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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를 읽다

조등(弔燈)이 있는 풍경 / 문정희

by 언덕에서 2009. 8. 1.

 

 

 

 

 

조등(弔燈)이 있는 풍경

 

 

 

                                                       문정희

 

 

 

이내 조등이 걸리고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아무도 울지 않았다

어머니는 80세까지 장수했으니까

우는 척만 했다

오랜 병석에 있었으니까

하지만 어머니가 죽었다

내 엄마, 그 눈물이

그 사람이 죽었다

저녁이 되자 더 기막힌 일이 일어났다

내가 배가 고파지는 것이었다

어머니가 죽었는데

내 위장이 밥을 부르고 있었다

누군가 갖다준 슬픈 밥을 못 이긴 척 먹고 있을 때

고향에서 친척들이 들이닥쳤다

영정 앞에 그들은 잠시 고개를 숙인 뒤

몇 십 년만에 내 손을 잡았다

그리고 위로의 말을 건넸다

"아니, 이 사람이 막내 아닌가? 폭 늙었구려."

주저없이 나를 구덩이 속에 처박았다.

이어 더 정확한 조준으로 마지막 확인 사살을 했다

"못 알아보겠어.

꼭 돌아가신 어머니인 줄 알았네."

 

 

 - 시집 <양귀비꽃 머리에 꽂고>(민음사 2004)

 

 

 

 

 

 

 


 

 

 

 

 '문정희' 하면 떠오르는 단어가 '연애시'이다. 자타가 공인하는 ‘사랑시’, ‘연애시’의 대가이다. 문정희 시인(1947 ~ )은 무엇보다 쉽게 읽히는 시를 쓴다. 시인은 작금의 연애시에는 몸만 있고 가슴이 없다고 꼬집는다. 부모에 대한 사랑, 이웃에 대한 사랑을 주문한다. 사회적이고 민족적으로 확산된 사랑도 그 속에 있을 것이다. 여기서는 '문정희'식의 연애시에 대한 감상을 하지 않겠다. 민망해서 차마 필설할 수 없는 시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중학생인 우리 딸아이가 볼까봐 걱정된다.

 초기 작품에서 그는 시적 대상을 감각적으로 그려내었다. 삶, 현실, 소망을 자신의 시적 감각으로 정확히 포착하여 정서적 감각으로 묘사를 하던 시풍은 후기로 와서 얼마간 모습을 달리 한다. 점차 일상사에 대한 신변적 사항을 시에 담으려는 의지가 진행되었던 것이다. 이는 그의 시를 보다 깊이 있는 삶에 대한 통찰의 소산으로 볼 수 있게 한다. 필자는 위의 시 '조등(弔燈)이 있는 풍경'을 문정희의 '비연애시의 백미'로 생각하기로 했다. 쉬운 시이지만 더욱 쉽게 내 스타일대로 산문으로 풀어 헤쳐서 아래와 같이 일단 써보기로 했다. (산문이라도 재미있다)

 '80세가 넘으신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장수하셨으니깐 그나마 호상(好喪)이다. 그래도 남의 눈도 있고 자식도리에 슬퍼야 하겠는데 슬프지가 않다. 나는 나쁜 년이다. 그런데 더 나쁜 년이건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울다가 혼절을 해도 시원찮을 판에 밥때가 되었다고 배가 고프다는 것이다. 그래도 죽은 사람은 죽은 거고 산 사람은 살아야 하는 거니깐 밥을 먹었다. 그것도 못이기는 척 하면서……. 상주(喪主)는 죄인인데 그것을 확 무시하다고 말이다. 그때 고향에서 부고(訃告)를 받은 친척들이 들이 닥쳤다. 그들은 영정 앞에 문상(問喪)을 하는 둥 마는 둥 했다. 원래 초상(初喪)은 오랜만에 친척들이 만나는 축제이다. 그리고 실로 간만에 만난 친척은 나에게 많이 늙었다면서 여자의 자존심을 건들렸다. 그것도 모자랐는지 돌아가신 어머니와 같은 레벨인 할머니로 조준과 확인사살로 결정타를 날리면서 말이다.'

 문정희의 시는 잘 읽힌다. 그리고 재미있다. 그 재미있는 이유는 요즘 우리 시에서 흔히 보이는 비판적 탐색이나 비극적 전망, 이로 인한 관념적 상징 같은 것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는 점일 것이다. 시력 30년을 훌쩍 넘긴 중년의 그가 어찌 생활의 타성과 속세의 욕망에 젖지 않았으랴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시는 여전히 건강하고 솔직하다. 그에게 시란 마음의 무늬에 따라 진행된 자연스러운 것이다. 이러한 문정희 시에서 느껴지는 일상적 자연스러움은 근본적으로 시인이 자신의 원초적 본능, 자연스러운 몸의 욕망과 시를 일치시키고자 하는 노력에서 비롯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시가 어렵고 무겁고 난해해야만 좋은 시라고 할 수가 있겠는가. 위의 시에는 세상을 살아가는 정직한 모습이 담겨있다. 솔직하고 격의 없는 모습과 가식 없는 표현……. 모호함과 난해함으로 화장을 하여 무엇이 맨 얼굴인지 구분하기 힘들어진 이 시대에 시인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