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高朋滿座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 후기

by 언덕에서 2010. 2. 22.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 후기

 

 

 

 

 

많은 분들이‘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서평에 호응을 해주셨다. 이 책을 읽어보시지 않은 분들이 꼭 읽어보시기를 권하고 싶지만 여러 가지 여건상 불가한 분들을 위하여 이 책에서 필자가 관심 있게 읽었던 부분을 발췌하여 소개코자 한다.

 

아프리카의 '부르키나파소'라는 나라와 '상카라' 대위

 

 

 

 

 

 가장 안타깝게 읽었던 부분이 부르키나파소의 지도자 ‘토마스 상카라와의 만남’ 부분이었다. 부르키나파소는 아프리카 대륙 동편에 위치하며 동쪽은 니제르와 베냉, 북쪽과 서쪽은 말리, 남쪽은 코트디부아르·가나·토고와 국경을 접한다. 독립 이후 쿠데타가 반복되면서 정권과 체제가 바뀌었고 현재의 정권도 1987년 쿠데타로 집권한 군부정권이다. (뒤에 자세히 설명하겠다) 15만 명 이상의 국민이 코트디부아르나 가나 등지로 품팔이를 나갈 만큼 가난하여 미국과 프랑스의 원조에 국가재정을 의존하고 있다. 친 서방(親西方)·비동맹중립정책을 유지하고 있으며, EU 9개국과 ACP(아프리카 카리브 해 ·태평양지역)의 개발도상국 46개국 간에 체결된 로메(Lome)협정의 회원국이다. 행정구역45개 주(province)로 이루어져 있다.

 

 

 

 

      <토마스 상카라 >

 

 

 유엔인권위원회 식량조사관으로 근무 중이던 저자 장 지글러에게 1983년 12월 부르키나파소의 지도자‘상카라’ 대위로부터 만나고 싶다는 전화가 온다. 그는 감옥에서 장 지글러의 저서

<main basse sur l' afrique>

를 읽었던 것이다. 1984년 1월 네 명의 젊은 장교들이 지글러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들은 1983년 8월 쿠데타를 일으킨 뒤로 그 나라의 국정을 맡고 있었던 최고위급 지도자 무리였다. 푸른 콩, 토마토, 조, 고구마에 고기 캔이 몇 개 놓인 식탁의 조촐한 식사에 초대받았는데 토마스 상카라는 그들의 리더였다. 그 식탁에는 상카라 외에 절친한 동지인 블레이즈 콤파오레와 앙리 총고, 국방장관인 장 밥티스테 링가가 앉아 있었다. (이후 상카라와 총고, 링가 등은 콤파오레의 명령으로 살해된다)

 

 쿠데타 이전 이 나라 '모시 왕국'의 황제는 모로 나바였는데 왕의 전제정치의 흔적이 국민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었고  모시족 귀족층은 젊은 장교들이 몰아내야 할 중요한 적이었다. 부르키나파소는 구 식민지배국인 프랑스에게 여전히 종속된 상태였고 정부는 너무나도 무력했다. 게다가 정치부패까지 심각해서 경제형편은 전 세계에서 최악이었고 국민 대부분이 굶고 있었다. 세계은행 통계를 보면 국민총생산은 170개국 가운데 124위, 1인당 국민소득은 164위였던 것이다.  국토의 대부분이 경작하기 어려울 정도로 말라버려서 소출을 내지 못하는 상태였고 경작 가능한 땅 중에서도 25퍼센트만이 겨우 경작되고 있었다. 곡물 수확량은 헥타르당 540킬로그램으로 프랑스의 4,883킬로그램에 비하면 턱없이 낮은 상태였으며 아동의 취학률은 20퍼센트에 불과했다.

 아프리카 이웃나라가 그러하듯이 그들은 부패한 관료 밑에서 신음하고 있었다. 3만 8천명의 관료가 국가 예산의 70퍼센트 이상을 자신의 급료로 챙기고 있었고 그나마 매년 10월이면 그 예산은 바닥이 났다. 그래서 정부는 공무원 급여를 주기 위해 외국에 원조를 구걸해야 했다. 국제적인 도움의 손길은 거의 전무했는데 이 나라가 전략적으로 중요한 지역도 아니고 자원이 풍부한 나라가 아니기 때문이었는데 무엇보다도 지도자인 상카라의 정치가 프랑스와 그 식민지였던 이웃 나라들의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통령 상카라가 추진했던 정치개혁

 

1. 자주관리정책

 다른 아프리카 나라도 사정이 비슷했지만 그 나라의 공무원 수는 3만 8천명에 달하는 턱없이 많은 인원이었고 대개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는지만 그들은 종래의 지연, 학연 등으로 똘똘 뭉쳐 있었다. 적은 월급으로 15~20명을 먹여 살리는 공무원이 적지 않았고 대안적인 일자리도 없는 상태였다. 그래서 상카라는 근본적인 해결의 방법을 찾았는데 ‘자주관리정책’을 실시하여 국내의 30개 행정구역을 자치제로 전환하고 주민들 자신이 그 지역을 다스리게 했다. 관리도 직접 뽑을 수 있게 하고 그래서 도로건설이나 수도사업, 보건의료사업 등 자신들의 실제생활에 필요한 공공 서비스를 실시해 나가도록 했는데 행정구역 설정은 대체로 각 종족들의 거주지와 일치하도록 했다. 정책 실시 이후 놀랍게도 국가철도사업 등 인프라 확충 사업 때 주민들이 기쁜 마음으로 자발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했다.

 

2. 인두세 (人頭稅) 폐지

 그가 실시한 또 다른 개혁은 인두세(납세능력에 의하지 않고 각 개인에게 일률적으로 부과되는 세금)를 폐지한 것이었다. 여기서 인두세에 대하여 설명을 좀 하자면 ... 인두세는 납세자의 급부() 능력을 무시한 점에서 효과가 단순하며 역사상 일찍부터 채용되었다. 그리스 . 로마. 이슬람여러 나라와 러시아 등에서는 노예주()에 대한 공조()의 형식으로 징수되었다. 중세의 서유럽에서는 인격적으로 신분이 부자유스러운 농노()가 영주에게 사람 숫자대로 납부하는 현물 및 현금공조였으며 농노가 농촌에서 도시로 이주할 경우에도 인격이 노예라는 상징으로서 이 인두세만은 의무적으로 내야 했다. 중세 후반 이후는 국왕이나 영방국가()의 군사비 조달 등의 목적으로 징수되다가 18, 19세기에는 대부분이 폐지되었다. 우리나라에도 삼국시대부터 조선왕조 후기까지 징수되었다.

 당시의 부르키나파소에서도 일부 도시 부유층을 제외한 대부분의 국민들은 그런 세금을 납부할 능력이 없었는데 마을의 징세담당자는 세금을 내지 않으면 소나 양, 비축해둔 곡식을 강제로 빼앗아가거나, 때로는 미납분의 대가로 여성을 납치하기도 했다. 인두세가 사라지자 당연히 기아에 허덕이던 서민들의 생활향상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3. 토지의 국유화

 부르키나파소에서는 마을의 운영책임자들이 마음대로 주민들에게 땅을 할당하고 경작품목과 농사일정을 결정하여 돈이나 수확물, 강제노동이라는 형태로 대가를 징수해왔는데 상카라는 이를 폐지하고 개간 가능한 토지를 국유화시켰다. 그는 농업부에서 토지대장을 작성케 한 뒤 각 가정의 수요에 따라 아무런 강제적 징수 없이 토지를 재분배했다. 세금없이 토지가 부여되고 농사지을 땅이 생기니 식량이 생겨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위의 정책들의 결과로 농민들은 안심하고 농사에 전념할 수 있게 되었고 4년이 지나지 않아 농업생산량이 획기적으로 늘었다. 그래서 그 자금이 도로나 상수도 건설, 농업교육의 보급, 지역의 수공업촉진 사업 등에 우선적으로 투자되었다. 부르키나파소는 4년 만에 식량을 자급자족할 수 있었고 다민족의 복잡한 사회구성은 한층 민주적이고 정의로워졌다.

 

아프리카의 불행한 귀감 '상카라'

 

 이러한 상카라의 개혁으로 약 1,000만 명의 인구인 극도로 가난한 나라였던 부르키나파소는 불공평이 없어지면서 인간다움과 자부심을 되찾았고 웅대한 희망에 불타올랐다. 상카라가 경험한 개혁의 희망은 가난과 정치부패에 시달리고 잇던 이웃나라에 영향을 미쳤다. 코트디부아르의 우프에 부아니 대통령, 가봉의 봉고 대통령, 토고의 에야데마 대통령 등의 부패한 권력자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던 것이다. 이런 정권들은 식민지의 종주국이었던 프랑스의 꼭두각시들이었는데 프랑스 본국 정부의 일부 세력은 상카라의 개혁을 반기지 않았다. 여기서 우리는 제국주의 프랑스의 본체를 알 수 있게 된다. 그들은 1866년 병인양요 때 우리나라에서 빼앗아 간 외규장각 도서 297권을 1993년 미테랑 대통령이 반환하기로 약속하고 고속철도를 팔아먹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반환하지 않고 있는 몰상식하고 비이성적인 국가이다. G20의 부국에게도 이런식인데 아프리카 변방의 가난하고 작은 나라에게는 오죽하겠는가?

 어쨌든 상카라는 동지이자 참모였던 콤파오레에 의해 37세의 나이에 살해되었다. 콤파올레는 부르키나파소의 현재 대통령이다.

 

 

<콤파올레(콩파오레) 부르키나파소 현 대통령>

 

 상카라의 죽음과 함께 이 나라 사람들의 희망도 깨졌다.  만연한 부패, 외국에 대한 극단적인 의존, 국가전체의 만성적인 기아, 신식민지주의적 수탈과 멸시, 방만한 국가재정, 기생적인 관료들, 그리고 절망하는 농민들의 모습만이 가득 찬 콤파오레 치하의 부르키나파소는 다시 기아에 허덕이는 보통의 아프리카로 돌아가고 말았다. 그래서 그들은 아직도 굶주리고 있으며 그런 상태로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