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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최인호 장편 소설『영혼의 새벽』

by 언덕에서 2013. 1. 17.

 

최인호 장편소설 『영혼의 새벽』

 

 

 

최인호(崔仁浩.1945∼2013) 장편소설로 2002년 [문학과 지성]사에서 간행되었다.

 『영혼의 새벽』을 펼치기 시작하면, 누구나 과거의 고문기술자를 다시 만나 증오심으로 고뇌하는 여주인공이 인상적이었던 영화 '시고니 위버의 진실'을 떠올리게 된다. 이 영화는 아리엘 도르프만의 희곡 <죽음과 소년>을 각색한 것으로 고문 문제를 다룬 뛰어난 작품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 영화만큼이나 인상적으로 시작하는 장편소설 「영혼의 새벽」은 우리 민족의 분단 갈등과 이데올로기 갈등의 해법으로 기독교의 정신인 "사랑"과 "용서"를 제시하여 형상화시킨 작품이다. 소설 처음부터 긴장감 넘치는 문장과 속도감으로 독자들을 압도하는 문체는 주인공의 갈등을 인간의 본원적인 갈등으로 승화시키며 "신과 인간"이라는 영원한 테마에까지 치밀하게 접근해간다.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故김근태 의원과 고문기술자 이근안 경감을 떠올리게 되었다. 故김근태 의원은 인간성이라는 찾아볼 수 없는 그를 과연 용서할 수 있었을까?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주인공 최성규는 대학시절 친한 친구가 운동권 간부인 관계로 야심한 밤 어딘가로 끌려가서 무지막지한 고문을 받는다.

아는 것이 별로 없었지만 물고문과 무수한 구타 속에서 살아야겠다는 절대적인 생각으로 친구의 애인인 장미정의 이름과 집 약도를 말해주고 만다.

 폐쇄 회로를 통해 장미정(친구에 대한 질투와 함께 연정을 품고 있던 바로 그 여인)이 고문을 받는 것을 보고 그는 충격을 금치 못하고 죄책감에 시달리게 된다.

 고문과 구속생활 후 장미정은 봉쇄 수도원으로 들어가 수녀가 되어 버리고 운동권 친구는 재야 정치인으로 발돋움하여 잘 나가는 국회의원이 된다.

 자신과 그 여학생을 고문하던 이른바 S. 사탄의 첫 글자인 S를 칭한다고 자신의 입으로 내뱉던 그를 10년이 훨씬 지나 새로 이사한 교구의 성당에서 만나게 된다. 성당의 사목회장으로 한없이 온유한 미소를 띠고 있는 그를 보며 참을 수 없는 구역질과 증오심, 복수심에 불타는 그는 그를 단죄하고자 한다. 그가 S를 린치하고 궁극적으로는 용서하기까지 성경과 마리 마들렌 수녀의 <귀양의 애가>를 인용하며 풀어나간다. 인간의 용서는 '내가 너를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으로부터 용서받은 너를 인정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이 작품은 1999년부터 2년 동안 가톨릭신문에 연재했던 소설이다. 가톨릭에 귀의한 작가는 종교적인 체험과 구도에의 갈망을 말로 표현하는 것을 꺼렸다. 대신 많은 글을 썼다. 신의 목소리가 담긴 성서를 묵상하는 산문을 썼고, 신을 닮은 지순한 사랑을 주제로 한 소설을 썼다. 소설의 내용은 현재 중년이 된 주인공 최성규가 과거의 고문기술자를 다시 만나게 되고, 악몽처럼 되새겨지는 과거의 기억 속에서 고문기술자에 대한 증오를 떨쳐버리지 못하는 것을 중심으로 흘러간다. 함께 고문 받았던 장미정은 천주교 수녀가 되어, 괴로움에 휩싸인 최성규에게 마리 마들렌 수녀의 책을 건네주며 시대와 이데올로기를 뛰어넘는 '용서'에 대한 진정한 의미를 전해준다.

 소설 처음부터 긴장감 넘치는 문장과 속도감으로 읽는 이를 압도하게 만드는 작가의 문체는 주인공의 갈등을 인간의 본원적인 갈등으로 승화시키며 '신과 인간'이라는 영원한 테마에까지 치밀하게 접근해간다. 한국 현대사의 문제를 고통 받는 인류의 문제로까지 이끌어가는 탁월한 묘사는 엔도 슈사쿠의 <침묵>,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을 연상시킨다. 

 인간의 용서는 ‘내가 너를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으로부터 이미 용서받은 너를 인정’하는 것이다“는 테마는 무겁고도 장중하다.

 

<사진 : 아우슈비츠의 참상>



 

 이 작품 「영혼의 새벽」은 사랑과 용서에 관한 이야기다. 원수까지도 사랑하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인간이 인간의 잘못을 용서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가르침과 같다. 이 종교적인 모순을 해독하기 위해서 작가가 선택한 이야기는 한국현대사의 두 비극, 군부 독재와 한국전쟁이다.

 과거의 고통스러운 기억과 S에 대한 증오에 시달리던 최성규는 결국 함께 고문 받았던 장미정을 찾는다. 수녀가 된 장미정이 괴로워하는 최성규에게 준 책은 한국 전쟁 때 피랍됐던 프랑스인 마리 마들렌 수녀의 수기 ‘귀양의 애가’였다. 공산주의자의 박해 속에서 털 깎인 양처럼 죽어가면서도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성직자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최성규는 고뇌에 빠진다.  어떻게 자신을 괴롭히는 사람들을 사랑하고 용서할 수 있는가? 최성규는 부활절 미사를 드리면서 진정한 용서의 의미를 깨닫는다.

“인간의 용서는 행위가 아니라 발견이다. 인간의 용서는 인간이 하느님으로부터 이미 용서받은 존재이자 사랑받는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고 발견하는 것이다.”

 속도감 있는 문체로 쓰인 소설은 빠르게 읽히면서도, 구조가 헐겁지 않아 긴장이 늦춰지지 않는다. 현대사에 대한 작가의 성찰이 맺은 결론일 것이다. 수직적인 사상 갈등과 수평적인 이데올로기 갈등으로 우리 민족은 안팎으로 갈가리 찢긴 영혼의 불구자가 되었다. 상처받은 영혼들이 증오와 갈등을 치유하고 ‘영혼의 새벽’으로 돌아갈 때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열정을 읽을 수 있었던 좋은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