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현대 소설가 바진(巴金.바진.1904.11.25∼2005.10.17)
중국 현대 소설가. 본명 이비감(李芾甘.리페이간). 사천성(四川省) 성도(成都) 출생. 성도 외국어학교를 졸업하고 파리에 유학하였다. 허무적인 경향이 강하여 바쿠닌(巴枯寧)과 크로포토킨(克魯泡特金)에게 경도되고, 필명 파금(巴金)은 두 사람의 이름에서 딴 것이다.
[소설월보]에 처녀작 <멸망>(1929)을 발표하여 일약 유명해졌다. 귀국 후 1931년 최초의 단편집 <복구(復仇)>를 내고, 1934년 북경에서 심종문(沈從文) 등과 [수성(水星)]을 주재하였다. 이어서 상하이의 문화생활사에서 [문학총간(文學叢刊)]을 간행하고 1936년 [문학월간]을 창설하였다. 그 동안에 <멸망>의 속편 <신생(新生><서리(霧)><죽은 태양><사정(沙丁)><전의(電椅)><장군(將軍)> 등을 계속해서 썼다.
허무적인 색채는 차츰 없어지고, 평이하고 유려(流麗)한 표준적인 백화(白話)로 대중을 매혹시켜 많은 독자를 가졌다. 항일전쟁 중에는 구망공작(救亡工作)을 그린 <불(火)> 3부작을 비롯하여 <게원(憩園)><제4병실><차가운 밤(寒夜)> 등의 작품을 발표하였다. 악성중피세포종양과 파킨슨병으로 투병하다 101세인 2005년 10월에 사망하였다.
바진은 1904년 쓰촨 성 청두의 봉건 지주 집안에서 태어났으며, 본명은 리야오탕(李堯棠)이다. 어린 시절에 경험한 상류층의 허례허식과 억압성, 착취 속에 신음하는 하인 등 노동계급의 비참한 삶은 훗날 바진 문학의 토대가 되었다. 5·4 운동을 통해 새로운 사상에 눈을 뜬 바진은 중국 대륙에 불기 시작한 신문화 풍조의 영향을 받아 1927년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다. 프랑스 티에리의 여관방에서 쓴 처녀작 『멸망』이 중국의 한 문예지에 실리면서 소설가로 데뷔했다. 필명 바진은 그가 존경하는 러시아의 무정부주의자 바쿠닌의 첫 음절과 크로포트킨의 마지막 음절을 따서 작명한 것이다.
2년간의 프랑스 유학을 마치고 고국으로 돌아온 바진은 『가』 『봄』 『가을』 등 ‘격류 3부작’과 『안개』 『비』 『번개』의 ‘애정 3부작’에 이어 『휴식의 정원』 『차가운 밤』 등을 발표하면서 대표적인 중국 현대문학가로 자리매김했다. 한때 무정부주의에 심취했던 바진은 문화혁명 시기에 반혁명 분자로 몰리면서 혹독한 시련을 겪었다. 복권 이후에 발표한 다섯 권의 수필은 자신이 겪었던 처절한 고통과 고뇌를 담아낸 것으로, 중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위대한 영혼의 사상서’로 꼽힌다. 1977년까지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으나 1978년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으로 선출되었고 곧 상임위원회 위원이 되었다. 문학예술동맹 부의장으로 일했으며, 1981년 중국작가협회 집행의장으로 선출되었다. 문화혁명을 겪으며 얻은 병으로 말년을 힘겹게 투병하다가 지난 2005년 10월 17일, 101세의 나이로 타계했다. 1982년 4월 이탈리아 단테 국제상을 수상했으며, 1983년 5월 프랑스 레종 도뇌르 훈장을 수여받았다.
【소설】<멸망>(1929) <격류의 가(家)>(1931) <봄(春)>(1938) <가을(秋)>(1940) <게원(憩園)>(1944) <제4병실>(1946) <차가운 밤(寒夜)>(1946) <신생(新生><서리(霧)><죽은 태양><사정(沙丁)><전의(電椅)><장군(將軍)><불(火)>
【단편집】<복구(復仇)>(1931)
【문집】<바진문집>(14권) <수상록>(5권) <바진전집>(26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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