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외국 현대소설

N. 호돈 장편소설 『주홍글자』

by 언덕에서 2015. 10. 28.

 

N. 호돈 장편소설 『주홍글자』

  

 

 

 

  

미국의 작가 N. 호돈(N. Hawthorn, 1804~1864)의 장편소설로 1850년 간행되었다. 17세기 중엽, 청교도의 식민지 보스턴에서 일어난 간통사건을 다룬 작품이다. 17세기 미국의 어둡고 준엄한 청교도 사회를 배경으로, 죄지은 자의 고독한 심리를 묘사하였다. 치밀한 구성과 심오한 주제 등으로 19세기 미국문학의 걸작으로 꼽힌다. 이 소설은 호돈의 대표작일 뿐만 아니라 미국을 무대로 하고 미국적인 것을 소재로 쓰인 작품으로, 미국 문학사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가톨릭의 부패로 인한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는 여러 종파가 생기도록 신앙의 자유를 주었다. 그런데 예를 들어 '칼뱅교의 경우 구교인 가톨릭교 시절보다 더 보수적이고 육체 비하적인 계율들로 민중들을 옥죄었다. 그것이 청교도주의로 이어져 숨 막히는 종교 독재(이를테면 미국의 초기 시절 같은)는 물론, 마녀사냥까지도 불사하게 만들었다(미국 초기 시대에 있었던 '세일럼 마을의 마녀사냥 1'이 특히 유명하다). 우리는 그러한 광기를 미국 초기의 결벽증적 종교 독재의 양상을 나다니엘 호손이 쓴 소설 『주홍글씨(자)』를 통해 잘 알아볼 수 있다.

 남자 주인공 ‘딤즈데일’과 ‘틸링워드’는 각각 감성과 지성의 상징이다. 둘은 대립하여 처음부터 끝까지 파멸을 향해 줄달음친다. 반면 ‘헤스터’는 아메리카 대지에 뿌리를 내린 강한 여성의 원형이다. 이 점이 바로 이 소설이 단순한 삼각관계 연애소설이 아니라 명작으로 평가받는 까닭일 것이다. 이 작품은 청교도의 엄격함을 정밀하게 묘사하고 죄인의 심리 추구, 긴밀한 세부 구성으로 19세기 미국의 대표적인 소설이 되었다.  

 

영화 <주홍글씨 The Scarlet Letter> , 1995 제작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늙은 의사와 결혼한 헤스터 프린이라는 젊은 여인은 남편보다 먼저 미국으로 건너와 살고 있는데, 남편으로부터는 아무런 소식도 없었고 그러는 동안 헤스터는 펄이라는 사생아를 낳는다. 헤스터는 간통한 벌로 공개된 장소에서 ‘A(adultery)’자를 가슴에 달고 일생을 살라는 형을 선고받는다. 그녀는 간통한 상대의 이름을 밝히지 않는다.

 그 상대는 그곳의 고독한 목사 아서 딤즈데일이었다. 딤즈데일은 양심의 가책에 시달리면서도 사람들에게 죄의 두려움을 설교하는 위선적인 생활을 계속한다. 그는 양심의 가책으로 몸이 점점 쇠약해진다.

 헤스터의 남편 틸링워드는 이 사실을 알고 그 상대에게 복수하기로 결심한다. 그는 우연한 기회에 그 상대가 젊은 목사 딤즈데일이라는 것을 알고, 그의 정신적 고통을 자극하는 데 부심한다. 사건이 발생한 지 7년 후에 새로 부임한 지사의 취임식 날, 설교를 마친 목사는 처형대에 올라, 헤스터와 펄을 가까이 불러놓고, 그녀의 가슴을 헤쳐 보인다. 그녀의 가슴에는 ‘A’ 자가 있었다. 그는 그 자리에서 죄를 고백하고 자살한다. 목사가 숨을 거두자 남편 역시 삶의 목표를 잃고 쇠약해져서 죽음에 이르고 홀로 남은 헤스터는 사회봉사에 온 힘을 기울이며 여생을 살아간다.  

 

영화 <주홍글씨 The Scarlet Letter> , 1995 제작

 

 

 이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무렵 미국사회를 지배했던 청교도들의 엄격한 생활상을 먼저 알아야 한다. 17세기에 들어서면서 유럽에서는 이성을 찬양한 계몽사상이 싹텄고, 이 사상은 인간의 존엄과 자유의지를 역설하는 새로운 종파인 청교도의 등장으로 이어졌다.

 미국으로 이민 온 청교도들은 청빈한 생활 속에서 엄격한 계율을 지키며 살았다. 조금의 사치나 향락도 배척했고, 심지어는 소설ㆍ연극ㆍ음악 등도 금지했다. 다시 말해 개인의 성실성이나 근면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인간의 본성이나 존엄성을 억압했던 것이다. 호손은 바로 이러한 청교도적 삶의 허구를 원죄와 죄의식의 개념, 법과 양심의 요구 등을 통찰하며 『주홍글씨』 속에서 비판하고 있다.

 헤스터 프린은 키가 크고 더할 나위 없이 우아한 용모를 지닌 여성이다. 그녀는 미국으로 건너와 살던 중 목사와 간통한 죄로 가슴에 주홍글씨로 된 A자를 평생 달고 살아야 하는 운명을 맞이한다. 그녀는 판결로 많은 사람들이 운집한 가운데 스스로 전시되어야 하는 형벌을 받게 되는데, 이는 당시 체면과 명예를 중요시하던 풍속에 따라 사형보다 더 삶을 욕되게 하는 것이었다. 이런 형벌 속에서도 그녀는 끝내 내연남을 밝히기를 거부하고, 주민들의 경멸과 멸시를 묵묵히 견디며 자기에게 주어진 업고를 치른다. 이는 사회적 제도가 인간의 운명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를 생각하게 하는 작가의 숨은 뜻이다.

 

 

 『주홍글자』는 극적 장면에서 시작되어 극적 국면으로 전환되는 대단원을 이룬다. 이 과정에서 인간과 인간, 인간과 사회의 갈등을 등장인물의 적절한 심리 묘사를 통해 한층 흥미롭게, 그러면서도 사색의 길로 접어들게 하고 있다. 인간이 죄를 범하고 그 죄를 속죄하고자 스스로 심한 고통 속에 지신을 몰아넣어 학대하는 과정이나, 구원의 길로 용기를 내어 지신의 죄를 고발하며 죽는 장면은 더할 수 없는 감동을 준다.

 그러나 소설 말미에 붙어 있는 에필로그는 작품이 갖는 긴 여운을 감소시키는 사족 같은 감이 없지 않다. 또한 헤스터 프린의 속죄 과정에서 드러난 고난과 딤즈데일의 구원의 장면은 현실성이 떨어진다. 그렇지만 작가가 제시하고 있는 도덕적인  감정은 현대에서도 여전히 문제시되고 있는 것이며, 이로써 삶에 대한 성찰이 생김은 분명하다.

 

 

 

 

 

☞너대니얼 호손(Hawthorne, Nathaniel.1804.7.4∼1864.5.19). 미국 소설가. 옛 항구 매사추세츠주 세일럼 출생. 어릴 때부터 사교성이 적었으며, 대학 졸업 후에도 10여 년을 숨어 살다시피 하다가 단편집 <트와이스 톨드 테일스(Twice Told Tales)>(1837, 1842)를 발표하였다.    그즈음 브루크팜 이 스티튜트 운동에 참가했지만, 곧 탈퇴하고, 이어서 세일럼의 세관리(稅官吏)가 되었으며, 얼마 후에야 창작에 힘을 기울였다. 그 초기 작품은 <주홍글자(The Scarlet Letter)>(1850) <하우스 오브 더 세븐 게이블즈(The House of the Eeven Gables)>(1851) <블라이스 데일 로맨스(The Blithedale Romance)<(1852)의 세 장편소설이었다. 그 후는 영사(領事)가 되어 영국으로 향하였으며, 곧 대륙으로 건너가 <대리석의 폰(The Marble Faun)>(1860)을 집필, 귀국 후에는 남북전쟁에 부딪혀 정착하지 못하고, 여생을 보냈다.    그의 작품은 내향적(內向的)이었으며, 항상 내면의 문제, 특히 죄의 문제를 추구하였는데, 이것은 청교도의 전통을 가장 잘 표현하는 것이었다. 현실성이 희박하다는 비난은 있었지만, 그는 엄숙한 예술가적 혼을 지녔기 때문에 그는 문학사상 제일류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1. 미국이 아직 영국의 식민지이던 1692년, 메사추세츠의 작은 마을 세일럼빌리지에서 기괴한 일이 일어난다. 마을 목사 패리스의 아홉 살짜리 딸 베티와 열한 살짜리 조카 에비게일이 경련과 호흡곤란을 일으키고 몸을 이상하게 뒤틀기 시작한 것이다. 소녀들의 괴이한 증상을 고치기 위해 패리스 목사를 비롯한 가족들은 금식도 하고 기도도 하는 등 온갖 방법을 다 써 보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러던 중 한 의사가 아이들의 증상에 끔찍한 진단을 내리고야 만다. 의사가 진단을 내린 뒤부터 패리스를 비롯한 마을 사람들은 두 소녀에게 마녀 이름을 대라고 재촉하기 시작했다. 드디어 두 아이가 입을 열었다. 패리스 목사의 노예이자 자신들을 돌봐 온 티투바가 마녀라고. 티투바가 예전부터 마녀들이 사용하던 마법으로 케이크를 만들었을 뿐 아니라 목사를 비롯한 주민들이 악마와 결탁했다고 믿은 인디언 노예였기 때문이다. 그러니 티투바가 마녀로 지목당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티투바를 마녀로 고발한 마을 어른들은 다른 마녀를 찾아내기 위해 혈안이 됐다. 그래서 아이들을 더 다그치기 시작했다. 이후 아이들은 비렁뱅이 여인 세라 굿과 병든 할머니 세라 오즈번도 마녀라고 말했다. 결국 세 여자는 마녀 혐의로 체포됐다. 세 마녀가 체포되자마자, 마녀에게 괴롭힘을 당했다며 새로운 마녀를 고발하는 사람들이 물밀 듯 쏟아져 나왔다. 새로이 마녀로 고발당한 사람은 실로 다양했다. 그런데 고발된 사람들은 ‘마녀’라는 이유만으로 교수형에 처해지거나 다른 방식으로 죽임을 당했다. 결국 괴이한 증상에 시달리는 두 소녀로부터 시작된 마녀사냥은 스무 명이 넘는 사람들의 목숨을 빼앗고, 수백 명에 달하는 사람들의 삶을 파멸시켰다. 그런데 세일럼 마녀사냥에서 희생된 마녀 혹은 희생자들은 마을에서 버림받은 사람이거나 마을의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탐탁지 않게 여기던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이 사건에 등장하는 마녀로 희생된 희생자 또는 마녀로 고발당한 사람과 고발한 사람, 마녀를 처벌한 음흉한 관리 등은 집단 히스테리에 빠진 사회를 역사적으로 잘 보여 준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