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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이문열 장편소설 『레테의 연가』

by 언덕에서 2012. 11. 20.

 

이문열 장편소설 『레테의 연가』

 

 

이문열(李文烈, 1948~ )의 장편소설로 1983년도에 [중앙일보]사에서 초판을 출간한 이래 현재까지 무려 41쇄나 발행한 바 있는 밀리언셀러다. 작가의 작품 중에서는 드물다고 할 수 있는 연애소설이다. 이 작품을 통해 작가는 '사랑'이라고 하는 억제할 수 없는 인간본연의 심리와 '도덕률'이라고 하는 사회규범, 가치의 문제를 첨예하게 다루고 있다.

 이 소설은 27세의 미혼 여성이 기혼남인 한 미술가를 사랑하게 되는 동기부터 결말까지를 일기의 형식으로 쓴 글이다. '나는 내일이면 한 남자의 아내가 된다.' '여성에게 있어서 결혼은 하나의 레테(망각의 강)이다. 우리는 그 강물을 마심으로써 강 이편의 사랑을 잊고, 강 건너편의 새로운 사랑을 맞아야 한다. 죽음이 찾아올 때까지 오직 그 새로운 사랑만으로 남은 삶을, 그 꿈과 기억들을 채워 가야 한다.'고 말하며 80년 대 초반 '3월 17일 금요일' 첫 일기부터 공개한다. 
 사랑과 성이 혼동되고 있는 시대, 인터넷의 역기능으로 인해 급속도로 성(性)규범이 붕괴되고 있는 규범의 부재시대, 바로 이런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이 작품은 '진정한 사랑과 도덕이란 과연 무엇인가?'라는 근원적 물음을 던지고 있다. 

 

스타프 도레가 그린 1861년 일러스트화 『스틱스 강을 건너서 Crossing the Styx』.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이 소설은 주인공인 이희원이라는 여자의 일기이다. 이희원은 27살의 잡지사 기자로 시인을 꿈꾸는 평범한 직장 여성이다. 어느 날 그는 전에 근무하던 학교의 동료교사였던 화가 민선생을 우연히 만나게 된다. 민선생은 자기보다 10살이나 많은 유부남으로 그 동안 어떤 민전의 대상을 출발로 국전에 이어 파리의 한 권위 있는 화랑에서 초대전까지 가질 정도로 눈부신 성공을 거두고 있었다. 희원은 민선생과의 우연한 첫 만남에서 민선생이 운명처럼 가지고 있는 어떤 음울한 분위기를 감지하게 된다. 이후 우연한 만남이 계속 생겨나고, 또 민선생의 전화가 희원에게 계속 이어지게 되면서 둘은 급속히 가까워지게 된다. 희원의 마음속에는 그에 대한 사랑이 점점 커져만 가고 민선생은 이를 두려워하여 피하게 된다.

 희원이 학교를 졸업하고 처음 교사로 발령을 받아 부임한 학교에서 만나게 되었던 민선생은 당시 선생님들 사이에서도 따돌림을 당하던 다소 괴팍스러운 예술가였다. 하루는 민선생이 희원에게 모델이 되어 줄 것을 부탁하고 희원은 기분이 상해서 이를 거절한다. 얼마 후 민선생이 학교를 그만두면서 둘은 헤어지게 되었는데, 희원은 그 때 이미 자신이 민선생을 사랑하고 있었던 것이라고 믿게 된다. 여름이 되면서 민선생은 희원을 피해 동해안으로 떠나고, 희원은 후배 연기자와 함께 그를 찾아간다. 휴가 마지막 날 밤 둘은 끝도 없는 말다툼을 벌인다. 자신에 대한 사랑을 확인하려고 하는 희원과 스스로의 처지를 생각해서 미련을 떨쳐버리려고 하는 민선생 간의 갈등이 뜨거운 여름을 한없이 쓸쓸하게 만든다.

 휴가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온 희원에게 민선생으로부터 사랑을 고백하는 편지가 날아든다. "더 이상 나를 속이고 당신을 속이는 것은 그만두겠소. 우리는 애초에 자유롭게 태어났고, 모든 것은 용서되어 있음을 믿고 싶소. 사랑하오. 진실로 당신을 사랑하오.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 더욱." 이 편지에 그는 자신의 진심을 담고 있었다. 그러나 민선생과 희원의 갈등은 계속된다. 가을이 되면서 희원은 속리산으로 세미나를 떠나고 민선생은 풍경화를 그리기 위해 희원의 뒤를 따른다. 속리산에서 둘은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게 되고 술자리에서 희원은 민선생에게 사랑의 용기를 강요하지만 민선생의 이성(理性)은 감성(感性)을 누르고 만다.

 초겨울에 접어들면서 민선생은 파리의 <르 아르>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갖기 위해 떠날 결심을 한다. 그것은 희원으로부터의 도피였다. 희원은 미친 듯이 민선생의 소재를 찾아 헤맨다. 드디어 그를 만나고 술에 만취가 되어 둘은 호텔로 들어간다. 아침에 잠에서 깨어난 희원은 그곳이 호텔이 아니라 병원임을 깨닫게 되고 민선생이 희원의 어머니께 전화를 해서 그곳으로 옮기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것이 그들의 마지막 밤이었다. 해가 바뀌고 파리로 떠난 민선생에게서 희원에게 편지가 도착한다.

  '오늘로 이곳에 오랫동안 머물 수 있는 절차상의 일이 매듭 되고, 거처할 집도 마련되었다는 연락을 방금 파리로부터 받았다.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불현듯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은 충동도 이제 더는 나를 괴롭히지 못할 테지. 그대의 부름도 이제는 더 이상 나를 낯선 거리의 목로에서 곯아떨어지도록 만들지는 않을 테지. 그러면 이제야말로 안녕. 진정으로 사랑했던 사람. 내 영원히 간직할 아름다움의 추상.'

 이 소설은 첫 일기를 쓴지 약 10개월이 지난 이듬해 '1월 5일 요일 모름'이라는 위의 편지로 끝을 맺는다.

 

영화 <레테의 戀歌> , 1987 제작

 

 

 희원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어제의 일은 중대하다 - 적어도 내게는 그렇게 느껴진다. 그러나 그 의미를 분석해 보려고 하면 안개가 걷히듯 내 머리 속은 텅 비고 만다. 더구나 그것을 정리하여 일기에 쓴다는 것은 지금의 나로서는 거의 불가능이다. 이제 더는 이렇게 애매한 상태로 그와의 일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강박관념에 이렇게 쫓기면서도.

 다만 지금 내가 정리할 수 있는 것은 이미 약간의 시간이 지나서, 한 발자국도 안 되지만 되돌아볼 수 있는 거리에 있는 것들이다. 얼마 전에 하다가 중단한 자기 분석 - 어떻게 보면 대단할 것도 없는 인연에서 무엇이 나를 오늘날처럼 가깝게 그 곁으로 이끌었는가를 헤아려 보는 일이다."

 민선생은 이야기한다.

 "여자에게 있어서 결혼은 하나의 레테(망각의 강)다. 우리는 그 강물을 마심으로써 강 이편의 사랑을 잊고, 강 건너의 새로운 사랑을 맞아야 한다. 죽음이 우리를 찾아올 때까지 오직 그 새로운 사랑만으로 남은 삶을, 그 꿈과 기억들을 채워 가야 한다.

 나는 지금 그 강가에서 나를 건너 줄 사공을 기다리고 있다. 내 귓가에는 느릿느릿 저어오는 그의 노 소리가 들린다. 나는 가리라, 앞서의 수많은 여인들이 희망과 기쁨으로 또는 탄식과 눈물 속에 건너간 이 뱃길을. 가리라, 강 이편의 그 무엇에도 연연함이 없이." 

 

 

 책 끝에 확실한 결말이 나오진 않았지만, 처음부분에 결혼을 앞두고 있다는 여주인공의 에피소드로 미루어보아 대충 예상하며 스토리를 읽어 나갈 수 있다. 결혼을 하는 여자들은 <레테의 강>을 건넌다. 그래서 강 저편의 일들은 모두 기억 속에, 추억 속에 담아두거나 혹은 잊은 채로 살아간다. 그 길이 최선이었을까. 하지만 사회의 통념과 형식적인 도덕에 묶여있는 독자로서는 그들이 끝까지 서로를 포기하지 못한 채 그 길을 걸었다면, 결과가 어떻게 될지 뻔히 알고 있고 또한 그 결과가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의 사랑이 통속적인 것이 아님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그렇게까지 밖에 생각할 수 없었던 것은 뿌리 깊은 불륜에 관한 거부감 때문일 것이다. 

 사랑과 성이 혼동되고 있는 시대, 인터넷의 역기능으로 인해 급속도로 성(性)규범이 붕괴되고 있는 규범의 부재시대, 바로 이런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이 작품은 '진정한 사랑과 도덕이란 과연 무엇인가?'라는 근원적 물음을 던지고 있다. 시대가 변하고 사람들의 생각이 많이 바뀌었지만 이 소설이 우리에게 던지는 감동은 여전히 강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