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니 발치와 치과 의사
요즘 신문이나 방송 뉴스를 보면 사랑니 발치 진료 거부로 불편을 겪었다는 기사를 자주 접한다. 심지어 병원 측에서 ‘수술 결과에 대한 법적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내용의 각서를 요구한 사례도 있다고 한다. 큰 병원이 아닌 동네치과에 가면 ‘예약이 밀려 있다’ ‘치아가 많이 누워 있는 사랑니 발치는 못하니 대학병원으로 가야 한다’는 등의 이유로 시술을 거부한다는 내용이다.
기사에서 한 개인병원 치과의사는 “사랑니 발치는 상태에 따라 5만∼15만 원을 환자가 부담하지만 신경을 잘못 건드리면 출혈과다나 안면마비 등 위험한 상황이 올 수 있다”며 “위험부담에 비해 돈이 안 돼 진료를 꺼리는 것이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그런데 이와 유사한 사건을 나도 겪은지라 그 이야기를 적어보도록 하겠다.
<사람잡는 치과의사 : 출처 daum '유머' 카페>
사랑니로 심하게 고생하던 시절이 있었다. 거의 15년 전의 일이다.
잇몸이 퉁퉁 붓고 입안에서 고약한 냄새가 퍼지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음식을 제대로 씹을 수 없는 점이었다. 동네 치과에 갔더니 사랑니가 ‘L'자로 굽어 있는데 뽑아야 한다고 했다. 그 동네 치과 원장은 내가 다니던 성당의 교우였기에 안심하고 뽑아달라고 했다. 그런데 마취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뽑는데 너무 아파서 숨을 쉴 수도 없을 지경이었다. 내가 굉장히 고통스러워하자 의사선생은 마치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이 당장 “뽑지 말까요?”라고 물었다.
내가 뽑지 말아달라고 이야기하니까 의사선생은 웃으며“외과로 치면 대수술입니다. 대학병원 급의 큰 병원으로 가세요.”라고 너무 친절하게 안내해주었다.
"음, 대수술은 대학병원급의 병원에... 그렇구나."
후에 알게된 일이지만 그날 내가 너무 순진했다.
이튿날 회사 창을 통해 거리를 보니 사무실에서 가까운 기독교 침례병원이 보였다.
의사는 이십대 후반으로 보이는 미모의 여의사였는데 특이한 것은 간호사가 아닌 보조의사가 옆에서 수술을 돕고(assist) 있었다. 그는 20대 후반의 남성으로 어눌한 말씨와 북한식 억양이 중국조선족으로 보였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그날 수술은 3시간이나 걸렸다. 사랑니의 뿌리가 잇몸 깊숙이 박혀 있어서 여의사는 거의 사투를 벌이고 있는 느낌이었다. 발치(拔齒)도구를 꽉 진채 온 팔에 힘을 다해 몸부림을 치는데도 불구하고 치아는 빠지지 않았다. 나는 거의 실신 일보직전까지 가고 있었다. 오후 1시에 수술이 시작했는데 네 시가 다가오니 의사나 환자나 서로 힘들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때 수술하면서 여의사가 보조의사에게 한 말이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어휴, 나... 지금 돌아버리겠다!”
휴우~ 그로부터 어떻게 하여 발치가 되었다. 고의는 아니었지만 의사가 고통스러워하는 환자 앞에서 ‘돌아버리겠다’고 이야기했으니 듣는 입장이 어떠했겠는가? 고참 간호사가 처음 수술하는 초보 외과의사에게 "떨지 마세요"라고 말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미모의 여의사가 아니었으면 악몽같은 사건이었으리라.
최근, 고교 동창 녀석의 치과의원에 들러서 차를 한 잔 얻어 마셨다. 친구에게 그 수술 이야기를 했더니 그도 허붓허붓 웃었다.
그와 이야기하면서 알게 된 것은 동네의 치과 의사가 발치를 하지 않는 것은 의료수가는 적고 위험부담이 크기 때문에 고의로 큰 병원으로 미룬다는 점이었다. 환자의 고통을 먼저 생각하는 양심적인 치과의사가 더 많다고 생각하지만, 큰돈이 되지 않는다고 진료나 수술을 거부하는 일부 의사들의 행위는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고작 사랑니 발치를 하려고 여러 병원을 돌아다니거나 대학병원까지 가야 하는지 의문이다. 힘들게 공부하여 의과대학 졸업하고 인턴, 레지던트 생활한 국가의 소중한 자산인 인재들이 너, 나할 것없이 강남에서 성형외과를 차리는 현실을 어떻게 보아야 할 지 모르겠다. 영화 '울지마, 톤즈'를 보니 이태석 신부님 선종 이후 톤즈지역은 의사가 없는 고장이 되어 버렸고 가난한 빈민들은 다시 버림받고 있다. 의사가 돈만 따진다면 시정잡배와 다를게 뭐가 있는가?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정신을 생각하는 내가 좀 모자란 사람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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