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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야기

영화 사마리아(Samaria) 그리고 페미니즘(Feminism )

by 언덕에서 2010. 6. 1.

 

 

영화 사마리아(Samaria) 그리고 페미니즘(Feminism )

 

 

바수밀다(婆須蜜多) 1...

 대승경전의 꽃 <화엄경> 입법계품에는 창녀 바수밀다의 이야기가 나온다. '선재동자의 53 선지식을 찾아서'에 나오는 여인으로 지식을 찾아다니는 선재동자에게 가르침을 주는 여인이다. 입법계품은 선재동자가 53 선지식을 찾는 구도여행 끝에 깨달음을 얻는 과정이 장엄하게 묘사된 품이다.

 입법계품에서 선재동자가 창녀 바수밀다를 찾았을 때 사람들은 몹시 걱정하며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그러나 바수밀다의 지혜와 공덕을 아는 사람들은 오히려 바수밀다를 찬양하며 선재동자를 바수밀다에게 소개했다 선재동자가 법을 청하자 바수밀다는 이렇게 말하였다. 

 

<불경에 등장하는 '연화색녀'나 '바수밀다'에 대한 구체적인 자료는 턱없이 부족하지만 위의 사진 정도의 미인이 아니었겠는지? >

 “선남자여, 나는 보살의 해탈을 얻었으며 애욕의 근본을 여의었다. 그래서 나는 온갖 중생들의 좋아하는 애욕을 따라 여러 가지 몸을 나타내노라. 하늘사람이 나를 볼 때에는 나도 하늘아가씨가 되어 얼굴과 광명이 훌륭하여 견줄 데가 없으며, 사람과 사람 아닌 신장들이 나를 볼 때에는 나도 그들의 형상대로 아름답게 보이어 제각기 욕망을 따라 나를 보게 되노라. 어떤 중생이 애욕에 끌리어 나의 몸을 보고 불타는 애정을 참지 못하여 술 취한 듯 덤비면 나는 그를 위하여 여러 가지 법문을 말하노라. 그러면 그는 어느덧 애욕을 여의고 경계에 애착하지 않는 보살의 삼매를 얻게 되느니라.”
 “어떤 중생이 잠깐만 나를 보더라도 애욕을 여의고, 잠깐동안 나와 말을 주고받아도, 잠깐만 나의 손을 잡더라도, 잠깐동안 내 자리에 앉더라도, 잠깐만 나를 살펴보더라도, 나의 몸짓을 보더라도, 나의 눈 깜빡이는 것을 보더라도, 나를 끌어안더라도, 나의 입술에 입 맞추더라도 곧 애욕을 여의고 보살의 온갖 중생들의 복덕을 길러주는 삼매를 얻나니…”
바수밀다는 온갖 보살과 중생들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내고도 여자 때문에 위없는 부처님의 도를 이루지 못한 것을 걱정하면서, 대승의 큰 마음으로 그들을 포용하고 그들을 제도한 부처님의 화신(化身)이었다.

 지난 석탄일 연휴 때 비가 오는 관계로 아무 데도 가지 못해서 집에서 IPTV를 통해 영화를 보았다. 2004년 제작된 영화이지만 청소년문제는 그때나 지금이나 변화가 없어서 6년이 지난 현재의 시각에서도 고민을 갖고 볼 수 있는 영화였다. 다들 익히 알고 계시겠지만 김기덕의 영화 <사마리아>에 대해 소개해보고자 한다.

 

<불쾌한 영화라고 치부하지말고 고민을 하고 보아야 할 영화가 아닐까?>

 

 

  <사마리아>는 김기덕(金基德, 1960 ~ )이 감독과 각본·제작까지 맡은 영화로, 그의 10번째 작품이다. 주인공 여진 역은 곽지민, 친구 재영 역은 서민정, 여진의 아버지 영기 역은 연극배우 이얼이 맡았다. 상영시간은 95분이며, 쇼이스트가 배급하였다. '사마리아'의 뜻은 버림받은 사람이라는 뜻과 죽은 마리아 또는 성녀의 반대의 의미이다. 영화에서는 역설적인 의미로 쓰였다.

  5억 원의 제작비가 들어간 저예산 영화로, 김기덕의 다른 작품들과 같이 촬영기간이 시작부터 종료까지 11일밖에 걸리지 않았다고 한다. 2003년 11월에 완성되었으나, 국내에서 개봉되기 전인 2004년 2월 베를린국제영화제의 공식경쟁 부문에 초청받아 해외에서 먼저 개봉되었다. 국내에서는 같은 해 3월 5일 개봉되었다.

  원조교제를 하는 여고생과 그러한 딸의 원조교제를 알게 된 아버지의 복수와 화해를 그린 작품이다. 원조교제를 소재로 했다는 점에서 완성되기 전부터 관심을 모았는데, '소외된 자들의 시선으로 세상을 관찰하면서 그 속에 상징과 알레고리를 끼워 넣을 줄 아는 미학적 영화'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영화로 포장된 여성혐오자의 영화'라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하였다. 김기덕은 이 영화로 제54회 베를린영화제에서 감독상(은곰상)을 받았다.

 

<천진스런 고1 여학생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유럽 여행을 갈 돈을 모으기 위해 채팅에서 만난 남자들과 원조교제를 하는 여고생 여진과 재영이 주인공이다. 재영은 창녀역할이고 여진은 포주역할을 한다. 여진이 재영인 척 남자들과 컴으로 채팅을 하고 전화를 걸어 약속을 잡으면, 재영이 모텔에서 남자들과 만나 관계를 가진다. 여진은 재영이 남자들을 만나기 전 화장을 해주고, 그녀가 남자들을 만나고 있는 동안 모텔 밖에서 기다린다. 낯 모르는 남자들과 만나 섹스를 하면서도 재영은 항상 웃음을 잃지 않는다. 여진은 남자들과의 만남과 섹스에 의미를 부여하는 재영을 이해할 수가 없다. 여진에게 어린 여고생들의 몸을 돈을 주고 사는 남자들은 모두 더럽고 불결한 존재일 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모텔에서 남자와 만나던 재영은 갑자기 들이닥친 경찰들을 피해 창문에서 뛰어내려 여진의 눈앞에서 죽게 된다.
 재영의 죽음에 커다란 충격을 받은 여진은 재영의 죽음을 위로하기 위해 재영의 수첩에 적혀 있는 남자들을 차례로 찾아간다. 여진은 재영 대신 남자들과 원조교제를 한다. 원조 교제 후 재영이 전에 받았던 돈을 여진이 차례로 돌려주자 남자들은 오히려 평안을 얻게 된다. 남자들과의 잠자리 이후 남자들을 독실한 불교 신자로 이끌었던 인도의 <바수밀다>와 같이 여진 또한 관계를 맺은 남자들을 차례로 정화해 나간다고 믿는 해괴한 논리를 실천해 나가는 것이다. 

 형사인 여진의 아버지는 살인사건 현장에 나갔다가 우연히 옆 모텔을 보게 되는데 남자와 함께 나오는 여자가 자신의 딸 여진임을 알게 된다. 아내 없이 오직 하나뿐인 딸만을 바라보며 살아온 영기에게 딸의 매춘은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오고, 이후 영기는 계속해서 여진을 미행하기 시작한다. 아버지는 하루하루 남자들을 만나는 여진을 미행하면서 여진과 관계를 맺는 남자들에게 살인 등으로 차례차례 복수를 하지만, 고통은 줄어들지 않는다. 영화의 결말은 아버지가 딸의 원조교제를 용서하고 자신의 죗값을 치르게 되면서 끝나게 된다. 정확히 말하자면 용서를 했는지 안 했는지는 나오지 않는다. 다만 영화를 본 관람객의 의견으로서는 용서를 한 것으로 추측될 뿐이다.  영화의 끝부분에서 여진과 여진의 아버지는 함께 여진 어머니의 산소를 찾아간다. 산소에 들렀다가 그 근처에서 하룻밤 묵은 후 집에 돌아오는 길에 아버지는 여진에게 강 근처에서 차 모는 법을 가르쳐 주고서는 미리 자수해서 연락해 놓은 동료 형사에게 체포된다. 이 사실을 모르고 차를 계속 몰던 여진은 아버지가 끌려가자 서툰 솜씨로 차를 몰아서 아버지를 쫓아간다. 그러다 진흙에 빠져 차는 움직이지 못하게 된다.  여기서 영화는 막을 내린다.

 

<잔인하고 비극적인 영화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실제로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김기덕 감독의 작품들에 대해 남성중심주의 또는 여성을 불쾌하게 만드는 영화라는 비판들이 많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는 역설적으로 오히려 남성중심사회에서 억압받는 여성들을 옭아 매고 있는 사슬을 고발하고 끊어 보려 애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우리 사회에서 억압받고 소외된 계층을 전면에 내세워서 그들의 비극을 적나라하게 고발하는 영화를 만들고 있다. 미군과 양공주사이에 태어난 혼혈아문제를 다룬 <수취인 불명>, 매춘부 문제 또는 그와 관련된 문제를 다룬 <나쁜 남자>, <파란 대문> , <섬>, 청소년 원조교제를 다룬 <사마리아>, 가정폭력을 다룬 <빈 집> 등이 대표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기덕의 영화에 혐오감을 느끼는 이유는 그의 영화 스토리 전개가 불친절하고 충격적이기 때문이다 그는 영화에서 사회의 썩어 문드러진 환부를 제시할 뿐  아무런 설명이 없다. 오히려 당연하다는 듯 현실의 장면들을 우리 앞에 내던진다. 우리 사회의 감춰진 환부를 보여주기만 하고 판단은 알아서 하라는 식이다. 그에 대한 억측과 오해는 여기서 발생하는 것으로 보인다.

 평정심을 유지하여 그의 영화를 보면 일단 충격적 표현방식에 약간 얼얼한 기분이 들고 그다음 자연스럽게 그가 들춰내려 했던 문제의식을 파악할 수 있다. 그에 대한 비판의 중론은 그의 영화 속에 존재하는 여성들은 늘  짓밟힌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성을 짓밟는 것은  남성중심의 사회구조이며, 김기덕은 그 고발자라는 반론도 가능하다.  

 <사마리아>에서도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하는 청소년 성매매에 관해서 예의 김기덕식 들춰내기가 힘을 발휘한다. 여고생의 책임도 돈을 낸 아저씨의 책임도 아닌 우리 사회의 현상일 뿐이라는 걸 보여준다.  순정만화식 여고생만이 스크린과 TV에 범람하는 작금에 돈 몇 푼에 아저씨들을 찾아 뒷골목을 전전하는 수많은 우리 현실의 딸들과 여동생들에게 카메라를 들이댄 것이다. 김기덕이 적극적인 페미니스트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지만 최소한 남성중심주의사회의 외곽에서 지배자들을 향해 끊임없이 도발의 메시지를 던지는 의도는 분명해 보인다. 어쩌면 그도 남성중심사회 지배자들의 부류가 아닌지 모르겠다. 이 영화는 제54회 베를린영화제에서 감독상(은곰상)을 받았다.

 

  1. 바수밀다(婆須蜜多) - 불교용어 *세우(世友)의 원어인 바수미트라의 음역. 바수밀(婆須蜜).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