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오웰 장편소설『1984년(Nineteen Eighty-Four)』
영국 소설가 G.오웰(George Orwell.1903∼1950)의 역(逆)유토피아 소설로 1949년 간행되었다. 1984년, 가공의 초대국 오세아니아에서 자행되는 전체주의적 지배의 양상을 묘사한 저자 만년의 작품이다.
권력 집중이 자기목적화한 당에 의한 대중(프롤레타리아계급)지배, 지배수단으로서 항상적인 전쟁상태의 유지, 거의 신격화한 지도자 빅 브러더에 대한 숭배, 개인생활의 감시, 사상통제를 목적으로 한 언어의 간략화, 당의 무오류성을 증명하기 위한 역사의 새롭게 쓰는 등 모든 지배기구가 내포하는 위험성이 미래소설의 형태로 제시되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소설은 1984년을 배경으로 한다. 세계 강대국 셋이 서로 오랫동안 전쟁을 벌이고 있다. 영국은 강국 오세아니아에 속해 있다. 런던은 '에어스트립 원(Airstrip one)'이라 불린다. 정부는 주민들을 지속적인 관찰과 조작, 세뇌를 통해 통제한다. 사람들은 선전 언어인 '뉴스피크(Newspeak)'로 말하는데, 그 언어를 사용하면 원래의 의미가 반대로 역전되거나 미화된다(예를 들어 사람들은 뉴스피크로 '나쁘다'는 말 대신에 '좋지 않다'는 말을 한다). 이런 언어의 목적은 주민들의 정신적 판단을 완전히 차단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체계적으로 천하고 상스럽게 된다. 그래서 아이들은 이제는 예전 같으면 목장을 구경하러 가자고 보챘던 것처럼 사형장에 구경가자고 칭얼댄다. 영화관에서는 가장 잔인한 장면이 특별히 재미있는 것으로 통한다. 정부는 네 부처를 두고 통치하는데, 각각 평화부(전쟁을 담당), 사랑부(법과 질서를 담당), 잉여부(피폐한 경제를 담당), 진실부(뉴스와 오락, 예술을 담당)가 그것이다. 국가는 첩자들을 통해 시민들을 도처에서 늘 감시하고, 진실을 왜곡하며, 역사를 날조한다.
윈스턴 스미스는 중간 정도의 지위를 가지고 있는 정부 공무원이다. 그는 자신의 애인 줄리아와 함께 정부를 전복하고자 계획한다. 그래서 비밀 지하운동조직에 가담한다. 하지만 윈스턴과 줄리아는 사상 경찰에 의해 체포된다. 윈스턴은 무시무시한 고문 방법을 통해 완전히 세뇌된다. 마침내 그는 그가 가장 증오했으며 그를 파괴했던 상부를 사랑한다. 즉 윈스턴은 빅 브라더를 사랑하게 된다.
그를 최종적으로 붕괴시키는 것은 상상이 가능한 최악의 처벌 '101호실'의 고문이다. 이 방에서 피의자는 자신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에 노출 당하는데, 윈스턴의 경우는 쥐이다. 쥐를 가득 채운 쇠그물 상자가 머리에 씌워지려고 하는 찰나, 윈스턴은 오브라이언에게 이 고문을 자기 대신 애인 줄리아에게 실시해 달라고 빌게 된다. 그리하여 자신의 마지막 한 조각 자존심과 도덕적 고결성마저 파괴한다.
이 책의 마지막 장면에서 완전히 개조된 윈스턴은 카페에 앉아서 광장의 스크린에 있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초상을 응시하고 있다. '그는 대형(빅 브라더)을 사랑했다'고 조지오웰은 쓰고 있는데, 이것은 이 주인공을 위한 묘비명이기도 하다.
20세기의 본질을 가장 잘 담아냄으로써 유수의 기관에서 선정하는 최고 명저 목록에 빠짐없이 오르는 작품이 『1984년(Nineteen Eighty-Four)』는 조지 오웰의 생애 마지막 작품으로, 『동물 농장』과 더불어 전체주의가 지배하는 미래 사회에 대한 섬뜩한 상상을 보여 주는 대표작이다. 또한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자미아틴의 『우리』와 함께 20세기 3대 반유토피아 문학으로 꼽히기도 한다.
오웰은 1936년 스페인 내전 당시 취재차 스페인에 들어갔다가 프랑코 파시스트 정권에 맞서 싸우는 의용군에 자원했다. 그러나 여기에서 그가 마주친 것은 분열된 공산당 투쟁이었다.
소련 스탈린 정권의 지원을 받은 공산주의자들이 한때의 동지였던 사회주의자들과 아나키스트들을 무자비하게 축출하고 제거하는 사태를 목격하면서 그는 처음으로 스탈린 공산주의와 전체주의가 다르지 않음을, 진정 경계해야 할 대상은 전체주의임을 깨달았다.
20세기 초 세계를 휩쓸고 있던 거대한 힘인 전체주의의 위험성을 절감한 오웰은, 이를 경고하는 것이 작가로서 자신의 소명이자 진정한 사회주의자의 책무라고 믿게 되었다. 그 자신이 한 에세이에서 밝혔듯이, “1936년 이후 나의 모든 진지한 저작은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전체주의에 반대하고 민주 사회주의를 지지”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러한 소명 의식이 가장 뚜렷하게 발휘된 작품이 바로 그의 마지막 소설인 『1984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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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에 나오는 당의 지배자들은 단 한 가지 목적 추구에 사로잡혀 있다. 그것은 바로 권력이며, 불만스러운 표정을 짓는 것조차 불법으로 간주하며, 괴롭히고 죽이며, 권력 행사를 한다. 그들은 역사를 조작하며, 언어까지도 마음대로 한다.
주인공 윈스턴이 자유와 인간성 회복을 위해 전체주의 체제에 항거해 보지만, 세뇌와 혹독한 고문으로 결국 굴복하고 권력자인 대형을 사랑하며 죽어간다. 이는 권력 앞에 선 한 개인의 의지와 진실이 얼마나 무모한 것인가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 작품을 통해 정치와 권력이 인류사회를 얼마나 비극적인 양태로 끌고 갈 수 있으며, 통제된 사회와 고문, 세뇌가 인간성을 얼마나 말살시키는지를 알 수 있으며, 우리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워 준다.
작품의 무대인 오세아니아는 모든 것이 당에 의해 통제되는 국가이다. 이곳에서 당은 절대적인 존재로, 사람들의 일거수일투족은 텔레스크린에 의해 철저히 감시당한다. 개인의 생각과 감정과 기억뿐만 아니라, 상식과 역사도 당에 의해 철저히 조작되고 만들어진다. 물론 스탈린 시대보다 더 가혹한 당의 감시와 통제가 이루어지는 전제주의적 공산국가도 현재 존재한다.
한 통계에 의하면 영국 런던에서는 일반 시민이 하루 평균 감시 카메라에 찍히는 횟수가 300회에 육박한다고 한다. 길거리, 회사, 은행, 엘리베이터 등 곳곳에 감춰져 있는 카메라 앞에 현대인은 자신도 모르는 새 다른 사람의 눈에 노출된다. 또한 휴대전화를 통해서 위치도 추적당하며, 인터넷에서 수많은 개인 정보가 유출되거나 거래되는 것은 공공연한 이야기가 돼버렸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1984년』은 고도의 정보 사회에 사는 우리에게 여전히 유효한 경고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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