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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소문난 맛집에 가면 과연 맛이 있을까?

by 언덕에서 2012. 2. 17.

 

 

 

소문난 맛집에 가면 과연 맛이 있을까?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지만 우리는 동료나 친구들과 점심을 먹거나 저녁에 술 한 잔을 할 때도 그냥 눈에 띄는 아무 음식점에 가지 않는다. 웬만큼 먹고 살만하니 같은 값이면 맛있고 분위기 있는 집에서 음식을 먹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점심. 저녁 약속을 하더라도 그 집이 어떤 집인지 물어보고 스마트 폰으로 검색해보기도 한다. 이런바 맛집에 가야하는 것이다. 하긴 자본주의 사회에서 제 돈 주고 음식 먹는데 이런 행위는 권장받아야 한다. TV나 신문, 인터넷 포탈사이트에 소개된 맛집은 그야말로 백가쟁명(百家爭鳴) 식으로 널려있기 때문이다.

 "고려청자 비법이 끊긴 것은 아들에게도 비법을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이라거나, 맛있는 냉면집에선 "주인 할머니가 밤에 몰래 육수에 비장의 무언가를 집어넣는다"는 얘기가 돌기도 한다. TV 맛집 프로를 보면 주인이 카메라에다 대고 "이것만은 절대 비밀이야!" 라며 조리비법을 숨기는 장면을 흔히 볼 수 있다. 대중에게 뭔가를 감추면서 애타게 하는, 이른바 '신비주의' 마케팅은 연예인 뿐만 아니라, 맛집 주인들에게도 예외가 없다. 그들에겐 보통 식당이 따라잡을 수 없는 '특별한 뭔가'가 있어 보인다.

 

 

 

 

 며칠 전 휴일, 동네의 냉면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냉면을 먹은 적이 있다. 우리 동네는 한국전쟁 때 피난민들이 많이 살던 동네라 이북식 맛을 내는 소문난 냉면집이 있다. 가게는 좀 허름하지만 시원하고 감칠맛 나는 육수맛과 정성스런 면발과 고명 맛때문에 오래 전부터 즐겨 찾던 집이다. 그러나 그날, 밑반찬과 냉면이 나왔을 때 뭔가 달라진 것을 알게 되었다. 가격은 그대로인데 최소한 30년은 상에 나왔던 명물 빈대떡 대신 다른 식당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부추전이 나왔다. 20분은 애타게 기다려야 나왔던 냉면은 5분 만에 왔는데 면발은 퉁퉁 불어 있었고 김치맛은 수준 이하였다. 자세히 보니 면은 구식 기계에서 힘주어 뽑은 메밀 면이 아니고 슈퍼에서 구입한 공장제품, 정갈했던 육수는 화학조미료 탓으로 비리기까지 했다. 식당 벽면을 보니 김치는 원산지가 '중국산'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이유는 간단했다. 언제나 자리를 지키고 있던 주인할머니가 얼마 전 세상을 뜬 탓이다. 그러면 가게를 물려받은 며느리의 변(辯)은 무엇일까?

 

 

 

 '손이 너무 많이 가서' '원가가 너무 들어서' '그렇게 만들려면 따로 주문을 해야 해서' '빨리 달라는 손님들 때문에' '돌아가신 할머니와 나랑 스타일이 달라서' 등의 이유로 슬슬 '원칙'을 깨버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러한 현상의 근원적 문제 중의 하나는 맛집 스스로 맛으로 승부하기를 포기하고 있다는 것이 아닐까 한다.  맛집의 '비밀'이란 대단한 비밀인 양념의 비밀 때문이 아니라 '맛에 관한 원칙'을 지키는 것이다. '아무리 손님이 많아도 면은 직접 만들 것, 밑반찬은 공장 같은 데서 사오는 것 말고, 더군다나 중국산은 쓰지 말고 직접 시장 봐서 손수 만들어 준비할 것, 싱싱하고 좋은 재료가 맛의 근원'이라는 믿음 같은 것들 말이다. 맛이 달라지는 건 할머니들이 '비밀'을 무덤으로 갖고 가서가 아니라 며느리가 하기 싫어서"인 게 분명하다.

 

 

 

 비슷한 경험은 또 있다. 몇 주 전에 아들아이와 바깥에서 식사를 한 적이 있다. 장소는 인터넷에서 젊은 세대들로부터 각광을 받고 있다는 육회 집이었다. 이른바 블로그에서 '지존 중의 지존'으로 통하는 맛집이었다. 내가 사는 집과 가까운 곳으로 몇 번 소문으로도 들은 적이 있는데다 군대를 제대하고 복학을 준비 중인 23세 대학생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기막힌 음식점의 맛은 과연 어떤지 궁금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전혀 맛집이 아니었다. 수입산 쇠고기에 양조간장과 유사 참기름, 설탕을 떡칠하다시피 한 육회는 두 번 젓가락을 들다가 손을 놓게 만들었다. 그 집이 맛있다는 소문이 나자 주인은 가격을 몇 배 올려 재빨리 가게를 팔아버렸고, 새 주인은 간판은 그대로 두고 며칠 동안 어깨 너머로 배운 음식솜씨로 문을 연 탓이었다.

 한정된 맛집의 숫자에 비해 신문, 잡지, 방송, 인터넷 블로그 등 다양한 '채널'을 가진 우리 요식업계의 환경 때문에, '초심을 잃은 맛집'의 명성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소설가 홍성유 선생은 맛에 관한 한 당대 최고의 고수가 아닐까 한다>

 

 문제는 이런 집들이 '맛집'으로 등극하는 데 관록과 경험이 있는 이들보다는 '카메라를 든' 신세대 식도락가의 비평과 매스콤의 보도가 더 결정적이라는 것이다.  '몇 대째 이어온 집' 또는 '원조 중의 원조'라는 확인되지 않은 소문, 역사가 있는 듯한 누추한 인테리어, 그리고 몇 장의 잘 찍은 사진만 있다면, '손맛 깊은 집'으로 등극하는 건 그리 어렵지도 않다. 듣자하니 '맛집 블로거'라고 하며 공짜로 음식을 청하는 '문화 권력자'들도 꽤 많은 모양이다. 음식점 주인이 그들을 거부하면 인터넷상에 맛없고 불친절한 음식점이라고 악플을 쓴다고 하니 울며 겨자먹기로 그들을 접대할 수밖에 없는 현실은 개탄할 일이다.

 

 

 

 

 더욱 더 놀라게 만든 것은 언론들의 도가 지나친 맛집 보도다. 지난 일요일 아침, 모 종편방송에서 방영한 맛집 프로그램의 문제점에 관한 보도는 예상을 했지만 훨씬 충격을 주는 실상을 담고 있어 공영방송의 존재의미를 되씹게 하는 무엇이 있었다.  맛집 소개할 때마다 손님으로 보이는 이들이 과장된 제스처로 한결같이 떠들었던 “환상적인 맛이예요!”라든가, “너무 맛있어서 기절할 것 같아요!”하면서 큰소리로 박수를 치는 부분들이 사실은 방송국에서 써준 각본이었고 손님인줄 알았던 그들은 방송국이 동원한 인력이라는 사실을 방송은 적나라하게 밝혔다.

 

 

 

 

 더 기가 막힌 것은 맛집이 되려면 방송국에 상당액의 비용(천 만원)을 지불하기만 하면 되고 그 과정 또한 간단했다. 이 정도면 천민자본주의의 절정을 보는 느낌이다. 오죽하면 <KBS MBC SBS에 방송되지 않은 집>이라는 상호를 단 음식점까지 나올 정도이니 말이다.

 

 

 누구나 맛을 평가할 수는 있지만, 아무나 '제대로'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러나 오늘의 비극은, 인기를 쫓는 방송매체들이나 설익은 맛객들이 떠들기 시작하면 맛집이 아닌 그 집을 "이 집은 사실 맛집이 아니다. 이런 것을 맛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라고 단호히 말할 자격이 있는 전문가나 '고수'들이 그냥 조용히 입을 닫아버린다는 현상일 것이다. 맛보다, 멋, 그보다 겉멋에 더 크게 환호하는 게 요즈음의 대세라고 하면, 그냥 그렇게 살라고 방치해 버린다는 불편한 진실이 오늘도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아리땁기 짝이 없는 걸그룹 출신 미모의 아가씨가 짜고 치는 고스톱 같은 TV 맛집 프로에서 음식을 입에 넣으며 한마디 했다. "우와! 이거 대~~박, 완전 대박 ~~~~"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하는 대중을 향한 기본적인 예의나 우리말 기초 실력에 대한 자질은 차치하도록 하자. 기실, 대로변에서 고교생들이 담배를 피우거나 남녀간 포옹을 해도 야단치는 어른이 오래전 사라진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문제는 우리 사회에서 어느새 당연시 여겨 오던 기본이 무너지고 있다는 비극적인 현실이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