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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화가 100인 작품

월북화가 길진섭(吉鎭燮.1907∼1975)의 그림

by 언덕에서 2013. 3. 14.

 

 

 

 

월북화가 길진섭(吉鎭燮.1907∼1975)의 그림

 

 

 

 

 

금강산돌다리 (40cm x 29cm.)

 

 

 

 

 

독도

 

 

 

 

 

칸나

 

 

 

 

 

서흥호에서 (33cm x 17cm 약3.2호)

 

 

 

 

 

<어머니 초상> 유화, 1955년작

 

 

 

 

 

꽃피는 과수원 (35cm x 23cm 약4.8호)

 

 

 

 

 

금강산배나무골 (40cm x 28cm.)

 

 

 

 

 

송아지 (45cm x 33cm 약7.8호)

 

 

 

 

 

소녀들 (45cm x 53cm 약11.5호)

 

 

 

 

 

인물 *(38cm x 45cm 약9호) 1959

 

 

 

 

 

삼지연못가 (52.5cm x 40.5cm)

 

 

 

 

 

녀인- 25X32CM 1964년

 

 

 

 

 

가을-37X20CM

 

 

 

 

 

산골길- 24X19CM 1961년

 

 

 

썰매타기-35X42CM 1959년

 

 

 

 

 

 

 

 

 

 

 

길진섭(吉鎭燮.1907∼1975) 서양화가. 평양 출생. 3ㆍ1운동 민족대표 33인 중의 한 사람인 길선주 목사의 아들. 1932년 일본 동경미술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한 뒤, 서울에서 작품활동을 하며 민족사회의 서화협회전람회에 참가하였고, 1934년 이종우·장발·구본웅·김용준 등과 양화단체 목일회를 조직하고 동인작품전 활동을 시도하였으나, 일제식민지정책의 조선미술전람회를 외면한 일 등으로 탄압을 받다가 1938년에 와해되었다.

 1940년 서울에서 첫 개인전을 가졌을 때, 윤희순은 ‘현대적인 표현감성이 돋보이는 작품들’이라고 평문에 썼다. 현존하는 그 시기의 작품인 <정물><소녀><원주 풍경> 등에서 그러한 특질과 세련성이 확인된다.

 1946년 서울대학교가 개교될 때 미술학부 교수로 취임하였고, 미술계 움직임에도 적극 참여하여 조선조형예술동맹 부위원장, 조선미술동맹 서울지부 위원장 및 중앙위원장을 지내면서 미술계의 좌파를 이끌었다.

 1948년 8월 해주에서 남조선인민대표자대회가 열릴 때에 남한의 미술계 대표로 밀입북하여 참가하고 나서 북한에 정착하였다. 그 뒤, 북한에서는 평양미술학교(뒤에 대학으로 승격)교원, 조선미술가동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등을 역임하였다.

 작품 활동은 정치적인 주제화들 외에 <옹진바다 전망>(1956) <종달새가 운다>(1957) <농촌의 모녀상><금강산 신계사 가는 길에>(1962) <바닷가 풍경>(1966) 등 풍경화와 인물화를 많이 그린 사실이 확인되어 있다.

【작품】<정물><소녀><원주 풍경><옹진바다 전망>(1956) <종달새가 운다>(1957) <농촌의 모녀상><금강산 신계사 가는 길에>(1962) <바닷가 풍경>(19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