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리 장편소설 『을화(乙火)』
김동리(金東里.1913∼1995)의 장편소설로, 1936년 [중앙]지 5월호에 발표된 단편소설 <무녀도>를 1978년 장편으로 개작하여 [문학사상]지에 발표한 작품이다.
이에 대해 작가 자신이 밝힌 바에 따르면, 「을화」를 쓰게 된 동기는 '샤머니즘의 세계를 더욱 자세하게 문학적으로 형상화시키는 일과, 샤머니즘에서의 죽음과 삶에 대한 문제점을 한국문학, 나아가서는 세계문학에 제의해 보고자 한 것'이라고 한다.
순수문학과 신인간주의의 문학사상으로 일관해 온 그는 8ㆍ15광복 직후 민족주의문학 진영에 가담하여 김동석ㆍ김병규와의 순수문학논쟁을 벌이는 등 좌익문단에 맞서 우익측의 민족문학론을 옹호한 대표적인 인물이다. 이때 발표한 평론으로, <순수문학의 진의>(1946) <순수문학과 제3세계관>(1947) <민족문학론>(1948) 등을 들 수 있다. 작품 활동 초기에는, 한국 고유의 토속성과 외래사상과의 대립 등을 신비적이고 허무하면서도 몽환적인 세계를 통하여 인간성의 문제를 그렸고, 그 이후에는 그의 문학적 논리를 작품에 반영하여 작품세계의 깊이를 더하였다. 6ㆍ25전쟁 이후에는 인간과 이념과의 갈등을 조명하는 데 주안을 두기도 하였다.
장편소설 「을화」는 1979년 변장호에 의해 영화로 만들어졌으며. 1980년 KBS-TV에서 [TV문학관] 1호작 드라마로 제작·방영하였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가난과 무식과 소박한 토속적 삶의 얽힘 속에서 옥선(을화의 처녀 때 이름)은 이웃집 총각 성출과 사랑을 맺고, 처녀의 몸으로 영술을 가진 후 마을을 쫓겨나게 된다.
그러다가 영술의 병으로 무당을 찾게 되는데, 영술의 병은 나았지만, 옥선이가 병을 얻게 되고, 이때 신이 지피게 되어 무당이 된다. 이때부터 을화로 명명되며, 큰무당으로 명성을 얻고, 젊은 화랑 방돌이와 정을 통하여 딸 월희를 갖게 된다.
이후 영술은 교회를 찾고, 박 장로를 만나게 되는 것이 인연이 되어 그의 생부(生父)인 이성출과 만나게 되고, 성(姓도) 찾게 된다. 박 장로는 양반 가문의 집안 출신으로, 독립운동에 가담하고, 계몽운동에도 참여하고, 미신 타파에 앞장 선 인물이다.
월희도 교회에 나가보려고 하는데, 을화는 이를 반대한다. 오구굿 때 정 부잣집 아들이 월희의 미모를 보고 첩으로 들이려 하자, 을화는 반가워하지만, 영술은 이에 반대한다. 그러다가 을화는 아들 영술이가 생부(生父)를 찾은 사실을 알게 되고, 빼앗길까 봐 두려워하면서 기독교에 대한 강한 반발을 드러낸다. 어느 날, 영술은 을화가 태우는 성경책을 빼앗으려다가 을화의 칼에 찔리게 된다.
결국, 영술은 죽고, 방돌이는 월희를 데리고 어디론가 떠나 버린다.
그의 작품 경향은 광복 전에는 한국적ㆍ토속적인 것에 바탕을 두고 신비적ㆍ허무적 색채를 띠었으나, 광복 후 후기에 들어서면서 인간성 옹호와 생의 근원적 회의를 곁들여 사상적 깊이를 더했다. 문학의 순수성, 예술성을 주장해 오고, 민족문학 정립에 기여함. 그의 문학은 종교와 결부되어 있고, 인간의 운명과 구원의 문제를 가장 많이 다루고 그러면서 작품의 예술성을 추구한 것이 특색이다. 그의 문학은 오랜 기간 동안 보여준 한국적 주제의 강렬함과 향토적 미학의 색채로 독보적인 경지를 이루고 있다. 그의 문학 세계는 보통 한 작가에 대해 말할 때 거론하는 소재의 특이성과 강렬한 주제 의식, 작가 정신의 변모 등을 통해서 보더라도 중요한 문제들을 제시해 왔다. 일반적으로 그외 문학 세계는 크게 샤머니즘의 세계, 향토적인 토속의 미, 종교적 주제, 그의 일련의 작품 등의 네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이 작품 「을화」는 단순한 샤먼의 세계를 그려낸 소설이 아닌 샤먼의 세계를 소설미학의 세계로 끌어올린 대단한 작품이다. 이 작품에는 등장하는 인물들의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그들이 바로 주체적으로 자신의 삶을 택해왔다는 점이다. 작가가 사실 작품에서 가장 강조하고 싶었던 것은 바로 이 부분이다. 「을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사실 그 시대에 비추어 보면 굉장히 극단적이고 혁신적인 인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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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리는 광복 후 혼란한 조국의 현실 앞에서 자칫 정치주의 문학 앞에 시녀 구실 밖에 하지 못할 뻔했던 한국 문학의 위기를 구출해낸 실로 중대한 사명을 이룩한 민족문학의 길잡이가 된 작가라고 할 수 있다. 좌익계 정치적 문인단체와의 치열한 대결과 함께 문학이 문학 아닌 것으로부터 차별을 갖기 위한 맹렬한 논쟁과 문학 아닌 것을 배제하는 문학 재건 운동의 선두에서 활동하였다.
김동리의 초기 작품세계에 나타나고 있는 토속적인 신비와 인간의 운명의식, 그리고 동약적인 허무의지의 탐구는 마치 서구의 신에 비견되는 신비한 자연에의 몰입 등 존재론적이며 관념적인 문제로 대거 등장하고 있다. 김동리 문학의 핵심 사상은 그의 평론집 <문학과 인간>에 명확하게 제시되어 있는데, 그가 ‘문학하는 것’은 곧 ‘구경적 생의 형식’이라는 말을 통해서 인간의 조건이 내포하고 있는 부조리한 운명 앞에서 허무의식을 안고 비통한 몸부림을 침과 동시에 서양의 신에 해당하는 자연 속으로 귀의, 몰입하는 자세를 추구해가는 것이다.
작가의 토착적이고 민족적인 소재를 거시적인 시각과 원형적인 것들에 입각해 특유의 상징적 깊이로 민족문학과 순수 문학을 보다 높은 차원으로 이끌어낸 부분을 이 작품 「을화」를 통해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작가는 이 작품의 주인공 ‘을화’를 통해 삶과 죽음의 세계가 서로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암시하고 있으며, 오구굿 장면에서 영술이 굿을 보는 동네 사람들과 공감대가 형성되는 것을 분명히 인식함으로써 우리의 공동 의식이나 일체감을 확인시키려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장편소설 「을화」는 김동리의 문학 완숙기에 쓰인 작품으로, 샤머니즘적 인간의 생명에 대한, 그리고 죽음에 대한 김동리의 가치관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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