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데르센 동화 『인어공주(Den lille havfrue)』
덴마크 동화 작가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Hans Christian Andersen.1805∼1875)의 동화로 1837년 간행되었다. 안데르센은 서정적인 정서와 아름다운 환상의 세계, 그리고 따스한 휴머니즘이 담긴 수많은 동화를 남겼다. 그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 갖은 고생 끝에 작가로서 성공을 거두었는데 그러한 그의 경험들이 그의 작품 속에 맑고 따뜻하게 녹아 있다.
1837년 그의 세 번째 작품집에 발표한 「인어공주」는 <눈의 여왕>과 함께 그의 작품 중에서도 아름다운 문장을 통해 지순한 사랑을 그린 대표적인 작품이다. 이 작품집에는 특히 사랑했지만 끝내 그 사랑을 이룰 수 없었던 여인 리보에 대한 애틋한 사랑이 담겨 있다. 안데르센은 자신이 살고 느끼고 겪어온 삶의 세계를 아동문학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수많은 걸작 동화 속에 남겼는데 「인어공주」 역시 어린이는 물론 어른에게까지 큰 감동을 주는 명작으로서 세계 각국에서 오랫동안 사랑받고 있으며 영화로, 연극으로도 공연되고 있다.
안데르센의 많은 동화들, 특히 서글픈 이야기들은 자전적인 것이 많다. 그는 덴마크 오덴세의 빈민가에서 태어났다. 배우의 꿈을 갖고 수도 코펜하겐에 갔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한 자선가의 후원으로 뒤늦게 고등교육을 받았고 장편소설 <즉흥시인>과 일련의 동화집으로 마침내 명성을 얻게 됐다. 그의 동화 <미운 오리 새끼>는 바로 자신의 모습이다. 하지만 연애에는 계속 실패했고 결국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예민한 성격에다 수줍어하 는 경향 때문이었다고 한다. 『인어공주』는 은인의 딸에게 사랑을 거절당한 후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수줍고 일방적인 사랑을 하는 인어공주의 모습이 안데르센을 투영하고 있다. 안데르센의 동화 가운데서는 가장 초기에 속하는 작품이지만, 정경(情景)과 문장의 아름다움, 사랑의 지순함 등으로 안데르센동화의 진면목을 보여준 명작이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한 번도 바다 위를 구경해 보지 못한 인어공주는 자신의 15번째 생일에 물 밖을 구경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고 바다 위 구경을 나선다. 공주는 마침 바다 위를 항해 중이던 왕자를 보고 첫눈에 사랑에 빠진다.
그때 폭풍이 일어 왕자가 탄 배는 침몰하고 공주가 정신을 잃은 왕자를 구해낸다.
인어공주는 왕자의 곁에 있고 싶어서 자신의 목소리를 마녀에게 주는 대신 사람의 몸을 얻어 왕궁에 들어가서 시녀가 된다.
그러나 왕자는 벙어리인 인어공주가 자신을 구해준 생명의 은인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이웃 나라의 공주와 결혼하게 되고, 낙심한 인어공주는 슬퍼하며 바닷속으로 몸을 던져 죽게 된다.
지난해 모 인기 드라마에서는 남자 주인공이 인어공주 같은 연인을 생각하면서 눈물을 흘리며 동화 결말을 새로 쓰는 장면이 나왔다고 해서 화제였다. 해병대에 입대한 미남의 남자배우를 주인공으로 동격시 한 탓도 있겠지만 인어공주가 사랑에 실패한 뒤 바다에 몸을 던져 물거품이 되고 만다는 슬픈 이야기의 결말에 모두 마음 아파했다는 것이다. 관객들은 드라마 처럼 그 결말을 해피엔딩으로 바꾸고 싶어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인어공주가 물거품이 되고 마는 것. 그것은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의 원작(1837) 『인어공주』의 진짜 결말은 아니다.
*안데르센의 원작을 보면 바다로 뛰어든 인어공주는 ‘음악적인 소리로 말하는 투명하고 아름다운 존재들’에게 이끌려 자신도 그런 모습이 되어 하늘로 솟아오른다. 그들은 ‘공기의 딸들’, 즉 바람의 정령(精靈)이었다. 그들은 인어공주가 300년 동안 온갖 생물에게 시원한 바람을 보내주는 일을 하면 불멸의 영혼을 얻어 천국으로 들어갈 것이라고 말해준다.
재미있는 것은 이 진짜 결말을 들려줄 때 사람들의 반응일 것이다. 대부분 “인어공주를 좀 덜 불쌍하게 하려고 억지로 덧붙인 결말 같다”고 말한다. 영혼과 천국 운운하는 부분이 종교적 색채가 짙어 불편하다고 하기도 한다. 그 때문인지 현대의 책과 영화에서는 이 결말이 싹둑 잘리고 인어공주가 처연히 바다에 몸을 던지는 데서 끝나곤 한다.원작의 결말에는 유럽 민간의 오랜 정령 사상이 반영돼 있고, 또 안데르센이 이 작품의 가제를 ‘공기의 딸들’이라고 했을 정도로 그 결말을 중시했기 때문이다.
이 결말에서 ‘불멸의 영혼’ 이야기는 난데없이 나오는 것이 아니다. 현대에는 종종 생략되지만 원작에서 인어공주는 왕자의 사랑뿐만 아니라 그와 결혼하면 얻게 되는 인간의 영혼을 갈구하고 있었다. 물의 정령인 인어는 300년의 수명을 다하면 그냥 물거품이 되는 반면, 인간의 수명은 훨씬 짧지만 불멸의 영혼이 있어 사후에 새로운 차원으로 간다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안데르센 혼자의 발상이 아니라고 한다. 서양 중세문학 전문가들의 말을 빌려보자.
르네상스 시대 의학자이자 연금술사였던 파라켈수스는 자연을 구성하는 물·불·공기·흙 4원소에 정령이 깃들어 있고, 이들은 인간처럼 생각하고 말할 수는 있지만 인간의 영혼은 갖고 있지 않다고 했다. 이런 정령이 인간과 결혼하면 인간의 영혼을 나눠 받는다는 믿음이 파라켈수스 이후에 생겼다.
♣
『인어공주』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또다른 동화 <운디네>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운디네>는 독일 메르켄 지방의 작가 프리드리히 데 라 모테 푸케(Friedrich de la Motte Fouqué)가 쓴, 전세계적으로 사랑받고 인용되고 있는 창작동화이다.
이 동화에서 등장하는 운디네는 영혼을 얻기 위해 젊은 기사와 결혼한다. 그러나 기사는 나중에 인간 여성과 사랑에 빠져 운디네를 냉대한다. 이에 분노한 친척 정령들이 뱃놀이 중에 운디네를 친정인 물속으로 끌어가 버린다. 기사는 얼마 후 인간 여성과 재혼한다. 그 결혼식 날 샘에서 하얀 물줄기로 솟아나온 운디네는 정령의 법칙에 따라 배신한 인간 남편을 키스로 질식시켜 죽인다.
서양 중세문학 전문가들에 의하면 <운디네>는 『인어공주』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안데르센은 운디네가 인간과 결혼까지 했지만 결국 그 사랑이 비극으로 끝난 것에, 인간의 사랑이 그토록 불완전한 것에 주목했을 것이다. 그 자신이 두 차례 쓰디쓴 실연을 겪은 뒤였다. 그는 『인어공주』를 완성한 다음 친구에게 이런 편지를 썼다. “나는 내 인어공주가 푸케의 운디네처럼 불멸의 영혼을 타인의 사랑에 의존해 얻게 하지 않았어… 그런 식으로 영혼을 얻는 건 운에 달린 거야.”
이렇게 『인어공주』는 안데르센의 연애에 대한 체념과 일종의 해탈을 반영하고 있다. 처음에는 인어공주에게 왕자의 사랑을 얻는 것과 불멸의 영혼을 얻는 것이 동일한 문제였다. 그것은 마치 사춘기 첫사랑 때 자신의 모든 막연한 이상과 동경을 사랑하는 사람과 동일시하는 것과 같다. 그 사랑의 실패를 겪으며 인간은 성숙하고 이상과 사랑을 분리하게 된다.
원작의 결말에서 인어공주는 공기의 정령이 되면서 처음으로 눈물을 흘릴 수 있게 되고, 눈물과 함께 사랑의 번민을 씻어낸다. 이 마지막 장면 때문에 『인어공주』는 그저 청순가련한 여인의 비극이 아니라 하나의 해탈과 성숙의 이야기가 된다. 이것이 인어공주에 자신을 투영한 안데르센의 의도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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