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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철학서

데스먼드 & 무어 『다윈 평전』

by 언덕에서 2010. 1. 12.

 

 

 

데스먼드 & 무어 다윈 평전

 

 

 

이전 찰스 다윈을 다룬 책들은 으레 진화론의 발상에 무게를 뒀다. 비글호를 타고 갈라파고스 제도에 도착해 진화론의 실마리를 풀어내는 활약상이 그것이다. 이 책은 자신의 발견이 끼칠 사회적 영향을 고민하는 지식인 다윈을 그리고 있다. 때는 1839년. 전국이 불안과 소요에 휩싸인 가운데 영국은 무정부상태로 치닫고 있었다. 이러한 때에 부유하고 침착하고 냉정한 휘그 당원이었으며, 전도유망한 지질학자인 서른 살의 야심에 찬 신사가 비밀 공책을 펼치고, 인간의 조상은 뇌가 없는 자웅동체의 연체동물이었다고 주장했다. 그 신사가 바로 찰스 다윈이었다. 찰스 다윈은 진화론을 어떻게 전개시켰을까? 왜 그것을 20년 동안 발표하지 못하고 감추어두었을까? 발표한 후 세상과 종교계와 과학계는 어떻게 반응했을까?


 다윈이‘진화론’을 발표한 1839년 빅토리아 시대 영국은 적어도 기득권자인 국교도들의 눈에는 혁명 전야로 비쳤다. 사회주의자들과 급진론자들은 국교회(영국의 국교인 성공회)를 부패했다고 공격하고, 자본주의를 착취의 온상이라고 비난하면서 체제 전복을 꾀했다. 당시 공직이나 옥스퍼드·케임브리지대 교수가 될 수 없는 등 차별을 받았던 비국교도들은 국교도들의 특권은 물론 그들이 가진 자연관까지 함께 비난했다. 그들은 기존의 과학이 성직자들과 내통해 그들을 옹호하는 도구가 됐다고 힐난했다. 그러면서 특권을 배격하고 평등을 추구하는 것은 자연과학의 법칙이자 신의 뜻이라고 주장했다. 월리스와 자연선택설을 공동 발표하게 되는 정황, 다윈의 불독 헉슬리와 윌버포스 주교가 벌인 그 유명한 '당신의 원숭이 조상이 할아버지 쪽이냐 할머니 쪽이냐'를 둘러싼 논쟁, 발생반복설로 잘 알려진 헤겔과의 만남 등 과학사의 명장면들이 생생하게 서술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다윈의 첫사랑 이야기는 읽는 이로 하여금 미소를 머금게 하고, 다윈이 누구보다 사랑했던 큰딸 에니의 죽음에서는 안타까움과 애처로움을, 아내 에마와 저녁이면 두 번씩 주사위놀이의 일종인 백개먼 놀이를 즐기는 장면에서는 인간 다윈의 친근한 모습을 만날 수 있다.

 

 다윈이 세상의 반응이 두려워 자신의 진화론을 20년 동안이나 묵혀두어야 했다면, 애초에 그것을 왜 고안한 이유를 밝히고 있다. 저자들은 그 원인을 가족과 진화적 결과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여기에 수집가였던 다윈의 거의 파기하지 않은 공책, 오래된 초고, 주석을 달아놓은 발췌 인쇄물, 편지 등을 인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현대 생물학의 기틀을 놓은 다윈은 물론, 수많은 모순을 안고 살았던 인간 다윈, 그리고 무엇보다 인간이 인간을 바라보는 시각을 획기적으로 바꾼 진화론자 다윈의 삶을 이해하기에 더없이 좋은 길잡이 역할을 해준다. 이 책은 다윈 내면의 갈등을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의 양날의 칼로 파헤친다는 점에서도 독특하다. 두 사람의 지은이 가운데 데스먼드는 자연과학자이고, 무어는 다윈이 살았던 빅토리아 시대의 사회사상과 종교개혁운동 전문가라는 점도 이러한 특성과 무관하지 않다. 여기에는 다윈이 쓴 수많은 편지도 포함됐다. 한 편지에 이런 내용이 있었다. “나는 열렬한 유신론자인 동시에 진화론자가 될 수 있다.”

 

 그는‘종은 결코 영구불변하지 않다’는 자연과학적인 결론에 이르렀지만 이를 발표하는 것은 “살인을 고백하는 것과 같다”고 주변 사람들에게 토로했다. 다윈이 이를 발표하던 당시 기득권층의 시각으로는 진화론은 일종의 사회적 범죄에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다윈은 이러한 진퇴양난의 상황에서 너무도 고민한 나머지 편두통과 구토에 시달리기까지 했다. 자신이 살고 있는, 그리고 소중히 여기는 국교도 체제의 근간을 뒤흔들 수 있다는 우려에서였다. 지은이들은 자연과학자와 사회적 기득권자 사이에서 고민하는 다윈을 마치 햄릿처럼 묘사한다. 그런 과정을 거쳐 나온 다윈의 결론은 “어떠한 종류의 신학에도 구속되지 않고 과학에만 헌신하면서 진화론에 입각한 자연주의를 지켜야 한다”는 중립적인 것이었다. 그 결과 다윈은 영국의 위인들이 묻히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영면의 자리를 마련할 수 있었다.

 

 이 책은 다윈이 '고뇌하는 진화론자'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밝히는 것에 특히 초점을 맞추고 집필 된 다윈 전기이다. 동물학, 해부학, 지질학의 권위자인 데스먼드와 빅토리아 시대의 진화사상, 사회사상 연구가인 무어가 20년 동안 축적된 자료를 바탕으로 다윈의 인간적인 모습, 생계를 영위하는 혜안, 가정생활, 그의 과학에 대해 상세하게 파헤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