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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박경리 장편소설『김약국의 딸들』

by 언덕에서 2013. 11. 28.

 

 

박경리 장편소설『김약국의 딸들』

 

 

 

 

박경리( 朴景利, 1926~2008)의 전작 장편소설로 1962년 [을유문화사]에서 간행되었다. 경상남도 통영을 배경으로 한말에서 민족 항일기에 이르기까지 넉넉한 살림의 한 가정이 욕망의 얽힘과 운명에 의하여 몰락해 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어머니 숙정의 자살이 몰고 온 비극의 사슬로 인하여 김 약국(김성수)과 그의 다섯 딸들의 삶이 철저히 비극으로 끝난다. 이 작품에는 욕망의 엇갈림과 부(富)가 신흥세대로 이동하는 사회적 변동과 여성의 운명이 한데 어울려 주제화되어 있다. 한 집안의 몰락이 지닌 비극성이 사실적으로 조명된다. 

 작가의 또 하나의 대표작 『김약국의 딸들』은 작가의 경력에서 <토지> 이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작가의 첫 성공작으로 독자들의 뇌리에 박경리의 이름을 강렬하게 인식시킨 작품임은 물론, 박경리가 줄곧 추구했던 생명주의 사상의 근간이 된 작품이기 때문이다. 발표 당시, 『김약국의 딸들』은 격변하는 시대 속에서 흔들리는 인간 군상의 모습과 근대사회의 문제점들을 여과 없이 보여주며 큰 파장을 일으켰다. 전시대의 유물처럼 쓸쓸히 흘러가는 김약국과 가족을 위한 희생을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그의 부인 한실댁, 그리고 김약국의 딸들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는 우리 민족사의 축소판이다. 비극으로 치닫는 그들의 삶에서 작가는 생명에 대한 흔들림 없는 믿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후에 <토지>로 이어지는 생명주의 사상의 원형이라 할 수 있다.

 

영화 <金藥局의 딸들> , 1963 제작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선비의 성품을 지닌 김봉제는 김약국의 주인으로 부유층에 속하는 인물이다. 이에 반해, 그의 동생 봉룡은 충동적이고 격정적 성격을 지닌 인물이다. 봉룡은 아내 숙정이 출가 전 그녀를 사모했던 송욱이 찾아오자 극단적으로 시기하여 그를 죽이고 만다. 숙정은 간부(姦夫)를 두었다는 의심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살을 하고 만다. 이 사태로 봉룡은 처가(숙정의 집안) 식구들의 보복을 피해 탈가(脫家)하여 자취를 감춘다.

 봉제에게 맡겨진 봉룡의 유일한 혈육인 성수는 봉제의 아내인 송씨의 손에 의해 자라나게 되지만, 죽은 동서에게 항상 열등감을 지녔던 송씨는 그 화살을 성수에게 돌려 심리적으로 괴롭힌다.

 사냥터에서 독사에 물려 사망한 봉제 영감의 뒤를 이어 성수는 김 약국의 주인이 된다. 성수는 딸 다섯을 두지만 전혀 지식이 없는 어장 사업에 손을 댐으로써 가산이 조금씩 기울게 된다. 장녀 용숙은 일찍이 과부가 되었는데 아들 동훈을 치료하던 의사와 불륜을 맺어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는다. 둘째 용빈은 똑똑하여 교육을 받아 교원이 되나 애인 홍섭으로부터 배신을 당하게 된다. 셋째 딸 용란은 관능적 미모를 갖추었으나 지적인 헤아림이 부족해 머슴과 놀아나는 바람에 지탄을 받고, 넷째 딸 용옥은 애정이 없는 남편 기두와 별거하다가 뱃길에서 죽음을 맞게 된다.

 용란도 다시 나타난 머슴의 아들 한돌과 함께 있다가 남편인 연학에게 들켜 한돌과 어머니 한실댁이 연학에 의해 살해당하는 비극적 결과를 맞는다. 그 충격으로 용란은 정신착란자가 된다.

 계속되는 집안의 몰락을 지켜보면서도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한 김약국(성수)도 위암으로 죽는다. 결국, 용빈과 용혜가 통영을 떠나고 만다.

  

 

영화 <金藥局의 딸들> , 1963 제작

 

 첫머리에 제시되고 있는 통영에 대한 소개와 인물들의 사투리는 이 작품의 토속적 정감을 더해 주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소설을 하나의 풍속도로서 완성시키고 있는 것은 샤머니즘과 신비 사상이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김 약국과 그의 딸들인데, 현실에 대해 적극적이지 못하였던 김 약국의 성격과 다양한 삶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는 다섯 딸들의 성격 분석은 작품 이해에 필수적이다.(그러나 용해에 대한 이야기는 매우 미미하다.)

 김 약국의 흥망은 바다와 직결되어 있다. 김 약국이 능력 밖의 일인 어장 사업에 손을 댐으로써 몰락이 가속화되는 것과 용숙이 바다에서 죽는 것이 바로 그것으로서, 이 작품의 공간적 배경은 사건의 내부에까지 파고들어 불가분의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작가 박경리는 평범한 삶의 현장에, 운명이라는 메카니즘을 도입함으로써, 일상적인 것에서 비상한 진실을 규명해 내고 있다. 그가 보는 운명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인간과 삶의 궤도를 결정하는 힘으로, 특히 한 집안의 내력과 관련지음으로써 그것의 불가항력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김약국의 딸들」은 비극적인 아이러니의 범주에 들며,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하여 리얼리즘을 성공적으로 구현했다.

 

 

 현실에 적극적이지 못하였던 김 약국의 성격과 다양한 삶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는 다섯 딸들의 성격 분석이 잘되어져 있는데, 용해에 대한 이야기는 매우 미미하다. 그리고 등장인물이 많아서 각 케릭터마다의 성격을 파악하기에 쉽지는 않다. 

「김약국의 딸들」은 1962년 [을유문화사]에서 발간한 <한국 신작문학전집> 중의 하나로 선보인 장편이다. 당시 이 작품은 서점에 나온 지 한 달만에 재판을 찍어야 했을 만큼 인기가 대단했고, 그 후로도 꾸준히 읽혀지는 작품이다. 경남 통영의 바닷가를 배경으로, 한 집안의 몰락이 지닌 비극성을 사실적으로 조명한 역작이다. 김 약국의 어머니가 비상을 먹고 자살하는 대목에서 비롯되는 비극의 씨앗은, 결국 김 약국의 딸들이 하나하나 몰락하면서 막을 내리게 된다. 작품 전체가 논리적 인과율에서는 이해가 안 되는 ‘운명의 힘'에 의해 지배당하고 있기는 하나 이 작품은 그것에 의해 오히려 살아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