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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대만의 여가수 덩리쥔 (등려군 鄧麗君)

by 언덕에서 2011. 3. 4.

 


대만의 여가수 덩리쥔 [등려군 鄧麗君, Teresa Teng, Deng Li Jun, 1953.1.29~1995.5.8]

 

 

 

 

대만의 가수. 중국의 윈린현 바오중향에서 장제스(장개석) 군대를 따라 대만으로 이주한 허베이 출신의 아버지와 산둥 출신의 어머니 사이에서 4남 1녀 중 외동딸로 태어났다. 본명은 덩리쥔(鄧麗筠), 영문명은 테레사 텡(Teresa Teng)이다.

 1964년 11세에 중화덴타이 라디오 방송국이 주최한 ‘황메이(黃梅) 노래경연대회’에서 우승한 후 다음 해에 어머니가 지어준 덩리쥔(鄧麗君)이라는 예명으로 데뷔하여 밤무대를 전전하며 노래를 불러 가난한 집안을 보살폈다. 16세에 가수로 정식 데뷔하여 주로 드라마·영화의 주제가를 부르며 매력적인 미성으로 대중의 사랑을 받기 시작하였다.

 화교들이 많은 홍콩과 동남아 지역으로 활동무대를 넓히다가 1973년 일본에 데뷔하여 엔카인 ‘설화장(雪化粧)’, ‘공항(空港)’ 등의 곡을 발표하며 인기를 얻었고, 1974년 일본 신인가수상을 수상하였다. 1979년 위조여권 사건으로 일본 활동을 중단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약 2년간 체류하였는데 이 무렵 중국에서 그녀가 부른 ‘언제 님이 다시 오시나(何日君再來)’가 붐을 일으키며 폭발적 인기를 얻게 된다.

 1980년대 초 중국이 개방화 정책을 추진하고 있을 때 ‘중국의 낮은 늙은 덩 씨(덩샤오핑)가 지배하고, 밤은 젊은 덩 씨(덩리쥔)가 지배한다.’는 말이 유행하고, ‘덩샤오핑 대신 덩리쥔이 필요하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중국에서 커다란 영향력을 과시하였다. 중국 당국으로부터 오염된 자본주의 문화의 상징으로 낙인찍혀 여러 차례 앨범 발매가 금지되었으나 앨범을 복사한 테이프가 중국 전역에 유통되어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1983년 데뷔 15주년 기념 동남아 순회 콘서트의 일환으로 열린 홍콩 콘서트는 사상 최대의 흥행을 기록하였고, 일본에서는 ‘세월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時の流れに身をまかせ)’ 앨범이 200만 매 이상 팔려나갔다. 1989년 톈안먼사건(천안문사건)이 발발하자 천안문 민주화지원 콘서트에 참가하였고, 1992년 톈안먼사건 3주년 기념집회에 참석하였으며 그 후 프랑스 파리로 거주지를 옮겼다.

 평생 그녀를 괴롭혔던 기관지천식이 악화되자 휴양지를 옮겨 다니며 요양하다 1995년 5월 타이 치앙마이의 한 호텔에서 천식에 의한 호흡곤란으로 추정되는 사인(死因)으로 42세의 나이로 숨을 거뒀다. 죽음을 둘러싸고 자살설과 중국 비밀기관에 의한 암살설 등 갖가지 소문이 돌기도 하였다. 장례식은 국장급으로 치러졌다. 타이완·중국·홍콩의 많은 가수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주었으며, 사후 후배가수들에 의하여 그녀의 노래들이 끊임없이 리메이크되어 불리고 있다. 한국에도 잘 알려진 ‘첨밀밀(甛密密)’, ‘예라이샹(夜萊香, 야래향)’ 등 수많은 히트곡을 남겼다.

 

 

야래향

 

난 항상 기다렸어요 그대만 기다린거죠
지금껏 견뎌왔던 기억 모두가 내겐
한 여름 꿈과 같았죠

내가 이러는 게 그댄 혹시 당황스럽나요
처음 그 순간부터 알고 있어죠 우린
이렇게 될 거 같았죠

얼마나 기다렸는지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댄 몰라요 나의 사랑을

그래요 아직 어려요 사랑을 말하기에는
하지만 알 것 같아 그대 없는 곳에선
숨쉬기도 힘들어요

가끔은 작은 별 되어 그대 옆에 있고 싶죠
언제나 원한다면 난 그대 안에서

영원히 빛나고 싶어

얼마나 기다렸는지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댄 몰라요 나의 사랑을

그대는 몰라요 내 맘을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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