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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朋滿座

레비 스트로스의 구조주의 『슬픈 열대(Tristes tropiques)』

by 언덕에서 2009. 11. 23.

 

레비 스트로스의 구조주의 『슬픈 열대(Tristes tropiques)』

 

 

프랑스 사상가·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Claude Levi-Strauss.1908∼2009)가 쓴 인류학 저서로 1955년 발간되었다. 「슬픈 열대(Tristes tropiques)」는 레비-스트로스가 1937년부터 1938년까지 브라질에 체류하면서, 내륙 지방의 네 원주민 부족 카두베오족, 보로로족, 남비콰라족, 투피 카와이브족에 대한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저술한 책이다. 이 책은 그 내용이 방대하고 전문적이긴 하지만 탐험의 과정이 기행문의 형식으로 기술되어 있고, 필자 자신의 사상적 편력과 청년기의 체험 등이 일종의 자서전 형태로 반영되어 있어 흥미 있게 읽을 수 있다.

 이 책은 기록문학의 걸작으로서, 프랑스어 원작에서 14개 국어로 번역되어 호평을 받았다. 9부로 되어 있는데, 학문적 자기형성을 서술한 부분, 1930년대 브라질의 열대 및 오지의 실태에 대한 기록, 특히 카듀베오족 ·보로로족 ·낭비크왈라족 ·투피카와이브족의 민족지적(民族誌的) 기술(記述), 아시아 여행의 인상 등이 밀도 높게 서술되어 있다.

 

 

프랑스 사상가이며 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 Claude Levi-Strauss.1908∼2009 )

 

 

 기록으로서도 뛰어날 뿐만 아니라, 저자의 장대한 염세주의에 채색된 독자적인 문명론을 이루고 있다. 또, 브라질에서의 체험의 파악과 기술 가운데에는 저자가 그 후 전개한 구조주의 방법 원형이 엿보인다.

 특히 이 책에서 레비-스트로스는 원주민 사회를 파괴하는 서구 문명의 침략성에 대해 분노를 나타내고 있으며, 자신이 이제는 사실상 사라져버린 것을 탐구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비통해한다. 서양 문명이 황폐화시켜버린 열대를 조사하는 인류학자의 비애가 '슬픈 열대'라는 제목을 낳은 셈이다. 그가 비애감을 느낀 것은, 서양의 선교사, 농장주, 식민주의자, 정부 관리들이 나름의 균형과 조화를 유지하고 있던 열대 원주민 사회에 침투해 들어와 그들의 정신세계를 상업주의로 황폐화시켰기 때문이다. 나아가 그는 서양인들이 문명인임을 자처하며 자신들과 다른 삶의 방식을 지녀온 이들을 멋대로 야만이라거나 비합리적이라고 낙인찍는 오만에 대해서도 비애감을 느낀다.

 나무뿌리나 거미 또는 유충들을 먹기도 하고, 벌거벗은 채로 생활하는 부족이라 할지라도 오히려 현대 서구 사회보다 훨씬 합리적으로, 그리고 만족스럽게 사회의 복잡한 문제들을 해결하기도 한다. 레비-스트로스는 문화적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편협성, 서구인들이 행동하는 것처럼 행동하지 않으려는 사회를 야만적이라고 경멸하는 태도, 이런 것은 모두 서구 사회 자체가 부족적인 편견 또는 민족적인 우월감에 사로잡혀 있음을 보여준다고 지적한다.

 원시인의 잔인함, 미개성의 징표처럼 간주되어 온 식인풍습도 레비-스트로스는 '조상의 몸의 일부나 적의 주검의 살점을 먹음으로써 죽은 자의 덕을 얻으려 하거나 그 힘들을 중화시키고자 하는' 주술적 의미를 지닌다고 변호한다. 그리고 '식인풍습이 죽음의 신성함을 무시하는 것이라고 비난한다면, 해부학 실습을 허용하는 일도 같은 비난을 받아야 할 것'이라고 한다.

 

 

 

 

 

 이 저서는 9부 36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주요 내용은 브라질 오지에 사는 인디언들의 생활을 연구하러 떠났던 탐험의 경험을 담고 있다. 이 작품이 발표되던 당시 레비스트로스는 철학자에서 전향한 인류학자로서 『친족의 기본구조』(1949년)를 비롯하여 여러 연구업적을 발표한 상태였다. 좀 더 일반적인 대중을 겨냥해 집필된 이 책은 그 성격을 분류하기가 애매한 작품이기도 하다.

 여행의 경험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는 기행문이지만, 동시에 자신의 지적인 여정과 일화들을 다루고 있는 자서전적인 성격도 띠고 있으며, 구조 인류학에 대한 인식론적인 정당화를 시도한다는 점에서는 학문적 저작이다.

 그런가 하면 서양과 다른 문명에 대한 심오한 성찰을 담고 있는 에세이이기도 하다. 이 다채로운 성격으로 인해 이 작품은 레비스트로스의 지적인 측면만이 아니라 그의 인간적인 면모를 훨씬 잘 들여다 볼 수 있게 한다. ‘슬픈 열대’라는 제목이 암시하듯이 그는 이 작품에서 서구인들의 경박한 이국취향을 강도 높게 비판한다. 식인풍습과 같은 시대착오적인 편견만이 아니라 ‘선량한 야만인’에 신화도 실제 브라질 원주민들의 진면모를 이해하는 데는 방해가 될 뿐이다.

 이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그 첫 번째(1~3부)는 여행을 떠나게 된 과정에 대한 서술이다. 작가는 여기에서 자신이 인류학자로서의 소명을 가지게 된 과정을 분석하고, 브라질로 향했던 이전의 여행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특히 전쟁 중인 1941년, 초현실주의의 대표적 인물들인 앙드레 브르통 등과 함께 마르세유에서 마르티니크로 가는 배에서 겪었던 일들을 세세하고 익살맞게 들려준다. 그런가 하면 바다 위에서 만난 황혼의 풍경이 인상적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두 번째 부분(4~8부)는 1935년 그가 처음 브라질에 도착하여 행한 지질 연구의 경험들이 반영되어 있다. 카두베오족, 보로로족, 남비크와라족, 투피카와히브족 등 인디언들의 땅에서 작가는 구조적 분석 방법에 입문하게 되었다. 이 종족들의 전통적인 가옥 배치는 그들의 사고방식을 이해할 수 있게 해 주는 전범적인 사례였던 것이다. 이 구조들은 친족 관계나 신화, 사회성 코드 등 처음에는 다양하고 일관성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것들을 해석하게 해 주는 열쇠였다.

 세 번째 부분(9부)은 ‘귀환’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하지만 어떤 점에서는 ‘우회’라고 할만하다. 그는 남미에서 유럽으로 곧장 돌아오는 대신 아시아 쪽으로 둘러왔기 때문이다. 레비스트로스는 오늘날엔 이슬람화 되어 있는 파키스탄의 불교 유적지, 서양의 휴머니즘에 도전하는 인도의 문명을 보여주는 콜카타, 문명들의 에토스에 관해 성찰하게 만들었던 미얀마의 마을 등을 들른다. 저자는 어떻게 인간을 조화로운 우주 및 다른 인간들과 통합시킬 수 있는가 하는 관점에서 불교, 힌두교, 이슬람교, 그리고 동양과 서양의 관계에 대해서 성찰한다.

●제1부(여행의 마감) : 프랑스가 독일에 점령당하자 필자가 뉴욕으로 밀항하기까지의 쓰라린 경험이 회상형식으로 기술하고 있다.

제2부(여로에서) : 이 여행에 앞서 그가 브라질의 상파울루 대학의 사회학 교수에 취임하게 되는 과정과 어떻게 하여 민속학자가 되었는지를 설명하는 내용이다. 

제3부(신세계) : 적도 부근의 무풍대를 통과하면서 느끼는 신세계와 구세계 간의 희망과 몰락, 정열과 무기력을 표현하고 있다.

제4부(대지와 인간) : 브라질에서의 생활과 앞으로의 현지조사를 위한 예비답사의 내용을 언급하고 있다. (제5부에서 제8부까지는 필자가 조사한 브라질 내륙지방의 네 원주민 사회의 문화를 소개하였다.)

제5부(카두베오족) : 계층조직과 얼굴 문양에 대해 소개하였다. 

제6부(보로로족) : 주거와 사회 구조에 대해 소개하였다.

제7부(남비콰라족)와 제8부(투피 카와이브족) : 혼인 제도에 대해 중점적으로 기술하면서 원주민 사회에 내재하는 논리를 찾아내려 하였다.

마지막 제9부(귀로)에서는 인도 및 파키스탄의 여행기가 추가되어 있고, 지금까지의 모든 개인적 체험과 현지조사의 내용들을 종합, 정리하면서 필자 자신이 인류학적 연구에서 직면하였던 문제점과 모순을 해결하려고 시도하였다.

 

 

 

 

 레비 스트로스의 구조주의 인류학은 1950년대 말 프랑스 지성계를 강타했으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사상의 주류를 형성했던 실존주의에 대신 하여 새로운 학문으로 각광받았다. 레비 스트로스뿐 아니라 프로이트를 구조주의적으로 재해석하여 무의식과 언어의 관계를 파고 들었던 자크 라캉, 구조주의를 마르크스주의에 적용했던 루이 알튀세르, 광기-권력- 담론-인식 등의 변화 과정을 추적한 미셀 푸코 등이 모두 구조주의자로 불린다. 그러나 정작 레비 스트로스는 "오늘날 이해하고 있는 의미에서라면 나는 구조주의자가 아니다"라며 구조주의가 지나치게 넓게 적용되는 것을 경계했다.

 세계를 하나의 무시간적인 전체로 파악하고 원시사회에 대해 동경의 정을 표시하는 레비스트로스의 입장은 사르트르 등으로부터 역사적 진보를 부정하고 변화에 회의적인 보수적 이데올로기로 비판받았다. 이에 대해 레비 스트로스는 구조주의와 정치체제의 어떤 관련성도 부인하며 순수학문적 입장을 내세웠다.

 ‘문명’과 ‘야만’이라는 서구식의 이분법을 넘어서서, 레비스트로스는 열대지방의 원주민들이 그들의 환경 속에서 조화와 균형을 유지하는 탁월한 문화가 가지고 있음을 역설한다. 이는 그들의 조화를 깨뜨린 서구 제국주의와 자본주의의 지배에 대해 근본적인 문제제기로 이어진다.

 루마니아의 종교철학자 엘리아데는 이 책을 레비스트로스의 주저로 손꼽았다. 실제로 레비스트로스는 이 책에서 종종 과학적 엄밀성이라는 인류학자의 직업적 습관을 벗어나, 카두베오 족의 그림에 나타난 에로티시즘에 관해 성찰하거나, 이슬람교와 힌두교와 불교의 대립에 관한 폭넓은 사유를 전개하기도 한다. 『슬픈 열대』는 그동안 철학자들과 인류학자들에 의해 많이 거론된 반면, 문학 비평의 대상으로 다루어지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하지만 이 책은 철학자나 인문과학의 서적에 나타난 글쓰기의 독창성과 재능을 주목하게 만드는 대표적인 저서 중의 하나이다.

 

 

 

 

 현대 구조주의 사상의 새로운 장을 개척한 레비-스트로스는 기존의 인류학 연구방법론은 물론, 인문학을 비롯한 사회과학 전반에 인식론적 전환을 가져온 독특한 사유체계를 창시한 그야말로 대학자이다. 현대에 씌어진 가장 탁월한 기행문학으로 전 세계의 광범위한 독자층에 일대 충격을 준 『슬픈 열대』는 레비-스트로스가 브라질에 체류하면서 조사한 네 원주민 부족에 관한 민족지(民族誌)이다.

 그러나 이 책은 단순한 민족지의 차원을 넘어 저자 자신의 사상적 편력과 청년기의 체험, 인류학을 자신의 학문영역으로 설정하게 된 동기와 과정 등을 지적 자서전의 형식으로 기술하고 있다. 서구인의 이분법적 사유방식에 대한 준엄한 비판서로서 이 책의 가치는 20세기 최고의 인류학 저서로 인류학을 전공하는 이가 아니어도 한편의 소설을 읽는 기분으로 읽어도 괜찮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