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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야기

절망의 밑바닥에 있는 사람들 - 마이크 피기스 작. <라스베가스를 떠나며>

by 언덕에서 2010. 8. 12.

 

 

 절망의 밑바닥에 있는 사람들 - 마이크 피기스 작. <라스베가스를 떠나며>

 

 

 

 


 

휴일날 IPTV를 통해 15년 전에 보았던 영화를 다시 볼 수 있었다. 1995년 출장 때 L.A에서 첫개봉하는 영화를 보았는데 지금까지도 스토리를 대충 기억하고 있다. 꽤 괜찮았던 영화같은데 한글 자막으로 된 영화를 다시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라스베가스를 떠나며>는 마이크 피기스 감독이 우리에게 '케서방'으로 알려진 니콜라스 케이지와 엘리자베스 슈를 동원하여 만든 영화인데 특별히 잘됐다는 느낌은 들지 않으나 그저 외롭고 쓸쓸한 기분만을 오래 남기는 독특한 영화이다. 개봉 당시 미국을 비롯한 서양의 반응도 그다지 나쁘지 않았는데 동서고금을 관통하는 주제인 인간의 고독과 죽음을 다루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알코올중독자와 창녀- 더 이상 빼앗을 것도 빼앗길 것도 없는 절망의 밑바닥에 있는 사람들의 사랑"이라는 광고문구는 아주 적절한 표현으로 여겨진다. 주인공으로 나오는 남자와 여자가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을 만큼 개성적이었다. 남자는 아주 중증의 알코올중독자이고 여자는 저급의 창녀이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영화는 창녀 세라가 한 남자를 만나서 헤어졌던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전하는 데서 시작하고 마무리된다.

 몸에서 술기운이 떨어지면 손을 떨 정도를 지나 술에 취했을 때보다도 더 의식 없는 행동을 할 정도로 폐인이 된, 한 때는 잘 나가던 극작가였던 알코올중독자 벤은 이제껏 살아왔던 도시를 떠나 라스베가스로 간다. 새로운 일을 찾아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마음껏 술을 마시다가 죽기 위해서이다.  

 화면을 통해서 보아도 라스베가스는 알코올중독자에게는 잘 어울릴 것 같아 보이는 도시이다. 거리를 걸어 다니면서는 물론 운전을 하면서까지 술병을 입에 가져가도 쉽게 시비하는 사람이 없다. 반쯤 썩어있는 도시……. 휘황하게 명멸하는 네온 불빛에서마저도 상한 고기 냄새가 날 것 같은 밤거리를 비틀거리면서 걷다가 남자는 한 여자를 만난다. 거리에서 손님을 끌고 있는, 그러나 육감적이기보다는 세상의 때와 피곤의 그늘로 오히려 지적인 분위기조차 풍기는 미인이다. 거리의 여자 세라는 눈에 촛점을 잃은 남자가 말을 걸어도 여자는 처음에는 무시해 버린다. 주정뱅이의 실속 없는 주정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일 것이다. 얼마 줄 테니까 함께 가지 않겠느냐고 해도 남자의 위아래만 훑어볼 뿐 본체만체 대꾸도 않던 여자는 다른 마땅한 손님이 걸리지 않자 나중엔 못마땅해 하면서도 따라간다. 남자가 기거하고 있는 모텔의 방으로 따라 들어간 여자는 옷을 벗으며 어떻게 해주기를 바라느냐고 묻는다. 입으로 해주기를 원하느냐, 엎드려 엉덩이를 대주기를 원하느냐…….   

 하지만 남자는 허연 웃음을 히죽 거리고 웃으며 고개를 내젓는다. 자신이 원하는 것은 섹스가 아니라 그저 대화일 뿐이니 그냥 함께 있자고만 하면서 정해진 금액보다 더 많은 돈을 준다. 그것이 괜한 장난이 아니라 진심임을 알게 된 여자는 태도가 달라진다. 흔한 손님이 아님은 물론 쉽게 파악이 안 되는 무슨 사연이 있는 남자라고 느껴졌기 때문일 것이다. 남자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여자가 돈을 받은 데에 대한 답례를 해보려고 애를 쓰지만 뜻대로 이루어 지지 않는다. 불구인지 술 때문인지 남자는 남자로서 성기능을 발휘하지 못한다. 그러면서도 남자는 안타까워하지 않고 흡족해한다. 여자의 그런 몸짓과 체온만으로도 순간적인 구원을 얻는 듯 앞으로 또 만나자고 말한다.  

 몇 차례 더 만나면서 여자도 남자로부터 점차 휴식 비슷한 걸 느낀다. 돈을 받지 않고 함께 있는 게 좋을 지경에까지 이른다. 자기에게 매음을 강요하며 그 돈을 착취할 뿐만 아니라 걸핏하면 발길질을 하고 엉덩이에 칼자국까지 내는 포주의 학대가 심하면 심할수록 더욱 그 남자와 같이 있고 싶어 한다. 포주가 마피아에게 쫓겨 자취를 감춘 후엔 남자로 하여금 자기 방으로 옮겨와 함께 지내자고 할 정도로 집착한다. 승용차며 시계를 팔아 이제 며칠동안 사 마실 술값 밖에 없는 남자를 사랑하기 시작한 것이다. 다른 손님들에게 몸을 팔고 들어와 남자의 시중을 들면서 그것을 귀찮아하지 않고 즐거워한다. 아무 것도 가진 것 없는, 남자로서의 성기능까지도 상실한 남자를 사랑하며 여자는 처음으로 삶의 보람을 느낀다. 

 그러나 며칠 후엔 죽기로 작정한 알코올중독자인 남자는 아무런 의식 없이 행동한다. 술에 취해 여자가 세 들어 사는 집에서 주인집의 기물을 부숴 여자를 난처하게 만드는가 하면 술집에 가서 술을 마시다가 만난 다른 여자를 방으로 데려와 제대로 하지 못하는 성행위 비슷한 장난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등 여자로 하여금 배반감을 느끼게 만든다. 화가 난 여자는 끝내 견디지 못하고 물건을 내던지며 남자를 내쫓는다. 내쫓겨가면서도 남자는 여전히 별의식이 없다. 민망해 하거나 불쾌해 하는 기색도 없이 쫓는 대로 그냥 쫓겨난다. 그러나 쫓아냈지만 여자는 당연히 좋은 기분일 수 없다. 아무렇지 않게 남자를 만나기 전처럼 살아가려고 해도 잘 되지 않는다. 밖을 헤매어도 집에 돌아와도 남자의 모습이 눈에 밟히어 견디기가 힘이 든다. 그러던 어느날 여자는 불량한 젊은이들에게 끌려가 돈도 받지 못하고 온몸에 피멍이 드는 혹독한 윤간을 당하고 나서는 더더욱 견디지 못한다. 견디다 견디지 못하고 끝내는 쫓아냈던 그 남자를 스스로 찾아 헤맨다.

 미친 듯이 헤매다 드디어 남자를 찾아낸 여자는 남자를 안으며 흐느낀다. 술 냄새밖에, 죽음의 냄새 밖에 아무 것도 안겨줄 것 같지 않은 그 남자의 체온에 감격스러워 여자는 안은 채 떨어질 줄 모르며 마지막 섹스를 나눈다. 언젠가 술을 끊어보도록 병원에 가자는 말을 건넸을 때 제발 그 말만은 말아달라고 말한 적이 있어서 인지 남자가 술에 젖어 금방 숨을 거둘 것 같은데도 여자는 병원에 옮길 생각도 하지 않고 남자의 전부를 온몸으로 끌어안으며 숨을 거둘 때까지 기다린다. 여기서 영화는 막을 내린다.

 

  

 인상적인 첫 장면은 이렇다. 영화의 영상마다 순간 흘러나오는 익숙한 목소리인 스팅이 부르는 ‘에인절 아이즈(Angel Eyes)’가 아무런 영상도 나오지 않는 검은 화면에서 처연히 흘러나온다. 노래가 계속 흐르고 화면이 밝아지더니 알코올 중독자 벤이 등장했다. 그는 마트 주류 판매대 앞을 지나며 배경 음악과 어울리지 않게 휘파람을 불고 있었다.

 영화에서는 ‘현실에 꼭 있을 법한’ 인물들이 나와 영화가 저래도 되나 싶을 정도의 ‘현실적인’ 장면들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심각한 알코올 중독으로 비틀거리며 술값을 빌리러 다니는 벤, 반짝거리는 도시 라스베이거스에서 비참한 모습으로 몸을 파는 세라. 꾸밈없는 장면들과 멋지지 않은 배우들의 자연스러운 연기. 현실은 정교한 묘사가 보태진 채 영화에 그대로 담겨져 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죽음을 결심한 알코올 중독자 벤과 창녀 세라가 라스베이거스를 배경으로 펼치는 짧은 사랑을 그린 한여름 밤의 꿈같은 영화다. 벤과 세라, 그리고 라스베이거스는 패배자, 천한 직업을 가진 여자, 그리고 타락한 유흥의 장소를 상징한다. 하지만 이 영화에선 이들 모두가 냉소적인 영상으로 다가온다. 이런 대사가 그랬다. "당신은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처럼 느껴져. 내가 항상 취해 있어서일까. 왜 진작 당신하고 못 만났을까. 사랑이 짧으면 슬픔은 길어진다."

 무언가 낯선 풍경들과 한여름 바닷가 한편에서 들릴 법한 재즈음악은 관객으로하여금 자신의 일탈처럼 영화에 빠져들게 했다. 수영장 물속 키스신과 영화 속에서 흘러나왔던 스팅의 노래 '엔젤 아이즈'는 시간을 시각과 청각을 흔들리게 함은 물론이다.

 영화를 다보고 난 후의 느낌은 '처연하다'는 표현이 맞겠다. 술로서 자살을 택한 남자의 마지막 숨을 지켜줌으로서 여자는 극치의 사랑을 몸소 호흡한 것일까? 15년의 세월이라면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인데 2010년의 감각으로도 별로 촌스럽지 않은 영화라고 마무리를 해두는 것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