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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를 읽다

이 또한 지나가리 / 랜터 윌슨 스미스

by 언덕에서 2011. 8. 8.

 

 

 

 

 

 

 

 

 

이 또한 지나가리

 

                                        랜터 윌슨 스미스

 

어느 날 페르시아의 왕이 신하들에게 명령했다.

슬플 때는 기쁘게

기쁠 때는 슬프게 만드는 물건을 찾아오라고.

 

신하들은 밤샘 모임 끝에

왕에게 반지 하나를 바쳤다.

왕은 반지의 글귀를 읽고

웃음을 터뜨리며 기뻐했다.

반지의 글귀는 이러했다.

'이 또한 지나가리.'

 

슬픔이 밀려와 그대 삶을 흔들고

귀한 것들을 쓸어 가 버리면

네 가슴에 대고 말하라.

'이 또한 지나가리.'

 

행운이 너에게 미소 짓고 기뻐할 때

근심 없는 나날이 스쳐 갈 때

세속에 매이지 않게

이 진실을 고요히 가슴에 새기라.

'이 또한 지나가리.'

 

 - 신현림 엮음  <딸아, 외로울 때는 시를 읽으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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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경택 감독의 영화 ‘똥개’에서의 한 장면이 기억납니다.

 형사인 아버지(김갑수)가 낯선 고아 소녀(엄지원)를 집에 데려오며 주인공(정우성)에게 친남매처럼 지내라고 합니다. 그러나 주인공은 사사건건 자신의 생활에 간섭하는 그 여자가 싫어집니다. 그래서 어느 날 소녀에게 생각 없는 한 마디를 짜증스레 내뱉지요.

“니, 너그 집에 가라! 이 가시나야!”

 고아로 자라온 소녀에게 이 말이 큰 상처가 됨은 물론입니다.

 그 때 소녀가 이야기하지요.

 “니, 그거 밖에 안 되나? 이 씨발놈아!”

 “…….”

 “어릴 때 엄마가 바람이 나서 가출하고 아버지는 칼을 품고 엄마를 찾아다니다 죽었다. 그래서 나는 먼 친척 아주머니 집에서 자랐다……. 어느 해 어린이날, 친척 아주머니가 나를 예쁜 옷으로 갈아입히고는 어느 집 대문 앞에서 눈감고 100까지 헤아리라고 했다……. 시킨 대로 눈을 감고 100을 헤아린 후 무서워 눈을 떠야 하는데……. 그런데 눈을 뜨면 아주머니가 나를 두고 멀리 뛰어가는 게 보일까봐 눈을 못 뜨겠더라.…….”

 코미디 풍의 영화였는데 이 장면이 너무 슬퍼서 저는 그만 눈물을 흘리고 말았습니다. 못살던 시절,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했거든요.

 아래는 최근에 읽었던 책에서 기억에 남는 부분인데요. 유성용이란 작가 분이 쓴 <다방 기행문>이라는 책의 159쪽에 있는 부분입니다. 경북 안강읍이 고향인 58년생 '사공' 씨 성을 가진 스님의 이야기로 이 분은 부모없이 할머니 밑에서 유년시절을 보냈군요. 그대로 옮겨보겠습니다. 위 영화 ‘똥개’에서의 장면과 흡사한 뉘앙스를 주지요.

 

 

 그날은 배가 너무 고팠다네.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가던 길에 마을 어귀에 잇는 포도밭에서 난 그만 걸음을 멈춰버렸네. 포도가 주렁주렁 달려 있더군. 난 멍청하게 바라만 봤지. 감히 저 포도 한 송일 먹어본다는 건 꿈도 못 꿨어. 탐스러운 그 물건 앞에 멍하니 서 있을 뿐이었다네. 그때 포도밭을 지키던 주인 아낙이 나를 부르더군. 그러고는 문득 이렇게 말하는 거야.

 “얘야, 네가 먹고 싶은 만큼, 다 따먹어라.”

 “ ……. ”

 나는 지금도 그녀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몰라. 그 포도송이가 기억날지언정 말이야. 내가 설령 말귀를 잘못 알아들었더라도 무슨 상관이냐 싶더군. 팔뚝만한 포도를 세 덩이나 따서 정신없이 먹었지. 그리고 어떻게 되었는지 아나? 정신을 잃었어. 말 그대로 정신을 잃고 쓰러진 거야. 너무 긴장해서 그랬을까, 아님 갓 딴 포도에 들어 있는 독기 때문이었을까? 정신을 차리고 보니 늦여름의 오후, 그 아낙네 집 툇마루에 누워 있더군. 시원한 바람이 살살 불고 있더라. 그 집에서 저녁상까지 받아먹고 할머니 집으로 돌아왔네. 내게 있어서는, 이것이 고향에 얽힌 유일한 아름다운 추억이지. 몇 십 년이 흐르고 나서 그곳에 가보았지만, 그 아낙도, 그 아낙의 툇마루도, 그리고 포도밭도, 고향에는 이미 아무 것도 없더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