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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이효석 장편소설 『벽공무한(碧空無限)』

by 언덕에서 2012. 10. 24.


이효석 장편소설 『벽공무한(碧空無限)』 

 

 

 

이효석(李孝石,1907∼1942)의 장편소설로 1940년 1월부터 7월까지 [매일신보]에 연재되었다. 연재될 때의 제목은 <창공>이었으나, 1941년 [박문서관]에서 단행본으로 출간하면서 제목이 바뀌었다. '창공'과 '벽공무한'은 모두 '푸른 하늘'을 뜻한다.

 이효석이 정식으로 문학 활동을 시작한 것은 <도시와 유령>(1928)부터이다. 이 작품은 도시유랑민의 비참한 생활을 고발한 것으로, 그 뒤 이러한 계열의 작품들로 인하여 유진오와 더불어 카프(KAPF: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 진영으로부터 동반자 작가(同伴者作家)라는 호칭을 듣기도 하였다. 대학을 졸업한 뒤 1931년 이경원과 혼인하였으나 취직을 못하여 경제적 곤란을 당하던 중 일본인 은사의 주선으로 총독부 경무국 검열계에 취직하였다. 그러나 주위의 지탄을 받자 처가가 있는 경성으로 내려가 그곳 경성농업학교 영어교사로 부임하였다. 그의 초기 작품은 경향문학의 성격이 짙은 <노령근해>(1930) <상륙>(1930) <북국사신(北國私信> 등으로 대표된다. 생활이 비교적 안정되기 시작한 1932년경부터 그의 작품세계는 초기의 경향문학적 요소를 탈피하고 그의 진면목이라고 할 수 있는 순수문학을 추구하게 된다.

 이효석은 1930년대 후반 자연과 성을 다루는 특유의 주제의식에서 벗어나서 서구적인 분위기의 작품들을 발표하였는데, 이 소설도 그 가운데 하나이다. 천일마와 러시아 댄서 나아자의 사랑과 결혼을 중심으로 교향악단ㆍ영화ㆍ금광ㆍ복권ㆍ경마ㆍ마약 등 만주국 치하의 하얼빈과 경성의 다양한 풍속도를 그린 일종의 애정소설이다. 

 

 

경성농업학교 영어교사 시절의 이효석 (李孝石,1907&sim;1942)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젊은 실업가 유만해에게 첫사랑 남미려를 빼앗긴 천일마는 현대일보사의 의뢰를 받아 중국 하얼빈으로 교향악단을 초청하기 위해 떠난다. 행운을 잡을 것 같은 예감에 사로잡혀 떠나는 기차 안에서 미모의 여배우로 자신을 짝사랑하여 뒤쫓아온 최단영을 만나지만 떼어 놓고 홀로 떠난다. 천일마는 하얼빈에서 두 가지 행운을 잡아 도박과 경마에서 거금을 얻고, 댄서인 러시아 처녀 나아자와 결혼한다. 

 한편 최단영은 천일마에게 앙갚음을 하기 위해 영화사 사장 김명도를 하얼빈으로 불러 천일마 일행의 뒤를 끈질기게 쫓는다. 나중에 최단영은 자살을 결행하지만 미수에 그치고 작가 문훈과 사랑에 빠진다.

 천일마가 서울에 돌아왔을 때 유만해는 파산해 있었고, 남미려는 천일마를 향해 다시 사랑을 시작하려고 한다. 유만해는 기생과 함께 상하이로 달아나고, 남미려는 나아자로부터 천일마를 빼앗기 위해 독한 술을 먹이고 동침까지 한다. 그러나 두 남녀의 관계는 곧 깨어지고, 남미려는 그녀에게 마음을 두는 현대일보사 기자 김종세와 새로운 관계가 시작된다. 나아자는 천일마와 살림을 차리고 행복에 겨워한다.

 

 

1930년대의 하얼빈 풍경

 

 

 이효석은 경성 제국대 영문과를 졸업한 후 경성 농업학교 교사, 평양 대동강 공업전문학교와 숭실전문 교수를 역임한 당대 최고의 인텔리였다. 그는 1928년 [조선지광] 7월호에 단편소설 <도시와 유령>을 발표함으로써 동반작가로 문단에 데뷔하여, 유진오와 함께 동반작가로 활동하였으나 1933년 순수문학 주도의 [구인회] 동인으로 활동하면서, <돈(豚)>(1933) 발표 후 순수문학으로 전향하였다.

 그는 1936년 한국 단편문학의 전형적인 수작인 <메밀꽃 필 무렵>을 발표하였다. 그 후 서구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장미 병들다>, 장편 <화분> 등을 계속 발표하여 성 본능과 개방을 추구한 새로운 작품 경향으로 주목을 받았다. 수필, 희곡 등 220여 편의 작품을 남기고 뇌막염으로 사망했는데 김동인, 현진건과 함께 3대 단편 작가로 평가되고 있다.  

 

 

 이렇듯 이효석의 문학 세계는 몇 마디 말로 규정하기 어려운 복합성을 띠고 있다. 우선 장르 면에서 그는 소설뿐만 아니라 희곡, 평론, 수필, 시 등 여러 장르에 손댔던 작가이다. 다음으로 문학지리학적인 면에서 그의 작품들은 도시와 시골, 서울과 강원도, 한반도와 만주를 아우르는 폭넓은 지리적 공간을 작품 속에 끌어들이고 있다. 예를 들면 『벽공무한』, <하얼빈>은 1930년대 말의 만주 지역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그의 작품 속의 등장인물 중에는 한국인뿐만 아니라 러시아인, 일본인도 있다. 언어 면에서 그는 한국어(조선어) 외에도 일본어로 소설을 썼는데( <은은한 빛>, <가을>, <초록의 탑>), 그중 몇 편은 도쿄에서 발행되는 저명한 저널에 발표되었다.

 이효석의 소설 『벽공무한』이나 비슷한 분위기의 소설 <풀잎>에 대한 해석도 흥미롭다. 이효석은 일제 말기 일본어로 소설을 썼고, “대일협력의 메시지”를 전했다. 그러나 두 작품에서는 ‘친일’과 다른 그의 내면을 볼 수 있다. 『벽공무한』의 주인공은 서양문화가 활발하게 수용되는 중국 하얼빈에 가서 교향악단을 초청하고 러시아 여자와 연애를 한다. 음악이라는 보편 문화를 추구함으로써 일제의 지배논리인 동양주의에 반발했던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