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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를 읽다

낙화유수 / 함성호

by 언덕에서 2012. 4. 16.

 

 

 

낙화유수 

 

                         함성호(1963~ )

 

 

네가 죽어도 나는 죽지 않으리라 우리의 옛 맹세를 저버리지만 그때는 진실했으니, 쓰면 뱉고 달면 삼키는 거지 꽃이 피는 날엔 목련꽃 담 밑에서 서성이고, 꽃이 질 땐 붉은 꽃나무 우거진 그늘로 옮겨가지 거기에서 나는 너의 애절을 통한할 뿐 나는 새로운 사랑의 가지에서 잠시 머물 뿐이니 이 잔인에 대해서 나는 아무 죄 없으니 마음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걸, 배고파서 먹었으니 어쩔 수 없었으니, 남아일언이라도 나는 말과 행동이 다르니 단지, 변치 말자던 약속에는 절절했으니 나는 새로운 욕망에 사로잡힌 거지 운명이라고 해도 잡놈이라고 해도 나는, 지금, 순간 속에 있네 그대의 장구한 약속도 벌써 나는 잊었다네 그러나 모든 꽃들이 시든다고 해도 모든 진리가 인생의 덧없음을 속삭인다 해도 나는 말하고 싶네,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절없이, 어찌할 수 없이

 

 

 

 


  

 

겨우내 기나긴 잠을 깨고 만물이 소생하기 시작하나 봅니다. 지난겨울 동안 새벽이면 일찍 잠이 깨곤 했는데 요즘은 늦잠을 자기 일쑤입니다. 신기하게도 몸이 계절의 변화를 알아 춘곤증 같은 게 생기는 게지요. 위의 시는 머리를 갸우뚱하며 읽고 또 읽었습니다. 처음엔 배반을 예찬하는 글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음……. 세상살이에는 참으로 이유 같지 않은 이유가 이유가 되어버리곤 하니까. 옛 맹세를 저버리고 쓰면 뱉고, 달면 삼키고 잡놈이라 욕을 먹는다 해도 사랑의 새로운 가지를 옮겨 다니며 마음 내키는 대로 살겠다는 말로 이해를 했네요. 그러나 읽다 보니 결국은 이 순간의 아름다움에 모든 것을 걸겠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 세상 모든 꽃이 다 시든다 해도, 모든 진리가 인생의 덧없음을 속삭인다 해도 만사를 잊고 이 순간의 사랑과 삶을 위해 전 생명을 다 바치겠다는 말입니다. 낙화유수라는 제목이 모든 것을 다 말해주는 듯합니다. 꽃은 떨어져 물을 따라 흘러가니 그럴 수밖에 없다는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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