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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김승옥 단편소설 『무진기행(霧津紀行)』

by 언덕에서 2011. 7. 15.

 

 

김승옥 단편소설무진기행(霧津紀行)

  

  

소설가희곡작가 김승옥(金承鈺.1941∼)이 1964년 10월 [사상계]에 발표된 단편소설이다. 자기 존재 이유의 확인을 통하여 지적 패배주의나 윤리적인 자기 도피를 극복해 보려 하는 작가 의식을 담고 있다.

 안개로 상징되는 어린 시절의 고향 ‘무진’에 다녀오는 한 인간의 체험을 통해 일상을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들의 의식을 해부하고 있는 작품이다. 불안하고 답답한 분위기와 무책임하고 비굴한 인물의 행동이 아무런 주저 없이 표현되었다는 점에서 1960년대 독자에게 충격을 가했다. 더욱이 외적 사물에 예민하게 변화 있게 반응하는 작가의 감성과 이국적인 문체는 그를 1960년대의 가장 주목받는 작가로 만들었다.  

 

'무진기행' 원작 영화 <안개>, 1967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아내의 권유로 '나'는 고향 무진으로 떠난다. 젊고 부유한 미망인과 결혼을 했고, 얼마 후 제약회사 전무가 될 서른세 살의 '나'는 어머니의 묘가 있고 더 젊은 날의 추억이 있는 무진으로 간다. 짙은 안개, 그것은 무진의 명물이었다. 과거에도 무언가 새 출발이 필요할 때면 무진에 오곤 했었다. 그러나 기억 속의 그곳은 늘 어두운 골방 속에서 화투와 불면과 수음, 그리고 초조함이 있었을 뿐이다.

 무진에 온 날 밤, 중학 교사로 있는 후배 '박'을 만난다. 그와 함께 지금은 그곳 세무서장이 된 중학 동창 '조'를 만난다. 그는 '손금이 나쁜 사내가 스스로 손금을 파서 성공했다'는 투의 얘기에 늘 감격해 하던 친구다. 거기서 '하인숙'이라는 음악 선생을 소개받는다. 대학 졸업 음악회 때 '나비 부인'의 아리아 '어떤 개인 날'을 불렀다는 그녀는 술자리에서 청승맞게 유행가를 부르고 둘만이 함께 있을 때, 무진에서 자신을 구원해 줄 것을 '나'에게 간청한다. '나'는 그녀에게서 과거의 자신을 발견한다. 다음날 만나기로 약속한다.

 이튿날, 어머니 산소에 다녀오는 길에 방죽 밑에서 술집 여자의 시체를 본다. 바다로 뻗은 방죽, 거기 '나'가 과거에 폐병으로 요양했던 집에서 하인숙과 정사를 갖는다. 그녀에게 사랑을 느끼지만 끝내 말하지 않는다.

 다음날 아침, 아내로부터 온 급한 전보가 과거의 의식에 빠져 있던 '나'를 일깨운다. 하인숙에게 사랑한다는 편지를 쓰지만 곧 찢어 버린다. 이제는 영원히 기억의 저편으로 무진을 묻어 두기로 결심하면서 '나'는 부끄러움을 느끼며 그곳을 떠난다.

'무진기행' 원작 영화 <안개>, 1967

 

 인간은 누구나 일상을 벗어나 보고 싶은 충동을 느낄 때가 있다. 이러한 충동은 이유 없이 발동하는 선험적인 것이기도 하지만, 일상에서 허무와 회의를 느낀다든가, 실의와 좌절에 빠져 있을 때 특히 강렬하게 나타난다. 여기에는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이 어떤 구원의 빛을 던져 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감이 내포되어 있기도 하다.

 의욕의 회복, 건강함의 재충전 등을 위하여 잠시 휴식을 취하는 것과 같은 의미를 지니는 이 일상으로부터의 분리는 우리의 생활을 구성하는 필수적인 요소라고 볼 수 있다. 우리는 누구나 이러한 욕구를 하루에도 몇 번씩 느끼면서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이 욕구는 완전히 일상으로부터 분리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거의 대부분 복귀를 전제로 하는 잠시 동안의 일탈이고, 또 그럴 때 그 분리는 현실적인 의미를 갖는다. 어떤 경험을 통해 힘을 얻고 다시 돌아와서 새로운 의욕으로 삶을 영위해 나감이 이 분리(떠남)의 참다운 의미라 할 수 있다.

 

 

 단편소설 『무진 기행』은 이러한 보편적인 인간 심성을 극화시켜 보여주고 있다. 주인공 윤희중이 서울을 떠나 무진으로 갔다가 다시 서울로 돌아온다는 것이 이야기의 큰 줄거리이다. 떠나 보았자 아무런 구원도 의미도 없었기 때문에 다시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떠나 있는 동안 서울의 생활이 지니는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고 다시 돌아오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흔히 볼 수 있는 여행의 구조와 동일한 구조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그러므로 윤희중의 떠남은 도피가 아니라 발견을 위한 탐색 여행인 것이고, 그 탐색 여행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다음 다시 자기의 세계로 돌아올 것을 전제로 한 떠남이다.

 윤희중이 그의 고향인 무진으로 가서 몇 사람을 만나고, 또 몇 가지 체험을 하는 과정에서 그는 무진을 다시 떠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발견한다. 특히 하인숙을 통해 그것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것은 주인공 자신의 인간적 욕구의 실현이 가능한 장소는 서울이라는 깨달음이다.

 이 작품은, 인간은 자신을 새롭게 발견함으로써 인생의 의미를 찾아간다는 진실을 보여주고 있다. 또 한 가지 이 작품은 1960년대적인 삶에 대한 회의와 허무 의식을 그 제재로 하고 있음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