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르반테스 장편소설 『돈키호테(Don Quixote)』
『돈키호테』는 스페인 작가 세르반테스(Miguel de Cervantes Saavedra.1547~1616)의 풍자소설로 정식 표제는 <재기(才氣) 발랄한 향사(鄕士) 돈키호테 데 라만차>이다. 전,후편 합쳐 6,700여 매(200자 원고지 기준) 요즘 책 2,000쪽에 달하는 방대한 양의 이 소설의 전편은 1605년, 후편은 1615년에 출판되었다. 세르반테스는 이 작품을 쓴 목적을 “당시의 항간에 풍미했던 기사도 이야기의 권위와 인기를 타도하기 위해서”라고 했듯이 그 당시 스페인에 크게 유행했던 기사도 이야기의 패러디를 쓰려고 했다. 그러나 감흥이 솟는 대로 일정한 계획도 없이 써 나가는 동안, 처음 의도한 바를 잊고 주인공 돈키호테와 종자(從者)인 산초 판사의 성격을 창조한다는 새로운 주제에 열중하여 본의 아니게 인생 전체를 포괄하는 대작이 되고 말았다.
이 이야기는 결코 단순한 익살이나 풍자소설이 아니다. 프랑스의 비평가 A.티보데는 ‘인류의 책’이라 불렀지만, 진정으로 ‘인간’을 그린 최초, 최고의 소설이라는 격찬을 받기도 하였다. 17세기부터 현재까지, 전 세계의 문인과 지성들은 돈키호테를 현실의 거울이라 칭하며, 세르반테스의 철학이야말로 인간 삶과 권리와 정의를 위한 이상적인 개혁이라고 보았다. 이 작품에 대한 해석의 범위는 넓고 다양하며, 돈키호테와 산초 판사가 겪는 모험은 웃음을 자아내기도 하고 눈물을 쏟아 낼 수밖에 없는 사연을 담고 있기도 하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스페인 라만차 지방의 어느 마을에 살고있는 50살에 가까운 독신의 시골 선비 아론소 기하노는, 수렵도 밭농사도 다 잊어버린 채 오직 기사도 이야기에 빠져 그것에 관한 책을 사기 위해 밭을 팔아버릴 정도의 광인(狂人)이다. 그는 스스로 정의의 기사가 되어 세상의 악을 바로잡겠노라고 결심하고 모험의 길을 떠난다.
조상들이 쓰던 낡은 갑옷을 입고, 말라빠진 말에 ‘로시난테’라는 이름을 붙여 주고, 자기 자신도 어엿하게 ‘돈키호테’라 이름 붙여 편력 기사로서의 모험을 세 차례나 떠나게 된다. 처음에는 혼자 떠나 하루 걸리는 곳까지 가서 하룻밤을 자고 봉변을 당한 채 돌아온다. 두 번째는 그로부터 약 보름 후 농부 ‘산초’와 함께, 비쩍 마른 말 로시난테를 타고 본격적인 여행길에 오른다. 풍차와 격투를 벌이거나 양떼 가운데로 돌진하는 등, 여러 가지 모험과 사건을 일으키는 돈키호테는 자신을 정식 기사로 착각하는 탓에 많은 숱한 기행을 일삼는다. 그 결과로 갈비뼈가 부러지고 치아가 빠지는 등 어려움을 겪게 되지만, 강제로 끌려가는 노예선의 노예들을 풀어 주기도 한다.
마침내 돈키호테는 그를 염려해 주는 마을 사람들에 의해 강제로 집으로 끌려오게 된다. 건강을 회복한 돈키호테는 세 번째 모험을 떠난다. 두 번의 모험 이후 미치광이 돈키호테에 대한 소설이 시중에 유행하고, 그것을 읽은 인근의 공작 부부가 그를 성으로 초대해서 그를 대단한 기사로 대접하며 그의 광기를 지켜보는 것을 즐긴다. 공작은 산초에게는 섬을 통치하도록 허락하는 연극을 꾸며 그를 지켜보며 웃음을 놓치지 않는다. 그러나 돈키호테는 성을 떠나 그가 못잊어 하는 여인 ‘둘시네아’를 찾아나서며 모험을 계속하지만, 산초는 둘시네아가 주인의 광기가 만들어 낸 가공의 인물임을 알아차린다.
보다 못한 그의 친구 학사 삼손 카라스코가 은월의 기사로 변장하여 돈키호테에게 결투를 신청한다. 그리고 돈키호테를 굴복시켜 앞으로 1년 동안 무기를 쥐지 않겠다고 약속을 받는다. 돈키호테는 은월의 기사와 대결해서 졌으므로 약속에 따라 고향 집으로 돌아온다. 꿈은 깨어지고 서글프기만 한 돈키호테는 모두가 알맞은 제자리에서 질서 정연하게 살고 있는데, 자기만이 꿈속에 살았음을 깨닫고 인생을 뉘우치며 조용히 숨을 거둔다.
17세기부터 현재까지, 전 세계의 문인과 지성들은 돈키호테를 현실의 거울이라 칭하며, 세르반테스의 철학이야말로 인간 삶과 권리와 정의를 위한 이상적인 개혁이라고 보았다.
돈키호테는 근처에 사는 농부 산초 판사를 종자로서 거느린다. 현실과 동떨어진 고매한 이상주의자인 주인 돈키호테는 순박한 농사꾼으로 우직하고 욕심꾸러기이며 애교가 있고 충실한 종자 산초 판사와는 지극히 대조적인 짝을 이룬다. 그의 기사도 정신의 광기와 몽상은 이 두 사람이 가는 곳마다 현실 세계와 충돌한다. 우스꽝스러우나 주인공들에게는 비통한 실패와 패배를 맛보게 한다. 이러한 가혹한 패배를 겪어도 그의 용기와 고귀한 뜻은 조금도 꺾이지 않는다.
돈키호테는 세계 제패를 꿈꾸던 스페인의 무적함대 패배 이래 몰락해 가는 조국의 모습을 감옥에서 보내던 세르반테스가 그 시대를 조명해 보았다고 할 수 있다. 작가 자신이 이 작품의 맺음말에서 『돈키호테』는 당시 권세를 누리던 기사도 이야기를 타도하기 위한 목적으로 쓰였다고 말하고 있다. 또한 돈키호테는 고매하고 이상적인 인물로 산초 판사와 함께 가장 특이한 성격의 주인공으로 나타난다. 기사도의 사명감에 우스운 모험으로 모든 사람의 조롱거리가 된 돈키호테지만, 그의 고매한 품성은 끝까지 유지된다. 한편, 대비되는 인물로 산초는 실제적이고 비속한 물질주의적인 성격으로, 이들 두 사람은 서로 협력관계를 지속하면서 인간의 보편적인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이런 두 사람의 성격묘사는 인간의 보편적인 성격을 다루고 있음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
이야기의 끝부분에서 돈키호테는 점차 기사소설의 미몽에서 깨어나 현실을 현실로 받아들이게 되는 한편 산초 판사는 주인과 교감하고 소통하는 과정에서 점차 그의 이상주의를 닮아가며 급기야는 임종을 앞둔 돈키호테에게 죽지 말고 네 번째 출정에 나설 것을 간청하기까지 한다. 돈키호테의 이상과 산초 판사의 현실 사이의 경계가 무너지면서 진실과 허구 사이의 경계도 희미해진다.
돈키호테가 미쳐서 살다가 제정신을 찾고 죽었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대목은 우리에게 심오한 삶의 교훈을 준다. 이성의 논리 속에서 이해관계를 따지며 사는 것이 옳은 삶인지, 아니면 진정 우리가 꿈꾸는 것을, 그것이 불가능한 꿈이라 할지라도 실현하고자 하는 것이 옳은 삶인지를 규명해야 하는 것은 우리 삶의 숙제이기 때문이다.
- 월간 소식지 '맑고 향기롭게' 2017년 2월호에 게재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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