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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를 읽다

참 우습다 / 최승자

by 언덕에서 2011. 8. 15.

 

 

참 우습다

 

                                최승자 (1952~ )

 

작년 어느 날

길거리에 버려진 신문지에서

내 나이가 56세라는 걸 알고

나는 깜짝 놀랐다

나는 아파서

그냥 병(病)과 놀고 있었는데

사람들은 내 나이만 세고 있었나보다

그동안은 나는 늘 사십대였다

참 우습다

내가 57세라니

나는 아직 아이처럼 팔랑거릴 수 있고

소녀처럼 포르르포르르 할 수 있는데

진짜 할머니 맹키로 흐르르흐르르 해야 한다니

 

 


 

 

위 시에는 “포르르”와 “흐르르” 사이에 터진 거품이 있습니다. 덜그럭거리는 틀니가 있구요. “포르르”가 가지에 앉는 산새라면 “흐르르”는 기침과 기침 사이에서 끓는 가래 같은 느낌을 주는군요. 새는 날아갔고 거품은 터졌는데 또 다른 기침이 쏟아져서 틀니가 빠집니다. 우리가 알고 있던 이 시인은 늘 사십대였지요. 그러나 신문은 이분을 56세라 적고는 그것마저 버렸습니다. 우습다고 말하는 동안, 겨우 연 하나 바꿨을 뿐인데, 한 해가 흐릅니다. 그러다 보면 노인이 되고 말겠지요. 나이가 든다는 것은 숙명이겠지만 어떻게 보면 기쁜 일이기도 합니다.

 

 제가 존경하는 어른이 한 분 계십니다. 어릴 적 앞집에 사시던 친구 아버님이신데 지금은 치매를 앓고 계시지요. 친구와 어쩌다 만나서 술을 한 잔 하면 그때마다 이 어른이 생각나서 계신 집을 함께 들르곤 합니다. 이십 몇 년 전 제가 대기업에 입사했을 때 기뻐하시며 조건 없이 흔쾌히 회사에 보증을 서준 분이시기도 하지요. 지금은 팔십이 훨씬 넘은 연세이시다보니 저를 알아보지 못하십니다. 단지, 어린 아이와 같은 귀여운 함박 웃음을 지으시며

 “응, 너 왔구나!”

반가워하십니다.

 고대 그리스의 희극작가 소포클레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늙어가는 사람만큼 인생을 사랑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소포클레스의 말처럼 노인들은 한결같이 인생을 사랑하고 있었으므로 제게는 모든 노인들이 아름답게 비칩니다. 노인들의 모습을 보는 것은 석양의 낙조를 바라보는 것처럼 황홀하지요. 그들은 비록 허리가 굽고, 거동이 불편하고, 행동이 느리고, 머리가 희어져 볼품이 없다 해도 한평생을 살아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노인을 보면 인생이란 저렇게 살만한 가치가 있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되는군요. 노인은 존경받아야 합니다. 노인들이 쓸모없다고 버림받은 사회는 찰나주의의 쾌락 속에 허물어 가지 않겠어요? 전통적으로 우리 겨레는 노인들을 숭상해 왔습니다. 이를 최고의 예(禮)라고 가르쳐 왔지요. 노인들이 쓸모없다고 쓰레기처럼 버려진다면 인간의 존엄성은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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