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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눈길 / 김애자

by 언덕에서 2011. 3. 15.

 

 

눈길 


                                                                                    김애자 (1944 ~  )

 

 

 

 

 기온이 그렇게 떨어지고 눈까지 내릴 줄은 예상치 못했다. 아침에 집을 나설 때까지만 해도 겨울날치고는 포근했고, 햇볕도 따사로운 편이었다. 오후로 접어들면서 빠른 속도로 바람이 일고, 이어 구름이 몰려오는가 싶더니 눈발이 흩날리기 시작했다.

 길을 나서기 전에는 필히 일기예보를 알아두어야 한다. 그럼에도 산 밖을 나설 양이면 매번 시간에 쫓긴다. 이곳에서 구할 수 없는 마른 찬거리며 생필품 따위를 메모하고, 남편의 하루 분 식사까지 준비하고 나면 일기예보 시간을 일쑤 놓치고 만다. 게다가 집을 나가서도 곁불 쬐기로 화랑을 둘러보고 영화라도 한 편 관람하고 나오면 나의 귀가는 어둠이 동굴처럼 깊어진 뒤에나 가능하다. 하물며 지금은 겨울이지 않는가.

 산촌에서의 고독감은 정체된 일상에서 오는 권태와 대화의 궁핍에서 온다. 대지의 소생력, 그 경이로움과 아름다움에 아무리 빌붙어도 감정의 교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정(情)의 울림이 없는 까닭이다. 그래 사람이 그리운 것이다. 상처를 주고받을지라도 사람이 그리웁고, 밤이면 불의 강을 이루는 도시의 불빛과 문화가 그리워 때때로 일탈하고 싶은 충동이 도발적으로 일어나곤 한다. 일년에 대여섯 번 서울과 청주로 나가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곳에 가면 그 하늘, 그 거리, 그 도시의 문화와 정인들이 나를 반겨 준다.

 오늘은 글을 쓰는 친구가 책을 출간하고 모임을 주선한 날이다. 오랜만에 보고 싶었던 글벗들을 만나면 쉽게 자리를 뜰 수가 없다. 이런 날 식사는 그야말로 대중공양이다. 얼굴을 가까이 대고 소곤거리며 대화를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 왁자하게 떠들면서 음식을 입에 퍼 넣는 자리다. 게다가 어디든 약방의 감초처럼 익살꾸러기 한 사람쯤은 끼이게 마련이어서, 그의 짓궂은 입담에 홀려 연신 웃음꽃을 터트리게 된다.

 그런 소란스러운 분위기에 휩싸여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오늘은 아무리 얘기 장단이 흥겨워도 오래 퍼지르고 있어선 안 될 처지임을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신선놀음을 끝내고서야 '아차' 싶었고 차에 시동을 걸면서부터 불안은 시작되었다. 더구나 스노타이어를 끼우지 않았으니 돌아갈 3백 리 길이 아득하였다.

 거리는 나붓나붓 떨어지는 눈발과 인파로 넘실거렸다. 혈기가 불꽃같은 젊은이들은 눈 오는 밤을 즐기기 위해 밤늦도록 거리로 카페로 몰려다닐 판이었다. 나는 꽃의 물결에 부유하듯 떠밀려 시내를 벗어나 외곽으로 들어섰다. 이미 중앙선은 진작부터 없어진 듯싶었다. 제가 알아서 가야만 하는 위험천만의 길이었다. 비상등을 켜고 가능한 브레이크를 밟지 않을 속도를 유지하기 위해 신경의 촉수를 곤두세웠다. 눈 깜짝 할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었기에 앞차의 후미등을 등대 삼아 조심스럽게 따라붙었다.

 한 시간 가까이 길라잡이 노릇을 하던 차가 증평을 지나 괴산 쪽으로 갈라지는 분기점에 이르러 오른쪽으로 꽁무니를 트는가 싶더니 이내 사라졌다. 갑자기 낭패감과 두려움에 머리칼이 올올이 곤두섰다. 그토록 자주 다니면서 숫하게 보아 온 풍경들이건만, 앵글을 맞추지 못해 사물의 윤곽이 뚜렷하지 않은 곳으로 끌려가고 있는 것처럼 모든 것이 생경했다. 내가 초조해 할수록 생경한 풍경들은 더 깊은 정적 속으로 가라앉는 것 같았다. 어쩌면 이곳에서 생을 마감한다고 해도, 누가 달려 나와 내 죽음을 안타까워할 리 없는 이색 지대에 홀로 버려진 것 같은 단절감에 진저리를 쳤다.

 그래도 가끔씩 반대편 차선에서 차가 오기도 하고 옆으로 지나가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도 사지에 내몰린 외로운 병사처럼 복병을 피하느라 절절 맸다. 머리칼을 곤두세우고 진저리를 치면서 달천강을 건너 충주에 도착한 것은 청주를 출발한 지 세 시간이 지난 후였다. 평소 한 시간이면 족하던 거리였다.

 등은 식은땀으로 축축했고 목이 말랐다. 주유소로 들어가 자판기에서 커피 한 잔을 빼먹고 다시 차안으로 들어왔다. 아직도 집까지 가려면 한 시간은 족히 걸릴 것이었다.

 다시 시동을 걸고 이번에는 속력을 더 냈다. 아무리 길과 들의 경계가 모호해도 손금 들여다보듯 훤한 곳이어서 운전하기가 수월할 것 같아서였다. 차가 조심스럽게 국도를 벗어나 면소재지를 지나고, 저수지 굽이를 돌아 당산나무가 있는 마을 어귀로 접어들자 비로소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멀리 회관 앞에 선 가로등이 보였다. 그러나 마을 초입에 있는 언덕은 밑에서부터 탄력을 받아야 올라갈 수 있는 마지막 시험 코스다. 도폭이 좁고, 경사가 급해 눈이 오면 트럭도 십중팔구 제자리걸음만 치다가 돌아가는 언덕은 또 한번 나를 불안케 하였다. 자칫 미끄러지면 개울로 곤두박질치게 될 터, 단전에 힘을 주고 앞을 똑바로 주시했다.

 그때 눈 위로 흙이 깔려 있는 것이 보였다. 착시를 일으킨 것은 아닌가 싶어 다시 보았지만 틀림없었다. 그것도 방금 모래를 삽으로 훌훌 뿌려 놓고 간 듯싶었다. 오른 발에 적당한 힘을 가하자 차는 거뜬하게 모래를 타고 언덕 위로 올라섰다.

 멀리 불빛 속으로 사람이 보였다. 그가 빈 리어카를 끌고 막 집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산 밑 작은 집에는 창마다 불빛이 환했다. 집 안에 있는 전등이란 전등은 죄다 켜 놓았던 것이다. 얼마나 오랫동안 기다리었을까. 청주에서 출발할 때 전화를 했으니 이제나 오려나, 저제나 오려나 수없이 창문을 열고 내다보았을 것이었다. 외진 산골에서 홀로 누군가를 기다린다는 것은 쓸쓸하고 따분한 일이다. 그의 쓸쓸함과 따분함과 조바심이 눈에 보였다. 혼자 식탁에서 밥을 먹었을 것이고, 전화기로 수없이 눈길을 보냈을 것이다. 불면을 밝히는 초초함이 자정을 넘자 드디어 리어카에 모래를 퍼 담고 이 길로 나왔을 터였다.

 언덕 위에서 차를 세우고 라이트를 껐다. 아직도 꽃잎이 나풀나풀 산의 등고선은 물론 회화나무 숲이며 온 마을을 뒤덮고 있었다. 잠시 바람의 현을 타고 일렁이는 꽃송이들, 그 순결한 성채가 산 밑 작은 집에서 새어나오는 불빛을 만나 더 희게 빛나고 있었다. 그 희고 맑은 빛 속에서 한 남자가 현관문 앞에서 머리와 옷에 묻은 눈을 털고, 다시 한번 길 쪽으로 눈길을 보내는가 싶더니 안으로 들어갔다.

 눈길에 선명하게 찍힌 리어카와 그의 발자국, 불빛 속에서 움직이는 동작 하나 하나를 지켜본 나는 핸들을 잡고 있던 손등에 얼굴을 묻었다.







 

김애자. 충주 출생. 1991년 월간 (수필문학)으로 등단.  월간수필문학상, 충북수필문학상, 신곡문학상, 제1회 충북여성문학작가상 수상 , 수필집 <달의 서고><숨은 촉><미완의 집><수렛골에서 띄우는 편지>


 깊어지는 겨울밤 고단한 세상살이로 지치고 힘든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수필이다.그리고 읽는 이로 하여금 손에 땀을 쥐게 하지만 끝 부분에 와서는 따스함에 감동하게 되는 좋은 글이다. 이 수필이 담긴 책 속에는 가족사랑과 타인을 향한 절실한 사랑의 마음과 사물 하나하나에도 관심을 던지는 따뜻한 인간애를 읽을 수 있었다.

 지금 살고 있는 세상이라는 길 위에서 작가는 현재 가고 살아가고 있는 이 길은 단 한번뿐이며 또한, 이 길은 다시는 되돌아와 걸어볼 수 없는 길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런 생각들이 마음을 어지럽게 하는 날이면 작가는 한 편 한 편씩의 이야기들을 썼다고 한다. 그 속에는 이미 지나간 추억의 이야기들이 아름답게 녹아 있고, 힘든 고통의 과정을 통과해낸 슬픔의 이야기들 역시 현재의 삶을 든든하게 위로해 주는 기억으로 승화되어 마음을 찡하게 하는 산문으로 완성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작가가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것은 ‘추억의 힘’인 것으로 보인다. 추억의 힘에는 지나온 모든 길들을 통과해낸 강한 삶의 의지와 사랑이 담겨 있으며 진지하고 맑은 순수의 흰 뼈가 고스란히 그 심줄을 드러내고 있다. 이 수필은 「추억의 힘」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길잡이를 제공한다.

 화자의 글에는 섬세한 서정성이 있는가 하면 술술 읽혀 가는 재미와 감동이 있다. 폭설이 내려 도로가 지워진 밤길을 여자의 몸으로 운전하면서 느꼈던 두려움과 근심은 읽는 이에게 그대로 전달된다. 아내가 폭설로 길을 찾지 못할 것에 대비해 눈을 치우고 불 밝히고 기다리는 남정네의 고운 사랑이 녹아있는 좋은 수필이다. 동시에 진지함과 순수의 해말간 정신이 햇살에 깨어지는 이슬방울처럼 선명하게 빛난다. 두 사람의 맑은 영혼에는 아름다운 정신이 깃들기 마련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