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平凡)씨의 휴일 풍경
우수도 경칩도 지나고 봄빛이 완연합니다.
매사 분주한 마눌님을 모시고(?) 오랜만에 시내 나들이해 봅니다. 오늘 코스는 부산 구시가지(舊市街地), 그러니까 구도심(舊都心)이었던 '중앙동 -> 대청동 -> 보수동 ->남포동 -> '국제시장' 코스로 시내 구경입니다. 구경할 게 뭐 있겠습니까만 하도 들른 지가 오래된 느낌이어서 그냥 한 번 동네를 한 바퀴 둘러보는 수준입니다.
가장 먼저 들른 곳은 대청동의 중앙성당입니다. 십 몇 년 전에는 주교좌성당이었는데 교구(敎區) 본부가 남천동으로 옮겨간 관계로 일반 본당이 되어버렸습니다. 이 성당은 저희 가족이 교적(敎籍)을 둔 본당은 아니지만 딸아이 대학 시험 전에 부부가 기도하려 몇 번 온 적이 있습니다. 왠지 '기도빨'이 잘 받는 성당입니다.
저번 달에는 부탁의 기도를 드리려 이 성당을 찾았지만, 이제는 저희 가족의 기도를 들어주신 데 대한 감사의 기도를 드리기 위해서 입니다. 정오 미사가 막 끝나고 신부님께서 제의(祭衣)를 벗고 계시는군요. 옆에 있는 아동들을 복사(服事)라고 부르는데요. 저도 초등학교 때 2~3년 복사단(服事團) 생활을 한지라 저들을 보는 감회가 새롭습니다.
중앙성당에는 특이하게도 검은 색 피에타 상이 있습니다. '피에타'라는 용어는 김기덕 감독의 영화 때문에 많이 알려졌지요. '피에타'란 이탈리아로 '자비를 베푸소서'라는 뜻으로, 성모 마리아께서 죽은 그리스도를 안고 있는 모습을 표현한 그림이나 조각상을 의미합니다. 이 성당 내에서도 가장 '기도빨' 잘 받는 곳입니다.
미사가 마친 후 수녀님과 복사들이 제대(祭臺)를 정리하고 있습니다.
중앙성당을 나와 대청동과 용두산 공원을 뒤로 하고 헌책방 골목이 있는 보수동으로 걷습니다. 6·25전쟁으로 피난 온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살았던 부산 중구 일대의 영주산, 보수산 자락에는 천막 학교들이 하나 둘 생기기 시작했고, 보수동의 이 골목은 통학하는 학생들로 늘 붐볐다고 합니다.
그래서 책이 귀하던 시절, 자신이 읽은 책은 팔고 필요한 헌 책을 구입할 수 있는 노점은 가난한 학생이 책을 구해 볼 수 있는 소중한 곳이었지요. 이런 노점들이 하나 둘 모여 책방 골목이 만들어졌고 신학기가 되면 골목에 늘어선 책 보따리가 장관을 이루었습니다. 목조 건물 처마 밑을 서성이며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온 헌 잡지를 구입할 수 있었고 고물상이 수집한 만화책을 구입할 수 있었던 곳도 바로 책방 골목이었습니다.
젊은 청춘들이 만남을 약속하는 장소이자 데이트 장소로도 인기가 많았던 이곳은 물질의 풍요로움에 길들여진 현대에 와서는 어울릴 것 같지 않으나 새 책과 헌 책이 같이 유통되고 있어 저렴한 가격에 책을 구입하려는 이들이 많이 찾고, 또한 독특한 풍경을 만나보려는 나들이객도 즐겨 찾고 있습니다.
특히 만화를 전문으로 하는 서점이 많아 청소년과 젊은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습니다. 해마다 보수동문화축제가 열려 책표지 만들기, 나만의 책 만들기 등 다양한 이벤트를 즐기는 문화공간으로 바뀌기도 하지요. 이곳에서 발품을 잘 팔면 의외로 희귀본 책이나 고서들을 구할 수 있습니다.
저는 1950년대 소설가인 박용구님의 <안개는 아직도>라는 소설집을 찾고 있는데 오늘도 허탕입니다. 이 글을 읽는 분들 중 그 책을 갖고 계시는 분은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이 보수동 책방 골목은 8·15 광복 후 일본인들이 남기고 간 책들을 난전을 벌여 팔던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진 거리입니다. 현재는 신간 서적도 취급하고 있습니다.
서울의 청계천, 대구의 극장 앞거리 등 전국에 이름난 헌책방 거리는 점차 사라지고 있습니다. 대부분 도시 개발에 따른 이전과 철거 때문인데, 다행스럽게도 부산 보수동 책방골목은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중입니다. 제가 알기로는 전국에 이런 헌책방 골목이 없습니다. 부산시와 중구청에서 예산을 들여 보수공사를 하고 주변 환경을 개선한 결과로 보입니다.
여름이면 방문객이 크게 늘어난다고 하는데요. 피란이 아닌 피서 온 사람들이 이곳 책방골목까지 찾아온다는 겁니다. 몇 해 전부터는 헌책방 골목에서 축제도 열렸습니다. 9월에 열리는 축제에는 책 전시를 비롯해 다양한 행사가 열리는데 때마침 부산의 유명한 축제인 자갈치 축제, 부산국제영화제도 이때를 즈음해 개최됩니다.
보수동 책방 골목 건너편으로는 일명 깡통시장이 있습니다. 국제시장과 붙어 있지요. 6·25전쟁 이후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온 각종 통조림 제품들을 많이 팔아서 깡통시장이라 이름 붙었습니다.
시장 안에 명물로 꼽히는 음식이 있으니 바로 유부 주머니입니다. 어묵과 함께 야채가 들어간 유부 주머니 두 개가 한 그릇입니다.
가게 전화번호는 없고 주인 할머니의 핸드폰 번호만 있는데요. 상인들에게 물어보면 친절히 알려주기도 한다지요.
집으로 돌아오니 도러가 봄꽃 같은 표정으로 부모님을 기둘리고 있습니다.
하루가 저물기 전에 한 주일 동안 읽었던 신문을 정리합니다. 지난주 신문에서는 총리. 장관. 고위 공직자 되려는 분들의 위장전입, 본인 및 아들 군면제, 부동산 투기 등 그야말로 단골인 이슈가 주된 내용이군요. 그럴리는 전혀 없겠지만 제가 총리나 장관 후보로 청문회 나간다면 '군대', '부동산', '세금' 문제가 전혀 없으니 ㅎㅎ ... 지난 주의 신문 칼럼 중에는 새겨 들을 만한 고사가 있네요. 문일득삼(問一得三)입니다. 신문에는 너무 간략하여 조금 풀어서 제 방식대로 적어보겠습니다.
옛날 중국 춘추전국 시절에 공자의 제자 중에 진항(陳亢)이라는 인물이 있었습니다. 진항은 공자를 늘 존경하면서도 마음속으로 궁금한 것이 있었습니다. 공자님처럼 저렇게 고명한 선생님께서는 과연 자식들을 어떻게 가르치고 있을까 하는 점이었습니다. 그래서 진항은 어느 날 공자의 아들인 백어(伯魚)에게, “그대는 혹시 아버지로부터 남다른 교육이라도 받은 것이 있느냐?” 고 넌지시 물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백어는 일언지하에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서는 갑자기 생각난듯 이런 얘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어느 날 공자께서 정원을 거닐고 있었는데, 백어가 예의를 갖추어 그 앞을 급히 지나가려 하는데 공자께서 아들을 불러,
“요즈음에 시(詩)를 공부했느냐?” 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백어가, “공부하지 못했습니다.” 고 대답하였더니,
“남자가 시를 공부하지 않으면 말을 제대로 할 수 없노라”고 타일렀습니다. 그 말씀을 들은 아들은 물러나와 시를 공부했습니다.
그런 일이 있은 후 얼마가 지나서 또 공자께서 혼자 정원을 거닐고 있을 때 그 아들 백어가 예의를 갖추어 그 앞을 급히 지나가려 하는데 공자께서 아들을 불러, “요즈음에 예(禮)를 공부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백어가 ‘공부하지 못했습니다.’고 대답했더니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남자가 예를 배우지 않으면 남의 앞에 설 수가 없느니라.”고 타일렀습니다. 이 말을 들은 백어는 다시 물러나와 예(禮)를 공부했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공자의 아들 백어의 말을 들은 진항은,
“내가 그대의 말을 듣고 깨달은 바가 세 가지 있으니, 하나는 남자란 시를 배워야 함이요, 둘은 남자란 예를 배워야 함이요, 셋은 군자는 자기의 자식을 멀리 함이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사진출처: 중앙일보>
그렇다면, 진항이 한 말 중에서 ‘군자는 자기 자식을 멀리 한다’는 뜻은 과연 무엇일까요? 이 분야를 연구하는 식자들간에 오랫동안 거론되어온 문제입니다. 오늘날 일반적으로 알려진 바에 의하면 아무리 훌륭한 선생이라 할지라도 자기 자식들을 가르치려면 정(情)이 앞서서 제대로 교육할 수 없기에 멀리한다는 뜻이 아닐까요?
아버지는 자녀 교육과 무관하다는 뜻이 아니고 자식에 대한 아버지의 교육은 말로 되는 것이 아니요, 덕망 있는 태도를 보임으로써 행동으로 가르쳐야 한다는 뜻일 것입니다. 만약, 아버지가 제 자식에게조차 덕행을 보이지 못할 경우 그 자식은 아버지를 공경하기는커녕 오히려 삐뚤어지는 경우가 많은게 인간사(人間事)기 때문이지요. 이렇게 심심찮게 신문을 장식하는 고관대작이나 사회지도층 또는 재벌들의 자식들의 문제들이 여기에 속하는 것이구요.
문제는 돈이면 자식 교육을 위해 내가 할 일은 다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은 아닐까요? 물론 성인 공자님처럼 단 두 마디의 물음으로써 지식을 감화할 수는 없겠지요. 어린것들 앞에서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지 않도록 사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니겠는지요?
횡설수설 길어졌습니다. 이렇게 휴일이 지나갔습니다. 다들 즐거운 한 주 여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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