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詩)를 읽다

입관 / 마경덕

by 언덕에서 2012. 6. 18.

 

 

 

입관 

 

                                 마경덕(1954 ~  )

 

하얀 보에 덮여 누워있는 어머니

둥근 베개 하나가 무거운 잠을 받치고 있었다

장례지도사인 젊은 염습사는

보 밑으로 손을 넣어 익숙하게 몸을 닦았다

감정은 삭제되고 절차만 기억하는 손길로

미처 살아보지 못한 생의 끝자락을 만지고 있었다

얼마나 많은 주검을 갈무리하여 먼 길을 떠나보냈을까

저 숙련된 손길은 어느 날, 떨어져나간 단추를 주워 제자리에 달듯

벌어진 틈을 메우고 있는 것

하얀 종이로 싸늘한 몸을 감싸는 동안 잠시 침묵이 내려앉았다

살아온 족적이 다 찍힐 것 같은 순백의 백지는

어머니의 마지막 속옷이었다

자식들이 사준 속옷은 장롱에 켜켜이 쌓아두고 구멍 난 내복만 입던 어머니

며느리에게 퍼붓던 불같은 성깔도 다 시들어

몇 장의 종이에 차곡차곡 담기는 순간,

눈물이 나오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했던 마음이 순식간에 다 젖었다

어머니, 편히 가세요 그동안 미워했던 것 다 잊으세요

진심으로 시어머니를 부르며 딸인 듯 목이 메었다

습신을 신은 발, 앙상한 손을 감싼 악수幄手를

꼭 쥐어보았다. 이 작은 손이

밥상을 밀치고 내 가슴을 후볐다는 게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던 막내시누이는 꺽꺽 짐승처럼 울고

나는 입을 막고 흐느껴 울었다

당신이 손수 장만한 치자 빛 수의를 입고

허리띠를 나비리본처럼 단정히 묶은 어머니

어느새 떠날 채비를 다 마치었다

지긋지긋한 암 덩어리는 곱게 포장되어 입관을 기다리고 있었다

 

<문학사계> 2012년 봄호

 

 

 

 

 



 

죽음을 준비하지 못하고 떠난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지요. 간암에 걸려 30년 전에 돌아가신 제 아버님은, 가족들이 병을 숨기는 바람에, 떠나는 그 순간까지 며칠 후에 퇴원하여 건강한 일상을 영위하시는 걸로 알고 계셨답니다.

 몇 년 전에 큰 교통사고가 날 뻔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고속도로에서 제 차 뒤를 따라 오던 대형 유조차 기사가 졸음운전을 한 건데 시속 110km에서 졸다니 끔찍하지 않습니까? 제 차 룸미러의 그림은 대형차 앞모습으로 꽉 차있었는데 추돌 직전이었습니다. 제 차와 앞 차와의 거리도 2m에 불과했고요. 죽음을 느끼며 클랙션과 비상깜박이를 눌렀고 급기야 앞차와의 충돌을 막기 위해 급브레이크를 밟아야만 했습니다. 졸음운전을 하던 탱크로리 기사는 갑자기 잠이 깼는지 그도 역시 급브레이크를 밟았는데 초대형사고 일보 직전이었습니다. 급제동하는 바람에 유조차는 옆으로 회전하여 3개 차선을 차지하고야 말았습니다. 탱크로리 뒤를 따르던 차가 있었다면  초대형 사고가 났겠지요. 20년 무사고였던 저는 그 이후로 운전대를 멀리하게 되었음은 물론, 제 자신의 죽음에 대해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위의 시를 대하다가 어머니의 입관 순간이 생각났어요. 어느 집이든 비슷한 장면이 있었군요. 그때 아들아이가 고1이었는데, 염습하는 장면을 제가 보지 못하게 했습니다. 고운 할머니의 기억을 간직하게 하고 싶어서였지요. 장례식 이후 며칠동안 몸살을 했습니다. 초상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서 아파트 베란다에서 하늘을 보고 있던 순간이었지요. 환시인지, 착시인지 미세한 하얀 물체가 하늘로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오랫동안 먼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292

 

 

'시(詩)를 읽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정의 장소 / 장이지  (0) 2012.07.02
오감도 시 제2호 / 이상(李箱)  (0) 2012.06.25
병원 / 윤동주  (0) 2012.06.11
춘방다방 / 노향림  (0) 2012.06.04
첫사랑 / 채수영  (0) 2012.05.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