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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현대소설

울스턴크래프트 셸리 장편소설 『프랑켄슈타인(Frankenstein)』

by 언덕에서 2012. 1. 19.

 

울스턴크래프트 셸리 장편소설 『프랑켄슈타인(Frankenstein)』

 

영국 여류작가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셸리(Mary Wollstonecraft Shelley, 1797 ~ 1851)가 쓴 괴기소설로 1818년 간행되었다. 원제목은 <프랑켄슈타인: 현대의 프로메테우스(Frankenstein : or, The Modern Prometheus)>, 부제는 <근대의 프로메테우스(The Modern Prometheus)>이다. 작가는 스위스 체재 중 남편 셸리나 시인 바이런과의 대담, 또한 그 당시 유행한 괴기소설에서 자극을 받았다고 한다. 소설은 '인위적인 생명 창조'을 다루고 있지만 '모든 인간은 착하게 탄생된다. 하지만 주위의 편견과 환경이 인간을 악한 존재로 만들어 간다'는 등의 주제를 다루고 있다. 이 소설이 발표됐을 때 여권주의자들은 '여성만이 갖고 있는 고유한 생명 창조(The Creation of Life)' 영역을 허물어뜨리려는 위험성을 갖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를 제기했다.  

 이 소설은 영화로도 여러 차례 제작되었는데, 영화사상 가장 널리 알려진 괴물이 창조되었다. 고딕 소설과 공상과학소설을 결합한 이 소설은 시체조각들을 모아 인조인간을 만들고 생명력을 불어넣었다가 결국 자신이 만든 피조물 때문에 목숨을 잃는 스위스의 신비학도 빅토르 프랑켄슈타인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 후 프랑켄슈타인이라는 이름은 처음에는 애정을 추구하지만 결국 충동적으로 난폭해진 괴물 인조인간 자체를 가리키는 말로 널리 사용되었다.  

 

 

영화 <프랑켄슈타인 (Frankenstein)>, 1931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프랑켄슈타인은 과학적인 능력이 뛰어난 과학자로, 키가 2가 넘고 흉측한 괴물을 만들어내게 된다. 그 괴물을 만들고 나서, 그는 소름이 끼쳐 내팽개치고 나오고, 괴물은 어디론가 떠난다. 괴물은 떠돌아다니다 어느 오두막에서 눈먼 노인과 그의 아들, , 아들이 사랑하는 터키 여인의 삶을 보면서 그들과 가까이 다가가고 싶은 마음이 들면서 안정과 행복을 추구하고자 한다.

  그러나 괴물을 본 사람들은 모두 그에게 돌팔매질했고, 위기에 처한 아이를 구해주어도 괴물은 사람들에게 도리어 외면당한다. 괴물은 결국 자신을 흉측하게 창조한 프랑켄슈타인을 저주하게 되고, 제네바에서 프랑켄슈타인의 어린 남동생 윌리엄을 살해하고, 프랑켄슈타인의 집에서 데리고 있었던 저스틴이라는 아름다운 여자아이에게 죄를 뒤집어씌워 죽게 만든다. 혐오감에 찬 프랑켄슈타인은 어느 날, 괴물과 협의를 하게 된다.

  괴물은 자신처럼 흉측한 여자 괴물을 만들어 주면 그녀를 데리고 아주 먼 곳으로 떠날 것이며, 더 어떤 해도 입히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고민하던 프랑켄슈타인은 결국 영국으로 가서 그 작업을 착수하기 시작하다가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인류에게 더 큰 피해를 줘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하여 그는 반쯤 완성된 작업물을 괴물이 보는 앞에서 파괴해 버린다. 괴물은 "네 결혼식 첫날 밤에 두고 보자"란 말을 남기고, 분노하여 그 자리를 뜬다. 프랑켄슈타인은 사랑하는 엘리자베스를 떠올리며 괴로움에 젖지만, 다시금 제네바로 떠나기로 마음먹는다. 그렇게 떠나는 도중 괴물은 프랑켄슈타인의 절친한 친구인 클레르발을 살해하고, 마침내 프랑켄슈타인의 신혼여행 첫날 엘리자베스까지 죽이게 된다.

  프랑켄슈타인의 아버지는 충격으로 죽음을 맞이하게 되고, 프랑켄슈타인은 온갖 분노에 휩싸이며, 괴물의 최후를 자신의 손으로 매듭짓고자 그를 계속해서 추격한다. 그야말로 파멸된 삶에 이어, 완전히 폐인이 되는 것이다. 괴물은 계속해서 그를 피해 도망쳐서 갔고, 드디어 북극에서 프랑켄슈타인은 난파할 위기에 처하고 월튼이 구해주는 것이었다.

  프랑켄슈타인은 월튼에게 자신의 지식에 대한 욕심으로 인해 파멸된 삶을 통해 교훈을 얻을 것을 촉구하고, 무리한 욕심을 부리지 말라고 말하며 돌아가라고 당부한다. 프랑켄슈타인이 죽은 후 괴물은 월튼 앞에서 자신이 죽여야 할 것인데 죽이지 못했다는 것과 그가 죽음으로 인해서 모든 욕심이 물거품이 되었다고 말하며 자신 역시 죽겠다고 말하고 사라진다. 월튼은 결국 프랑켄슈타인의 말을 귀담아듣고 자신의 욕심을 접고, 돌아가고자 한다.

 

 

영화 <프랑켄슈타인 (Frankenstein)>, 1931

 프랑켄슈타인은 거구에 깍두기 머리를 지닌 인조인간의 이름이 아니라, 그를 창조한 젊은 과학자의 이름이다. (깍두기 머리 역시 영화 때문에 굳어진 이미지고, 원작 소설에서는 긴 산발머리다)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어릴 때부터 생명과 죽음의 문제에 관심이 많았고 어머니가 일찍 세상을 떠나면서 그게 더 심해져서 결국 대학에서 생명 창조 실험을 하는 데 이르렀다.  프랑켄슈타인의 인조인간은 처음부터 목표물이었다.

 그러나 프랑켄슈타인 박사는 실수를 저질렀다. 인간 수준으로 생각할 수 있는 피조물이 나오면 철학자 르네 데카르트의 제1원리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처럼 그 피조물이 독립된 자아(自我)를 지닌다는 것을, 창조자의 생각대로만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간과한 것이다. 여기에서 모든 비극이 시작된다.

 빅터 역시 생명 창조의 열망에 사로잡혀 별 죄책감 없이 도굴한 시신을 이용해 인간을 만들었다. 그러나 막상 완성된 인간이 미라 같은 피부에 “흐리멍덩한 노란 눈을 뜨고 경련을 일으키며 사지를 꿈틀거리는 것”을 보고 그 모습이 너무나 흉측해서 충격을 받는다. 그래서 맥이 빠져 잠이 들었다 깨어나 보니 이번에는 인조인간이 침대 커튼을 들추고 노란 눈으로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프랑켄슈타인』에서 인조인간이 침대 커튼을 들추고 빅터를 바라보는 장면은 과학기술의 부작용에 대한 간과가 빚어낸 괴물이 인간을 위협하는 것을 상징적으로 시각화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래서 이 작품은 오늘날 첨예하게 발전되는 '유전 공학'과 '생체 공학'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도 담고 있다는 문명론적인 해석도 제기되고 있다.

 

 ♣

 

 여성 작가 메리 셸리가 열아홉의 나이에 놀라운 상상력으로 탄생시킨 과학소설의 고전. 무생물에 생명을 부여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낸 물리학자 프랑켄슈타인이 시체로 만든 괴물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인간 이상의 힘을 발휘하는 괴물은 추악한 자신을 만든 창조주에 대한 증오심에서 복수를 꾀한다.

 과학기술이 야기하는 사회, 윤리적 문제를 다룬 최초의 소설 『프랑켄슈타인』은 아이작 아시모프의 <아이, 로봇>, 카렐 차페크의 <R. U. R.> 등의 과학소설은 물론, <블레이드 러너>, <터미네이터> 등 영화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나사못이 관자놀이에 박힌 괴물의 강렬한 시각적 이미지는 20세기 대중문화사에서 무한히 재생산되며 『프랑켄슈타인』을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공포소설 중 하나로 만들었다.

 최초의 프랑켄슈타인 영화는 1910년에 토머스 에디슨이 만들었다. 2편의 독일 영화 <진흙인형(The Golem)>(1914) <마네킨(Homunculus)>(1916)도 유대의 민담에서 유래한 비슷한 주제를 다루었다. 보리스 칼로프가 괴물 역을 맡은 할리우드 영화 <프랑켄슈타인>(1931)은 셸리의 원작 소설에 바탕을 둔 작품이었다. 이 영화는 대성공을 거두었으며 이 영화 이후 <프랑켄슈타인의 신부(Bride of Frankenstein)>(1935), 일본에서 제작한 <프랑켄슈타인의 세계정복(Frankenstein Conquers the World)>(1969) 등 프랑켄슈타인에 관한 이야기를 변형시킨 수많은 영화가 만들어졌다. 이들 영화에서 괴물을 프랑켄슈타인이라고 잘못 부르는 경우가 흔히 있다.

 

 

 

 


<소설가 메리 셀리 1797 ~ 1851>

 

 

 *<참고>『프랑켄슈타인』은 과학적으로 엄밀한 작품은 아니지만, 과학기술이 야기할 수 있는 사회적·인권적 문제를 최초로 진지하게 다루었기 때문에, SF의 중요한 시조라고 할 만하다. 빅터는 자신의 피조물이 훗날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고 기존 사회와 충돌할 것을 생각해보지 않은 채 함부로 창조했고, 나중에는 이미 독립된 인격체가 된 피조물을 창조자라는 이유로 함부로 파괴하려고 했다. 그런 빅터에게 인조인간은 “당신은 어찌 그렇게 생명을 갖고 논단 말인가?”라고 외친다. 머지않아 체세포 복제 연구와 인공지능 개발로 저 인조인간의 후예를 볼지도 모르는 우리는 그 말을 기억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여성은 SF와 친하지 않다는 통념이 있다. 그러나 SF의 시조로 손꼽히는 『프랑켄슈타인』을 쓴 메리 셸리는 긴 드레스를 걸친 19세기 여성이었다. 그녀의 부모가 무정부주의자 윌리엄 고드윈과 여성운동가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였다는 것을 감안하면 놀라운 일도 아니다. 남편은 낭만파 시인 퍼시 셸리였다. 부모의 영향을 받아 메리 셸리는 인조인간에게 사회적 마이너리티의 분노를 투영했다. “부(富)나 좋은 혈통이 없으면 선택받은 소수의 이익을 위해 자신의 능력을 낭비하게 되지. 게다가 나는 외모조차 흉측하지 않은가?”라고 인조인간은 외친다. 작가 자신도 마이너리티로서 고통을 겪었다. 『프랑켄슈타인』의 작가가 여성임이 밝혀지자 악의적인 평이 많았던 것이다.  *<참고> 중앙일보 문소영 기자의 <목요문화산책>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