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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를 읽다

비 개인 여름 아침 / 김광섭

by 언덕에서 2009. 7. 30.

 

 

비 개인 여름 아침

 

                                                    김광섭

 

 

 

비가 개인 날,

맑은 하늘이 못 속에 내려와서

여름 아침을 이루었으니

녹음(綠陰)이 종이가 되어

금붕어가 시를 쓴다.

 

 -시집 <동경(憧憬)> (대동인쇄소 1938)

 

 

 

 

 


 

 

 

 

 '서늘한 여름' …….

 

 가을 같은 날씨이다. 이상기후 속에서 여름다운 여름을 생각게 한다.

 

 찜통 같은 더위에 갑자기 소나기가 내린 아침의 느낌은 어떨까? 위의 시는 5행밖에 안 되는 짧은 시지만, 산뜻한 여름 감각이 유감없이 표현되어 담담한 한 폭의 수채화를 대하는 느낌이다. 비가 갠 날의 유난히 맑은 하늘, 녹음은 짙어 새로이 윤기가 흐른다. 물속을 들여다보니 맑은 하늘이 내려와 잠겨 있고, 짙푸른 녹음이 그림처럼 곱게 배경을 이루고 있다. 금붕어도 신이 나서 멋지게 헤엄치며 놀고 있다. 그것을 지은이는 무슨 색지를 펴놓고 금붕어가 시를 쓴다고 표현했다. 아름다운 것은 역시 시의 최대의 매력이요, 기쁨이다. 이 시를 읽으면 시적인 매력과 기쁨이 어떠한 것인가를 느낄 수 있다. 자연의 맑고 깨끗한 풍경을 속이 들여다보이도록 선명한 이미지를 구사해 놓았으며, 티 없이 맑은 정서를 나타내 보였다.

 김광섭 시인(1905 ∼ 1977)의 시풍은 고요한 서정과 냉철한 지성으로 짜여 있으며, 일제 말엽에 쓴 시들은 당시의 시대적 고민을 짙게 나타내고 있다. 일제가 언론을 말살하고 우리말을 송두리째 근절시키려던 그 시기에 서울 서대문 형무소에서 3년 8개월이라는 옥고를 치러내는 고난을 겪기도 했다.

 1938년에 낸 첫 시집 <동경>에 대한 신간 평에서 정인섭은 ‘이 세대에 있어서 금후로 광섭식의 시풍이란 것도 한 커다란 조류를 이룰 것이 추측되는바’ 라고 하여 그의 시를 높이 샀다. 김광섭 시인 이후의 시인들 중에서 그의 영향을 받지 않은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그의 시문학은 시어가 풍부하고 다양하며 어휘 선택의 범위가 매우 넓다. 이미지에서도 체계의 다양성과 함께 상징성의 깊이를 발견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없는 국가이다. 그러나 김광섭 시인의 시가 있기에 그런 나라들이 부럽지 않다.

 위의 시는 '비 개인 여름 아침'을 한눈에 보여 주고 있다. 모더니즘의 기법으로 참신한 이미지를 제시하여 비 그친 뒤의 신선한 분위기까지 느끼게 해 주는 이 작품은 시인이 돌아가고 싶어 하는 어린 시절의 고향 세계이며, 일제 치하의 현실에서 그가 꿈꾸는 이상 세계로 해방된 조국의 모습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