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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朋滿座

다나카 유 공저 『세계에서 빈곤을 없애는 30가지 방법』

by 언덕에서 2010. 4. 30.

 

다나카 유 공저 - 『세계에서 빈곤을 없애는 30가지 방법』

 

 

 

기아 문제를 그냥 둔다면 미래의 어느 날 우리 아이들이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알고 있으면서 왜 아무것도 하지 않았나요?" 

 

 이 책은 일본의 NGO 활동가 16인이 겪은 세계의 빈곤 현실과 빈곤 문제 해결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30가지를 적은 내용이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가난과 굶주림 때문에 3초에 1명씩 고귀한 생명이 죽어 가고 있다. 저자들은 현실을 알면 알수록 빈곤이 결코 개인의 잘못이 아니라고 이야기 한다. 부유한 나라가 만든 세계 구조의 문제라는 것은 명백하며,사회 구조적 문제라고 해서 우리 모두가 손 놓고 무기력하게 좌절할 수밖에 없는 문제가 아닌 것이다. 

 초콜릿 하나를 사더라도 아프리카 아이들의 노동으로 만들어지지 않은, 공정무역 상품을 사는 것, 개발도상국의 숲을 벌채해서 만든 종이를 사지 않는 것, 인터넷에서 세계의 빈곤 문제에 대한 정보를 모아서 친구들에게 메일을 보내는 것, 자원 소비량을 줄이고 재활용을 늘리는 것들, 이렇듯 찾아보면 우리 주위에는 우리가 할 수 있고, 해야 할 일이 많음을 전달하고 있다. 매일매일 생활 속에서 이루어지는 작은 실천을 통해 우리와 세계를 만나게 하는 책이다.


사람을 살리기 위한 원조인가, 죽이기 위한 원조인가

 

 그러면 책 속으로 들어가 보자. 1990년 무렵, 인도네시아의 아체에서 이맘이 우리 눈앞에서 수용소로 끌려갔다. 그러나 이맘은 독립운동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었다. 석 달 뒤 시체가 발견되었다. 입에서 머리 뒤로 총알이 관통해 있었다. 손목 윗부분의 살이 잘려 나가 뼈가 드러나 있고, 손톱은 모두 뽑혀 나가고, 팔은 꽁공 묶여 있었다. (……) 사람이 맞는 소리나 비명을 지르는 소리를 들었다. 사람을 불태우는 광경을 보기도 했다. 1974년 일본은 세계적인 석유 위기 속에서 아체에 묻힌 천연가스를 개발하기 위해 인도네시아에 318억 엔의 ODA(공적개발원조)를 제공했다. 그 돈으로 건설된 천연가스 개발 공장은 그곳에 살던 사람들을 쫓아냈고, 채굴 현장과 정제 공장에서 나온 폐수와 배기가스 때문에 바다, 강, 논, 양식장이 오염되었다. 그로부터 2년 뒤, 자신들의 땅에서 내몰린 아체 사람들이 인도네시아로부터 독립을 호소하며 무장투쟁을 일으켰고 인도네시아 정부는 수만 명의 민간인을 학살, 유괴, 고문했다.

 

<오랜 저항 끝에 1976년 아체 지역 반군 조직인&nbsp;자유아체운동(GAM)이 결성되었다. &nbsp;&nbsp; 이어 반군 토벌이라는 구실로 인도네시아군의 인권 유린과 살상이 이어졌고, 게릴라전과 평화 협정이 반복되었다>

 

 지금도 아체의 천연가스 대부분은 일본으로 수출되고 있다. ‘인도네시아민주화네트워크’ 사무국장인 사에키 나쓰코가 쓴 이 책의 11장에는 아체의 사례 외에도 수마트라 섬의 댐 건설 원조, 무기 원조 등 일본 ODA가 일본 국익을 위해 개발도상국 사람들의 인권을 침해하고 죽음까지 부르는 현실을 거침없이 이야기한다.

 이러한 일본 ODA에 대한 일본인의 반성이 지금 한국에 시사하는 바는 적지 않다. 우리나라의 ODA 정책이 “개발도상국 사람들을 살리기 위한 원조인가, 죽이기 위한 원조인가?”라는 물음에 진정 자유롭고 떳떳할 수 있는지, 이 책이 다시 한 번 생각할 기회를 제공한다.

 

구호품과 재활용품이 지역 경제를 무너뜨린다

 

 값싼 자원이 해외에서 수입되는 것은 일본뿐 아니라 선진국에 공통되는 현상이다. 그래서 선진국에서는 폐기물이 쌓여 처리에 어려움을 겪고, 선의를 가진 시민들은 지혜를 짜내 개발도상국으로 지원을 보낸다. 그 선의(意) 자체는 훌륭하다. 다만 바라는 것은, 자신들이 물건을 보낸 그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까지 생각했으면 하는 것이다. 거기에 있는 것은 웃는 아이들의 얼굴만이 아니다. 얼굴을 찌푸리는 상인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소말리아의 난민수용소>

 

 

 민간인 차원의 지원이 낳는 문제도 있다. 일본국제자원봉사센터(JVC) 단원으로 소말리아 난민 수용소에서 활동한 르포라이터 가시데 히데키는 민간인이 보내는 구호품이 지역 경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이야기한다. 시민들이 순수한 선의에서 담요나 헌옷, 설탕이나 밀가루 같은 구호품을 보내면 그것을 받은 난민들은 그 지역 상인에게 싼값에 팔아 현금을 마련한다. 구호품이 시장에 유통되면 난민으로부터 구호품을 사들이기에는 힘이 없는 상인들이 생계에 위협을 받는다.

 

 선진국의 재활용 운동 또한 개발도상국의 경제에 타격을 준다. 선진국은 개발도상국에서 천연자원을 싼값에 수입하기 때문에 재활용품을 활용하는 데 더 큰 비용이 든다. 그래서 선진국 시민들은 열심히 재활용품을 모아 개발도상국에 무상 지원하거나 싼값에 수출한다. 이 또한 그 지역 상인들이나 ‘스캐빈저(scavenger)’라 불리는 재활용업자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다. 실제로 인도네시아 스캐빈저들이 일본을 찾아가 “일본이 쓰레기를 수출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저자 가시다 히데키는 “선의는 자신을 행복하게 하지만, 잘못 전해지면 상대에게 상처를 준다.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의 지원이 어느 지역의 누구에게 전해지는지,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지는 않는지 고민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 아프리카의 수많은 아이들이 학교에 가지 못하고 카카오&nbsp;농장에서 일한다.&nbsp; &nbsp;&nbsp; 하지만 이 아이들은 정당한 노동의 대가조차 받지 못하고 착취.학대당한다>

 

 

용서받아야 하는 이는 누구인가

 

 글쓴이들은 개발도상국 현지인들의 목소리를 전한다. 그들의 목소리에는 절망, 분노, 의지 등 다양한 감정이 담겨 있다.

“4, 5년 전까지만 해도 이 숲에는 귀여운 동물과 화려한 색깔의 새들이 살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한 마리도 없어요. 외국 기업이 숲을 베고 종이를 만들 나무만 심었습니다. 우리는 숲을 빼앗겼고, 기업으로부터 어떤 혜택도 받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그저 가난해질 뿐입니다.” 일본 ODA로 이루어진 파푸아뉴기니 열대림 벌채와 제지용 인공조림에는 강제 퇴거당한 불행한 현지인만이 존재하는 것이다. 

 

 외국 자본이 들어와 상업 관광 개발이 이루어지면서 자본이 해외로 유출되고, 관광객 몫까지 식량을 수입함으로써 물가가 올라가 현지인의 생계가 어려워진 타히티 섬은 2차 세계대전 뒤 프랑스 식민지가 되었는데, 프랑스는 1966년부터 1996년까지 폴리네시아 환초(環礁)에서 193회의 핵 실험을 했다. 원주민들은 핵 실험에 반대하는 운동을 했고, 그 뒤 태평양 원주민 NGO 연합을 설립해, 정부의 지원금에 의존하지 않고 바닐라와 코코넛 재배, 폴리네시아 식 어업 등으로 지역 경제를 발전시키는 운동을 시작했다.

 

<&nbsp;프랑스가&nbsp;남태평양에서 실시한&nbsp;핵실험 장면&nbsp; >

    

 

 두 손으로 귀를 막고 그들이 하는 말을 듣지 않을 수도 있다. 신문을 넘기다 굶주림으로 뼈만 남은 아이들 사진이 나오면 눈길을 돌려버릴 수 있다. 듣고 보고 읽더라도 그 순간이 지나면 잊어버릴 수 있다. 그런데 그러지 않고 ‘바쁘고 나 하나 먹고 살기도 힘든’ 우리가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이 많다고 이 책은 말한다.

 

우리가 발 디딘 곳에서 시작하기

 

 이 책에는 정부 정책이나 다국적기업의 운영에 직접적인 힘을 행사할 수 없는 평범한 시민들이 빈곤 문제 해결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이 소개되어 있다. 그 바탕에 깔린 문제의식은 지금 우리의 소비 문화가 개발도상국의 빈곤 문제와 어떻게든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예로 초콜릿, 사무용지, 컵라면, 식용유, 세제 같은 공산품이나 전기, 물 같은 에너지들은 이제 없으면 생활하기 힘들 정도로 우리 삶에 깊숙이 자리잡은 것이다. 우리가 그것을 저렴하게 쓸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정부나 기업이 가난한 나라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빼앗다시피 가져오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 사람이 굶주리는 것을 보며 ‘우리 잘못이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일반 소비자들이 사실은 빈곤 문제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 물론 책에는 당연히 '빈곤을 없애는 30가지 방법'이 등장한다. '공정무역 초콜릿을 구입하자'는, '비누를 사용하자'라는 조그만 출발점에서 '환경 파괴와 인권침해를 일으키며 만든 제품은 사지 않는다'는 적극적인 참여유도, '정당한 가격으로 제대로 생산된 제품만을 사자'는 주문까지, 일상생활에서 큰 어려움 없이 우리가 실천해나갈 수 있는 방법들을 소개하고 있다. 이 조그만 몸짓에서부터 '빈곤'을 줄여나갈 수 있음도 차근차근 설명하고 있다. 

 

 

  

 

<네슬레사의 초코릿>

 

 

 세계의 절반이나 되는 사람들이 굶주리며, 빈곤에 허덕인다. 가난은 나라님도 구제 못 한다는데, 세계의 빈곤을 해결할 방법은 무엇일까? 힘과 돈을 가진 기득권들로 인해 형성된 부조리한 구조들과 다국적 기업의 이윤 때문에, 서구문명 지상주의 때문에 세계의 어린이들이 굶어죽는다. 이 책은 우리 삶 속에서 할 수 있고, 실천 가능한 방향들을 보여주려고 애쓰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회의가 생기게 되었다. 거대한 서구 나라들과 거대한 다국적 기업들의 횡포를 몇몇의 사람들이 과연 변하게 할 수 있을까? 내가 할 수 있는 일, 주변에서 실천할 수 있는 일들을 하나씩 해 나간다고 해도, 과연 그게 얼마나 큰 도움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들이 머리 속에 복잡하게 얽혀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갈 길이 멀다 해도 시작해야 된다는 것이 유일한 결론이 아닐까 한다. 초콜릿(나는 초콜릿을 거의 먹지 않지만), 커피 등 우리나라에서 나지 않은 것들은 공정무역을 통해 수입되고 관리되어진 상품들로 조금 더 값을 치르더라도 이용하기 등이다. 수없이 수출되는 쓰레기들 때문에 쓰레기를 주워 살아가는 아이들이 배고파진다니 재활용이 국내에서 될 수 있도록 애쓰고, 소 한 마리를 키우기 위해 30명분의 곡물이 엄청나게 소모된다니 육식은 줄이고 채식을 늘여야 겠다.(육식을 하더라도 국산으로 해야겠다.)

 이 책은 이러한 방법들을 30가지나 소개하고 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마음을 모으면, 3초에 한명씩 굶어죽는 아이들이 5초에 한명으로 바뀌고 1분으로 1시간으로 그리고 아주 적어지도록 하는 것이 우리가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