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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오늘 생각한 일년 전 신문기사

by 언덕에서 2010. 5. 12.

 

아래는 일년 전(2009. 5)에 보았던 기사이다.

 

<윤락녀가 된 딸을 죽인 아버지 그리고 등록금>

 경찰이 9일 악덕 사채업의 대표적인 피해사례로공개한 한 부녀(父女)의 비극은 충격을 넘어 안타까움을 안겨주고 있다
9일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에 따르면 여대생 A(23)씨가 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한 대부업체를 찾아간 것은 2007년 3월께.
서울 모 대학에 다니던 A씨는 등록금 등을 마련하기 위해 백모(33)씨가 운영하는 대부업체에서 300만원을 빌리면서 3개월간 매일 4만원씩, 360만원(이율 120% 적용)을 갚기로 했다.
 A씨의 빚은 처음에 360만원으로 출발했지만 매일 일정액을 갚지 않으면 다시 원리금을 재대출하는 이른바 '꺾기' 방식이 적용되면서 1년 새 1천500만원으로 불어났다.
 눈덩이처럼 커진 빚을 갚을 능력이 없었던 A씨는 유흥업소에 나가서라도 빚을 갚으라는 협박을 받게 됐고, A씨는 결국 지난해 4월부터 '울며 겨자먹기'로 강남의 유흥업소에서 일을 시작했다.
백씨는 유흥업소 '마담'인 최모(41.여)씨와 짜고 A씨가 몸을 팔아 받은 '화대' 등으로 벌어들인 1천800만원을 빼앗았지만, A씨의 빚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았다. 대부업자들은 마침내 A씨의 부모에게 이같은 사실을 알려 딸의 빚을 대신 갚으라는 협박을 하기에 이르렀다.
 어렵게 대학에 보낸 딸이 사채를 끌어다 쓴 것은 물론 유흥업소에서 일한다는 사실도 까맣게 모르고 있던 A씨의 아버지는 충격과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지난해 11월 딸의 목을 졸라 살해했다.
 그리고 이틀 뒤에는 괴로움을 이기지 못한 채 자신도 평택의 한 저수지 인근에서 목을 맸다.
 대부업자들은 A씨 외에도 돈을 빌린 A씨의 친구 2명을 비슷한 방법으로 유흥업소에 취업시켜 화대 등을 갈취했다고 경찰은 전했다.
경찰 관계자는 "A씨와 학교 친구 사이인 나머지 2명도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돈을 빌려썼다고 진술했다"며 "업자들은 A씨가 돈을 빌릴 때 보증을 섰다는 이유로 A씨가 죽은 뒤 빚을 대신 갚으라고 친구들에게 종용하기까지 했다"고 말했다.
 경찰은 2007년 3월부터 A씨 등 212명에게 연 120~680%의 고리로 돈을 빌려주고서 이자로 33억여원을 챙긴 혐의(대부업법 위반)로 백씨 등 모두 5명을 구속하고 대부업자 직원 등 13명을 불구속 입건했다.(연합)

 

 작년 5월에 본 기사다.당시 전직 대통령의 자살로 인해 묻혀있었던 기사인데 너무도 충격적이어서 아직까지 잊혀지지 않는다. 흡사 김기덕 감독의 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 세상이 너무 험하여 웬만한 일에 잘 놀라지 않지만 아버지가 사랑하는 딸을 살해한 동기와 사연은 충격 자체였다.얼마 후 kbs tv의 '스펀지'라는 프로에서 방송한 사채의 덫에 빠져 장기매매까지 강요당한 부녀자의 사례를 보고 재차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밖으로 드러난 것만 해도 이 모양인데 얼마나 더 많은 사례들이 있을지 짐작키 어렵다.

 


 위의 기사를 정리해보자면 이렇다. 50대 아버지가 21세 딸의 목을 졸라 살해했다.딸은 거액의 빚을 지고 있고,룸살롱에서 윤락행위를 했다는 고백에 아버지는 분노한 것이다.당시 나를 포함한 중년의 남자 대부분은 아버지의 절망감이나 배신감을 충분히 이해했다. 딸을 죽인 아버지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기사를 자세히 읽어보면 딸은 쉽게 돈 벌려고 매춘을 시작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급하게 300만원을 빌린 것이 화근이었다.사채업자에게 그다지 크지 않은 돈을 대출받고 곧 갚으려 했지만,너무 순진했다. 이자를 못 갚으면 다시 대출을 해주는 '꺾기 수법’에 당한 것인데 빚은 끝이 안보였다.악덕사채업자는 돈을 못 갚게 된 딸을 강제로 매춘업 종사자로 만들었다.빌린돈 300만원은 대학 등록금으로 쓰였다고 한다.

 혹자는 아무리 어려워도 여자가 함부로 자기 몸을 굴릴 수 있느냐,왜 하필이면 흡혈귀와 다를 바 없는 사채를 썼느냐며 비난할 수도 있다.강요를 받더라도 순결을 지켜야 하고,성인인 만큼 책임 있게 행동해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명문대를 졸업해도 변변한 직장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인 지금의 세상이다. 그래도 대학을 나오지 않으면 제대로 취급받지 못하는 세상에서 등록금을 위해 사채까지 써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심화된 양극화로 부유층에겐 하루 저녁의 식사비 정도의 액수인 등록금이 어느 학생에겐 미래를 막아버리는 '지옥'이 되어 버린 것이다.한참 공부를 해야할 나이인데 사회는 이들을 전혀 보호해주지 못했다. 그러나 부모의 도움은커녕 가정을 책임져야 하는 학생들도 있다.대학에 교직원으로 있는 친구의 이야기를 들으니 고이율의 학자금 대출도 모자라고,시급 3천원 아르바이트로는 생계가 막막한 학생들이 너무 많다고 한다.위의 기사처럼 많은 20대들이 등록금 때문에 미래를 저당잡힌다. 이들 부녀처럼 극단적인 경우를 차치하더라도 등록금 마련과 생계를 위해서 사채와 윤락을 강요당하는 일반적인 사례는 얼마나 많겠는가.

 검사들의 스폰서 문제로 나라가 시끄럽다. 소설이나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황당한 내용이 현실로 되어있는 곳이 내가 사는 나라라고 생각하니 서글픈 마음까지 생긴다. '노블리제 오브제' 라는 말은 우리나라에서는 통하지 않나 보다.

 

 

 작년, 기업인으로부터 돈을 우려낸 형과 가족, 측근들의 비리로 지탄을 받던 전직 대통령의 자살에 나라가 애도모드로 돌입했을 때도 내 개인적으로는 그러한 '서거'가 쉽게 용납되지 않아 냉담했던 게 사실이다. 형과 부인, 자식 관리를 어떻게 했느냐는 세간의 질타가 일리가 있고 극단적인 자살보다는 살아서 당당하게 명예를 회복하는 것이 서민출신 대통령으로서의 도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법관, 변호사 생활을 하여 검사들의 구조적인 치부를 알고 있는 그로서는 '더러운' 검사들로부터 수사를 받는 게 치욕으로 받아들였고 그래서 선택의 폭은 제한적이었을 것이다. 어쨌든 사회지도층이 갈팡질팡하고 있는 사이에 양극화는 더욱 깊어져 가고 있고 지금도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