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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희곡

체호프 희곡 『벚꽃 동산(Vishnyovy Sad)』

by 언덕에서 2011. 7. 12.

 

체호프 희곡 『벚꽃 동산(Vishnyovy Sad)』

 

 

러시아 작가 A.체호프(Anton Pavlovich Chekhov.1860∼1904)의 4막 희곡으로, 작가 자신은 ‘희극’이라고 주석을 달고 있다. 1903년에 써서 이듬해 1월 모스크바 예술극장에서 초연된 뒤에 출간되었다. 남러시아에 ‘벚꽃 동산’또는 '벚나무 동산'이라는 경치 좋은 곳이 있다. 이 고장을 둘러싼 세대(世代)의 움직임이 이 희곡의 테마이다.

 스타니슬라프스키는 19세기 러시아의 대표적인 연극인으로, 판에 박힌 듯한 연극을 배제하고, 진정으로 예술적인 연극의 발전을 꾀했다. 그래서 1898년 연출가이며 극작가인 단체코와 공동으로 「모스크바예술극장」을 창립하며, 체호프의 <갈매기>를 시초로 일련의 체호프 극의 연출․출연으로 빛나는 성공을 거두었다. 특히, <벚꽃 동산>은 이 극장의 주요 레퍼토리로, 연극사에 새로운 시대를 개막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러시아 작가 A.체호프 (Anton Pavlovich Chekhov.1860-1904)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남편과 사별한 라네프스카야 부인은 아들까지 익사(溺死)하는 불행한 사건들이 잇따르자 슬픔을 견디지 못하고 외국으로 떠나버렸다. 파리에서 라네프스카야 부인은 그녀에게 들러붙어 무위도식하며 사는 한 남자와 타락의 길을 걷고 있었다. 그러나 그 남자가 그녀의 돈을 계속해서 갈취하자 지칠 대로 지친 부인은 귀국하여 딸 아냐와 함께 가에프 오빠의 영지(領地)인 '벚꽃 동산'으로 갔다. 그러나 백과사전에도 실릴 정도로 선조 대대로 내려온 이 영지도 담보로 잡혀있어 여름에는 경매에 붙여질 형편이었다.

 한편, 오래 전에 그 저택에서 고용살이를 했던 로파힌은 신흥 자본가로 출세했는데, 그는 라네프스카야 부인을 경애하여 그 가족의 일을 진심으로 걱정했다. 그는 그들의 궁핍함을 구제해 주기 위한 방안으로 벚꽃 동산을 없애고 별장지를 조성하자는 현실적인 제안을 하지만, 라네프스카야 부인이나 가에프는 그의 계획을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옛날처럼 여유 있는 생활을 했다. 레스토랑에서 비싼 음식을 먹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금화를 주기도 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자신들의 현실을 인식하지 못하는 라네프스카야 오누이를 보다 못한 만년 대학생이자 가정교사인 트로피모프는 새로운 생활을 해야 한다고 역설했고, 딸 아냐는 그에게 진심으로 공감했다.

 이윽고 8월 경매의 날이 다가왔다. 라네프스카야는 그런 날에도 밴드까지 불러 무도회를 열었고, 가에프는 조모가 손녀딸 아냐에게 보낸 돈을 가로채 경매에 나갔다.

 가에프와 로파힌이 집에 오자 라네프스카야는 경매 결과에 대해 물었다. 이에 로파힌은,

 “벚꽃 동산은 제가 샀습니다. 그것은 이제 제 것입니다.”

라고 감격해서 말했다. 옛날의 농노(農奴)가 주인 땅을 갖게 된 것이었다. 라네프스카야는 이 말에 제 정신을 잃고 비통하게 울부짖으며 쓰러졌다.

 집을 비워주게 된 가족들은 뿔뿔이 헤어져야 했다. 라네프스카야는 파리에 있는 그 남자의 품으로, 가에프는 은행에 취직했고, 그의 수양딸은 ‘벚꽃 동산’의 가정부가 되었으며, 아냐는 아무런 미련도 없이 공부를 하기로 했다. 모두가 떠난 텅 빈 대저택에 홀로 남은 노쇠한 하인 피르스가 벚꽃을 자르는 소리를 들으면서 소파에 눕는다.

 

 이 작품은 4막으로 된 희곡으로 체호프의 희곡 중에서도 가장 완숙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라네프스카야 부인은 매력적인 모습에 따뜻한 마음을 갖고 있어 누구에게나 호감을 산다. 그러나 그녀는 감정의 기복이 심하여 웃다가도 눈물을 흘리는가 하면, 명상에 잠겼다가는 금세 쾌활해진다.

 가에프는 라네프스카야를 부도덕한 면이 있다고 여긴다. 왜냐 하면, 그녀가 귀족도 아닌 변호사와 결혼하고 과음으로 죽은 남편에 이어 다른 남자와 함께 외국으로 도망가며, 잠깐 동안 헤어지기는 하지만, 다시 그와 결합하여 파리의 싸구려 아파트에 살기 때문이다. 그녀는 과거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그녀는 로파힌의 영지에 관한 구체적․현실적인 이야기에 귀 기울이지 않았으며,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파멸해 간다.

 

 

벚꽃동산」은 국내외 가릴 것 없이 가장 많이 공연되는 체호프의 장막극 중 하나이다. 이 작품이 사랑받는 이유 중 하나는 <갈매기>나 <세자매> 등 다른 체호프의 장막극처럼 우울하고 무거운 이야기를 전하면서도 웃음을 싣고, 희망적인 여운을 남기고 있기 때문이다. 삶이 고되더라도 살아가는 것 자체에 대한 애착을 담아내는 결말이 많은 관객에게 마음의 위로를 주는 것도 사실이다.

『벚꽃 동산』에서 체호프는 무엇보다 먼저 당시 러시아 귀족의 기생적 삶의 모습, 부르주아의 탐욕, 노동과 자본 사이의 경제적 모순으로 인해 첨예화되는 일상적 삶의 현실을 직시했다. 그래서 이 작품에서는 외부적으로 드러나는 충돌과 갈등보다 사회적, 사상적, 도덕적으로 내면화 충돌·갈등이 더 본질적인 문제로서 등장한다. 그렇다고 해서 체호프는 당시 러시아의 신흥자본가들을 이상화하지도 비하하지도 않았다. 체호프는 이 새로운 사회적 힘의 실체를 직시했고, 이 힘이 현실을 바꿀 것이라고 믿었다. 다른 한편 체호프는 앞서 언급한 당시 러시아의 현실문제에 대한 대안으로서 높은 도덕적 순결함, 민중에 대한 사랑 등을 표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