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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를 읽다

여기를 저기로 삼고 / 김구(金逑)

by 언덕에서 2011. 8. 1.

 

 

 

 

여긔를 뎌긔 삼고

 

                                                       김구(金逑 : 1488~1534).

 

 

여긔를 뎌긔 삼고 뎌긔를 예 삼고져.  여긔 뎌긔를 멀게도 삼긜시고.  이 몸이 호접(胡蝶)이 되여 오명가명 하고져.

 

 

 

 

 

 

 

☞ 여기를 저기로 삼고 저기를 여기로 삼고 싶구나.

 여기와 저기를 멀게도 만들었구나.

 이 몸이 나비가 되어 왔다 갔다 하고 싶구나.

 

 

 

 


 

 

 

 

이 글을 쓴 분은 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서예가(1488~1534)인 김구(金逑)로 그의 자는 대유 호는 자암입니다. 조선초기 4대 서예가의 한 분으로 그의 서체를 인수체라고 부른다는군요. 저서에 <자암집>이 있습니다.

 작가는 생원과 진사의 양 장원이 되고 부제학이 되어 좋은 정치를 시도하였으나 기묘사화에 연루되어 10여 년의 유배 생활을 하였습니다. 유배 생활을 마치고 고향에 돌아왔을 때는 부모가 돌아간 뒤였지요. 애통히 여긴 그는 부모의 산소에 가서 통곡하다가 기절까지 하였고, 조석으로 산소에 가서 통곡함에 풀이 다 말라 버렸다고 전합니다. 이 때문에 병을 얻어 그는 그 해에 죽고 말지요.

 이 시조는 작가가 긴 유배 생활을 하면서 갈 수 없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한 것입니다. 나비가 되어 왔다 갔다 하겠다는 심정에서 그의 간절한 사향심(思鄕心)을 엿보이는군요. 이래서 문학은 예나 지금이나 불변의 진정성을 전해줍니다.

 

 

 

 

☞ 기묘사화 : 조광조의 혁신정치에 반발한 훈구파들에 의해 발생한 사화. 중종에 의해 등용되어 개혁정치를 펼치던 조광조는 38살 때 대사헌의 벼슬에 뛰어 올랐다. 중종의 신임을 받은 조광조는 성리학으로 정치와 교화의 근본을 삼아 고대 중국의 왕도정치를 이상으로 하는, 이른바 지치주의(至治主義) 정치를 실현하려 하였으나 급진적인 면이 적지 않아 훈구세력과 대립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조광조는 중종반정 때 참가하지도 않고 부당하게 공신이 된 사람들을 모두 가려내어 78명을 공신록에서 지워 버렸다. 이것은 신진 사림파 세력에게 훈구 대신들이 된서리를 맞은 셈이었다. 남곤 등은 조광조에게 앙심을 품고 있다가, 중종의 사랑을 받는 희빈 홍씨의 아버지인 홍경주를 움직였다. 그들은 희빈과 짜고 나뭇잎에 꿀로 '주초위왕(走 肖 爲 王)'이라는 글씨를 써서 그것을 벌레가 먹게 했다. '走'자와 '肖'자를 합하면 조(趙) 자가 된다. 즉, 조씨가 왕이 된다는 뜻이니, 이것은 조광조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하였다. 이리하여 조광조 등에 사형이 내려지고, 그 처자들은 노비로 삼았으며, 재산을 모조리 빼앗는다는 판결이 내려졌다. 조광조는 1519년 12월 20일, 사약을 받아 38살의 나이로 숨졌다. 이 해가 기묘년이므로, 이 사건을 '기묘사화'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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