 목적성들을 열심히 강조하다 지쳤을 것이고, 유대교 신자였다면 시오니즘의 당위성과 빼앗긴 영토에 대한 억울함과 우상 숭배에 대한 혐오가 이어졌을지도 모른다. 무슬림이거나, 힌두교도이거나, 아니면 토속 종교를 가진 이들이었더라도 역시 자신에게 현실로 닥친 종교적 갈등 상황을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다행히도 테오와 마르트 고모는 무신론자여서, 세계 종교에 대해 해박한 지식은 가지고 있지만 어느 한 종교를 편애하지는 않는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들을 따라 ‘평화로운’ 종교 여행을 할 수 있다.

 

 

 

 우리는 종교 때문에 전쟁 중인 지구를 보면서 ‘신이 있다면 어떻게 이런 일을 내버려둘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을 가지게 된다. 저자 역시 그런 경험이 기반이 되었을 이 책 『테오의 여행』에서는 인간들로 하여금 어려운 고비를 넘을 수 있게 하는 것이 바로 서로에 대한 신뢰와 사랑 그리고 관용이라는 ‘보통의 진리’를 오랜 경험과 깊은 지식을 담아 전달한다. 주인공 테오가 전하는 긍정과 포용의 메시지는 세상에 고통과 갈등, 혼란을 일으키는 이들에게 클레망이 전하고자 하는 것임이 틀림없다.

 저자가 이 책에서 열심히 종교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종교라는 ‘존재’로는 온전히 설명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인간들의 믿음과 열정을 전하기 위해서다. 우리가 믿는 신이 하느님이든 알라든 아도나이 엘로힘이든, 아니면 코끼리나 원숭이 신이든 결국 그 안에는 삶에 대한 열정과 믿음이라는 공통된 마음이 들어 있는 것이다. 이 길고 긴 아홉 달의 여행 끝에서, 테오는 신을 믿게 될까? 아닐지도 모르겠다. 저자가 한국어판 서문에서 밝혔듯이, 테오는 수많은 신을 사랑하고 존중하게 되지만 그들을 ‘믿는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일 것이다. 소설 속에 수없이 묘사된 신전과 종교 의식들은 저자가 직접 보았던 것이다. 저자의 눈을 빌려 종교 현장을 보고, 귀를 빌려 징, 방울, 탬버린, 심벌즈, 플루트, 키타라 소리를 들을 수 있고 백단향, 용연향, 녹은 버터, 막대 향, 타는 장작 냄새도 바로 앞에서 맡는 것처럼 느낄 수 있다. 저자는 세계를 돌아다니며 보고 느꼈던 종교 현장을 테오를 통해 독자들에게도 몸소 겪게 해주고 싶었다고 한다. 『테오의 여행』 속에는 종교적 갈등도, 전쟁도 없을 것이다.

 나 자신이 그러했고 주위의 친구들도 그러했지만 청소년기에 확립되는 가치관은 평생 동안 함께 한다. 특히 자신의 교리가 절대적이라고 주장하는 대부분의 종교 교리를 만날 경우에는 도그마와 연결되기 십상이다. 이 책은 그야말로 평화의 책으로 이제 사회와 세상에 눈뜨기 시작하는 청소년들에게 다양성과 존재의 본질을 탐구하는 과정의 일환으로 이 책을 권하는 바이다. 

 

 

 

 

 


 

저자 카트린 클레망 1939년 2차 세계대전 직전 파리에서 태어나 고등사범학교를 졸업하고 1964년 소르본 대학을 시작으로 15년 동안 대학에서 철학을 가르쳤다. 1982년부터 1987년까지 프랑스 외무부 산하 예술진흥협회 회장을 지냈다. 1987년부터 프랑스 대사인 남편을 따라 인도, 오스트리아의 빈, 세네갈의 다카르에서 살았으며, 델리의 네루 대학과 빈의 대학 그리고 다카르의 셰이크 안타 디오프 대학에서 각각 영어와 프랑스어, 철학을 가르쳤다. 오랜 해외 생활을 마치고 프랑스로 돌아온 뒤 케 브랑리 박물관 민중 대학을 운영하고 있으며, 여러 잡지에서 문학 비평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여성과 성스러움』 『마르틴과 한나』 『간디』, 국내에 번역되지 않은 책으로는 『레비 스트로스』 『인도의 신들과 산책Promenade de l’Inde』 『지그문트 프로이트를 위하여Pour Sigmund Freud』 『인도의 사랑을 위하여Pour l’amour de l’Inde』 『미완성 왈츠』 『베네치아의 무어인Le maure de Venise』 『만 개의 기타Dix mille guitares』 등 정신분석학과 인류학, 예술 분야의 많은 저서와 소설을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