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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를 읽다

옥탑방 / 함민복

by 언덕에서 2009. 9. 7.

 

 

 

 

                                              옥탑방 

                                                      

                                                    함민복  

 

 

 눈이 내렸다

 건물의 옥상을 쓸었다

 아파트 벼랑에 몸 던진 어느 실직 가장이 떠올랐다

 

 결국

 도시에서의 삶이란 벼랑을 쌓아올리는 일

 24평 벼랑의 집에서 살기 위해

 42층 벼랑의 직장으로 출근하고

 좀더 튼튼한 벼랑에 취직하기 위해

 새벽부터 도서관에 가고 가다가

 속도의 벼랑인 길 위에서 굴러떨어져 죽기도 하며

 입지적으로 벼랑을 일으켜 세운

 몇몇 사람들이 희망이 되기도 하는

 

 이 도시의 건물들은 지붕이 없다

 사각단면으로 잘려나간 것 같은

 머리가 없는

 벼랑으로 완성된

 

 옥상에서

 초혼(招魂)하듯

 흔들리는 언 빨래소리

 덜그럭 덜그럭

 들리는

 

 

 

- 시집 <말랑말랑 힘> (문학세계사 2005) 

 

 

 

 

 


 

옥탑방에서 살아 본 적이 있나요? 물론 어떤 사람은 그렇다고 할 것이고 어떤 사람은 지금도 살고 있을 것이고 아니면 그게 뭐냐는 이도 있을 것이다. 나는 20대 후반 직장생활을 시작할 때 타지인 서울시내에서 자취방을 구한다고 구한 게 반 지하여서 몇 달 만에 옮긴 곳이 옥탑방이었다. 물론 그곳에서도 오래 지내지 못했다. 옥탑방은 여름에는 옥상의 지열을 고스란히 흡수하는 관계로 무지 덥고 겨울에는 그와 정반대로 외풍을 막아주지 못해 한없이 춥다. 시인의 표현을 빌리면 머리가 없고 지붕이 없으며 사각단면으로 잘려나간 것 같은 벼랑으로 완성된 콘크리트 숲속의 섬같이 외로운 곳이다. 그리고 밤이 깊으면 왠지 음산한 느낌이 드는 경험을 한 적도 있다. 그 뭐라고 할까……. 도시괴담의 배경일 것 같은. 다행히 사당동 언덕의 빌라 단칸방을 얻은 후배 덕에 6개월 동안의 옥탑방 생활을 정리할 수 있었다. 그래서인데 옥탑방 생활을 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그 묘한 분위기를 알기가 어렵다. 위의 시를 읽으면서 따뜻한 시심을 가진 시인이 바라보았을 옥탑방과 고통을 생각해 보았다.

 함민복 시인은 1962년 충북 중원군 노은면에서 태어났다. 가난했기 때문에 단지 무료라는 이유로 수도전기공업고등학교에 들어갔고 졸업 후 경북 월성 원자력발전소에 입사했지만 기계와의 대면이 너무 힘들어 4년 만에 그만두고 서울예전 문예창작과에 입학했다. 그리고 2학년 때인 1988년 ‘세계의 문학’에 ‘성선설’ 등을 발표하며 등단했다. 서울 달동네와 친구 방을 전전하며 떠돌다 1996년, 우연히 놀러 왔던 마니산이 너무 좋아 보증금 없이 월세 10만 원짜리 폐가를 빌려 둥지를 틀었다. 그는 그래도 “방 두 개에 거실도 있고 텃밭도 있으니 나는 중산층”이라고 천진하게 주장한다. 

 

 위에서 밝혔듯이 그는 가난에 이골이 난 사람이다. 그는 없는 게 많다. 돈도 없고, 집도 없고, 아내도 없고, 자식도 없다. 그런데도 그에게서 느껴지는 여유와 편안함의 정체는 무엇일까. 모 잡지사와의 대담에서 “가난에 대해 열등감을 느낀 적은 없느냐”고 물었을 때 그는 부드럽지만 단호한 어조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가난하다는 게 결국은 부족하다는 거고, 부족하다는 건 뭔가 원한다는 건데, 난 사실 원하는 게 별로 없어요. 혼자 사니까 별 필요한 것도 없고. 이 집도 언제 비워줘야 할지 모르지만 빈집이 수두룩한데 뭐. 자본주의적 삶이란 돈만큼 확장된다는 것을 처절하게 체험했지만 굳이, 확장 안 시켜도 된다고 생각해요. 늘 ‘이만하면 됐다’고 생각해요.”

 시인은 그러면서도 자기 혼자 걱정 없이 이렇게 살아도 되는 것인지, 미안하다고 말했다. 힘들고 어려운 일인 줄 뻔히 알면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삶의 그물망을 넓혀 나가는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이야말로 성자(聖者)라고 말했다.

 소설가 김훈은 그를 “가난과 불우가 그의 생애를 마구 짓밟고 지나가도 몸을 다 내주면서 뒤통수를 긁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의 표현대로 함민복은 세상을 버리지 못하는 은자(隱者)이고 숨어서 내다보는 견자(見者)라고 판단된다. 강화도 남쪽 끝자락에는, 가난하지만 마음은 부자인, 이 시대의 빈자, 함민복 시인이 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필자와 같은 사람을 성자(聖者)로 표현하는 그는 참으로 고마운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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