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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典을 읽다

나관중 고대 장편소설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 』

by 언덕에서 2008. 7. 10.

 

 

나관중 고대 장편소설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 

 

 

 

 

중국 원(元)나라 때의 소설가 나관중이 지은 장편 역사소설. 중국 4대기서의 하나로, 원명은 <삼국지통속연의(三國志通俗演義)>라 하며, 또한 삼국의 정사(正史)를 알기 쉬운 말로 이야기한 책이라는 뜻에서 <삼국지평화(三國志平話)>라고도 부른다.

 명(明) 나라 때 나관중 작. 역사소설, 한 나라 영제로부터 진(晉) 나라 무제(武帝)에 이르기까지 97년간 역사를 소재로 하고 있다. 진수의 <삼국지>에 서술된 위(魏)ㆍ촉(蜀)ㆍ오(吳) 3국의 역사에서 취재한 것으로, 3국이 정립하여 싸우는 이야기는 그 전투의 규모가 웅장하고, 인간의 온갖 지혜와 힘을 총동원하여 치열한 공방전이 되풀이되는 만큼, 옛날부터 중국인들 사이에 흥미 있는 이야기로 전하여 오다가 9세기(당나라 말기)경에는 이미 연극으로 꾸며진 흔적이 있고, 송대(宋代.11∼13세기)에는 직업적인 배우까지 나왔다.

 이것이 책으로 엮어진 것은 원나라 지치연간(至治年間.132∼123)에 그림을 붙여 간행한 <전상삼국지평화(全相三國志平話)>(3권)이며, 이것은 현존하는 최고본이다. 이 책은 일종의 강담용(講談用) 대본 같은 것이어서 문장이 조잡하고 유치하였다. 그러나 원나라 때에는 이 평화(平話)를 바탕으로 하여 많은 희곡이 만들어졌으며, 나관중은 이 평화를 철저하게 개작하고, 많은 사실을 곁들여 이 책을 완성시켰다. 원본은 전하지 않고, 현존하는 최고본은 1494년의 서문이 있는 홍치본으로, 이 책도 실은 1522년에 간행한 것이다. 24권 240로 나누어 기술하였으며 이것이 가장 원형에 가까운 것으로 생각된다. 그 후 분권을 없애고, 2절을 1회로 하여 모두 120회로 만들었다.

 청나라 때는 모종강의 개정본이 나와, 이것이 다른 책을 압도하고 정본이 되었다. 이야기의 내용은 대략 전ㆍ후반으로 나누어지며, 전반에서는 유비ㆍ관우ㆍ장비 3인의 결의형제를 중심으로 나중에 제갈 공명이 가담하게 되는데, 절정은 유비와 손권의 연합군이 조조의 대군을 화공으로 무찌르는 적벽의 대전이며, 이것이 위(魏: 조조)ㆍ오(吳: 손권)ㆍ촉(蜀: 유비)의 3국이 분립하게 되는 원인이 된다. 후반에서는 장비ㆍ관우ㆍ유비가 연이어 죽은 다음 제갈 공명의 독무대가 되고, 공명이 6차에 걸친 북정에서 병사하는 <추풍오장원(秋風五丈原)>의 1절이 절정을 이루게 된다. 소설의 주요인물은 유비 등 3인과 공명이지만, 조조의 성격도 잘 묘사되어 있다.

 가장 생기가 넘치는 것은 관우와 장비 두 사람이며, 특히 장비의 순진하고 솔직한 성격은 중국 대중의 많은 사랑을 받는다. 무용과 지모로 이어지는 전투의 기술이 태반을 차지하고 있으나, 이야기의 전개가 적당한 템포로 진행되고, 독자의 흥미를 이끌어 가는 수법이 매우 뛰어나 중국의 많은 역사소설 중에서 가장 훌륭한 작품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예부터 대중적인 읽을거리로 널리 읽혀져 왔으며, 특히 그 속에 담긴 유비 현덕을 중심으로 한 한실(漢室)에 대한 충성이라든가, 공명의 지략, 유비ㆍ관우ㆍ장비의 결의 등은 유교적 이념을 국시로 삼았던 조선시대에는 크게 환영을 받았다. 그 중에서도 관우의 장한 의기와 절개는 민간신앙으로까지 발전하여 관제교(關帝敎)가 생겨나고, 관제묘(關帝廟)가 곳곳에 세워지기까지 하였다. 신문학 이전에는 한문으로 된 원본이 수입되어 읽혔으나 그 후 수많은 국역본이 나와 널리 대중의 인기를 차지하게 되었다. 김동성 역(5권, 을유문화사), 최영해 역(3권, 정음사), 박종화 역(月灘三國志 3권, 어문각), 김광주 역(삼중당), 이문열 역(민음사), 황석영 역(창비) 등의 국역본이 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기원전 3세기말에 고조 유방이 세운 한 왕조는 전한, 후한을 합쳐서 400년 동안 중국의 통일을 유지하였다. 후한 말에 나라는 환관들에 의해 돌아가고 있었다. 정치는 혼란해지고 사람들의 생활은 점점 가난해져 갔다. 그런데 전염병의 유행과 가뭄, 홍수 등의 재해들이 많이 일어나서 더욱 힘들었다. 이 무렵 태평도라 불리는 새로운 종교가 생겨서 차차 그 신자가 늘어났다. 태평도는 장각에 의해 만들어졌는데, 황천의 신을 믿고, 황천의 신에게 자기 죄를 고백함으로써 누구나 구원된다고 설교하였다. 그리고 아픈 사람은 무료로 치료를 해 주었기 때문에 가난한 농민 등이 신자가 되었다.

 184년, 장각은 농민들은 모아 반란을 일으켰다. 반란은 빠르게 퍼져서 세상은 더욱더 어지러워졌다. 이 반란은 사람들이 황색두건을 쓰고 있다 해서 황건적 난이라 부른다. 반란군은 한 왕조의 군대와 격렬한 싸움을 계속하였다. 이 반란을 없애기 위해 의형제를 맺은 사람이 바로 유비, 관우, 장비다. 이 세 사람과 조조의 활약으로 반란군은 없어졌다. 이 두 사람, 유비와 조조가 훗날 천하 통일을 겨냥하는 경쟁자가 되는 것이다. 황건적 난은 반란이 일어난 지 몇 달 뒤에 장각이 병사하자 순식간에 힘을 잃어 얼마 후, 조조와 유비의 활약으로 평정되었다. 그러나 혼란해진 정치는 이미 수습되지 않아, 한 왕조의 힘은 급속도로 망했다.

 189년에 후한의 영제가 죽자 조정안은 황제의 후사 문제를 놓고 더욱더 혼란해졌다. 이 때 황건적 난 때 공을 세운 동탁이 대군을 이끌고 뤄양성을 얻은 뒤 9살인 유협을 억지로 황제로 내세웠다. 이것이 후한의 마지막 황제인 헌제이다. 동탁은 스스로가 황제의 승상이 된다고 하였다. 그러나 동탁은 황제가 어려서 아무도 따르지 않을 것을 알고 자기가 황제가 되겠다고 꾀했다. 그러나 조조는 동탁의 나쁜 생각을 알아차리고 명문 출신의 장군인 원소 등과 함께 병사를 일으켜 동탁군을 쳤다. 조조군 밑에는 동탁을 치려는 사람들이 모여 수도 뤄양으로 쳐들어갔다. 동탁은 놀라 서울을 장안으로 옮기려고 뤄양성을 불태우고, 헌제를 데리고 많은 사람들과 함께 장안으로 옮겨갔다. 동탁은 장안으로 옮길 때 전 황제와 황후의 무덤을 파서 무덤에 있는 재보까지 가져갔다. 이리하여 후한의 도읍지로서 200년 동안 이어진 뤄양성은 동탁군에 의해 불태워져 무참한 모습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장안으로 옮긴 지 얼마 안 되어 동탁에게 불만을 품고 있던 부하가 반란을 일으켰다. 그리하여 동탁은 부하의 손에 허무하게 죽었다. 동탁이 죽은 후 조조와 원소의 세력이 대립하게 되었으나 196년, 조조는 장안을 빠져 나온 헌제를 맞이하여 쉬창에 도읍을 정하여, 다른 세력보다 한 발 앞서 있었다. 몇 년 뒤인 200년에, 조조는 원소군을 칠 대결전 준비를 했다. 조조군과 원소군은 황하변의 관도에서 맞부딪혔다. 조조군의 힘이 원소군을 앞섰다. 그리하여 반년이 지난 뒤 싸움은 끝나고, 조조군이 승리를 거두었다. 조조는 마침내 중국 북부를 얻었다. 그 무렵, 황건적 난에서 조조와 함께 활약한 유비는 부하와 함께 여러 나라를 전진하고 있었다. 유비는 형주에서 힘을 갖게 되어 신야성의 성주로 초빙되었다. 유비는 전쟁에 지친 사람들을 보호하고, 세금도 가볍게 하였다.

 그로부터 6년 후 유비는 관우, 장비와 함께 한 인물을 찾아갔다. 하지만 그는 두 번이나 유비를 만나주지 않았다. 그리하여 이듬해 봄에 방문했을 때야 겨우 제갈공명을 만날 수 있었다. 명 군사 제갈공명을 얻은 유비는 마침내 천사 통일의 첫걸음을 내딛게 되었다. 208년, 북부를 진압한 조조는 드디어 대군을 이끌고 남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손권, 유비를 멸망시키고 천하 통일을 이루기 위해서였다. 이를 안 공명은 조조와 싸우기 위해 몸소 오 나라의 손권을 찾아갔다. 공명은 조조가 배와 배를 사슬로 이어서 움직이는 섬처럼 만들어 있다는 것을 알고 어느 한 배에 불을 붙이자고 하였다. 그런데 한 장군이 반대를 하였다. 바람을 맞고있는 쪽은 우리 군이기 때문에 불을 붙인다면 우리 배로 불이 옮겨 붙는다는 것이었다. 그 때, 공명이 바람의 방향을 바꾸겠다고 나섰다. 공명은 이때 제단 앞에서 바람의 방향이 바뀌도록 하늘을 향해 기도를 했다고 한다. 이 동안 손권, 유비군은 기름에 적신 건초를 작은 배에 실어 화공준비를 하였다. 이 무렵 조조의 배는 손권, 유비군에 접근하고 있었다. 드디어 바람이 바뀌자 손권, 유비군은 공격하기 시작했다. 조조군의 배 한 척에 불을 붙자 모든 배가 삽시간에 불타올라, 주위는 온통 불바다가 되었다. 싸움은 손권, 유비군의 대승리로 끝났다. 이를 적벽 대전이라고 한다. 대군을 잃은 조조는 필사적으로 달아났다. 적벽 대전에서 패하여 쉬창으로 도망쳐 온 조조는 그로부터 8년 후, 다시 힘을 회복했다. 그리하여 조조는 화북일대를 지배하게 되어 216년, 헌제로부터 위왕의 칭호를 받았다.

 그러나 이 동안에 유비는 형주, 익주를 손에 넣어, 219년, 한중왕이 되었다. 이를 안 손권은 조조와 손잡고 유비군을 치기로 했다. 우선 관우가 지키고 있던 형주를 공격하였다. 관우는 위, 오의 대군 앞에서도 겁내지 않고 적토마를 타고 싸웠다. 적토마는 관우의 애마로, 붉은 털을 가졌으며 하루에 천 리를 달린다고 했다. 관우가 죽자 아무 것도 먹지 않고 관우를 따라 죽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 유명한 호걸 관우도 이 대군을 당해 내지 못하고, 아들과 함께 사로잡히고 말았다. 그런데 해가 바뀐 220년 조조가 별안간 병으로 쓰러져 어이없이 죽고 말았다. 66세였다.

 그 해 10월, 조조의 뒤를 이어 장남인 조비가 헌제를 물리치고 황제가 되어 위 왕조를 일으켰다. 이로써 400년간 계속된 한 왕조는 멸망한 것이다. 이에 대하여 유비도 그 다음해에 촉 왕조를 세워 서 황제가 되었다. 이것이 촉, 오, 위 삼국 시대의 시작이다. 221년, 유비가 촉의 황제가 된 그 해, 장비에게 원한을 품고 있던 부하에게 살해되었다. 정에 홀려버린 유비를 공명이 말리려 했지만 공명의 충고도 듣지 않고 군사를 일으켜 오를 공격했다. 그러나 촉군의 공격에 오군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유비군은 공명의 예측대로 크게 패하여 익주의 서쪽에 있는 백제성으로 달아났다. 그 무렵 유비는 무거운 병에 걸려 있었다. 223년 4월 유비는 마침내 파란 많은 생애를 마쳤다. 62세 때였다.

 유비의 아들 유선은 아버지에 비해 재능이 없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공명은 유선을 도와서 나라를 잘 다스렸다. 공명 밑에서 촉은 순탄하게 천하 통일의 준비를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227년에 공명은 위를 치기 위해 한중으로 병사를 진격시켰다. 234년 여름, 공명은 위를 치기 위해 우장위안에 진을 쳤으나 진중에서 무거운 병에 걸리고 말았다. 234년, 제갈공명은 마침내 이 세상을 떠났다. 54세 때였다. 공명 선생의 죽음과 동시에 유성이 하나 떨어졌는데 위군의 군사들은 공명이 죽은 줄 알고 공격을 했다. 그 때, 한 대의 마차가 위군의 앞쪽에 나타났다. 공명이 타고다니던 마차였다. 죽은 줄 알았던 공명의 모습을 본 위군은 놀라서 병사를 철수시켰다. 공명으로 보인 모습은 실은 공명의 모습을 한 목상이었던 것이다. 공명은 자기가 죽으면 위군이 쳐들어올 것을 예상하여, 죽기 전에 이 작전을 지시했던 것이다.

 그 후 263년, 촉은 위에게 멸망하고, 위도 2년 후에는 사마중달의 손자인 사마염에 의해 멸망하였다. 그리고 사마염은 진 왕조를 세웠다. 또한 진은 280년에 오를 멸망시켜, 마침내 천하 통일은 이루어졌다.

 

 

 

 

 이 소설은 진수의 <삼국지>에 서술된 위(魏)ㆍ오(吳)ㆍ촉(蜀) 3국의 파란 많은 역사가 민간설화로 성장하고, 그것이 독서물로서 결실을 맺은 것이다. 그 프리미티브한 형식은 원(元) 시대 지치(至治.1321∼1323) 연간에 간행된 <전상삼국지평화(全相三國志平話)>(3권)라는 그림 있는 책에 보인다. 그러나 설화로서는 일찍이 송(宋) 시대(10∼13세기)부터 민간에 유행되었으며, 원 시대에는 희곡으로 각색 상연되었다.

 이것도 판본이 10여 종 있고, 각각 내용과 체재가 다르기는 하나, 현존한 것 중 가장 오래된 것은 명(明) 시대의 1522년에 간행된 <삼국지통속연의(三國志通俗演義)>(24권)이다. 작자는 나관중이라고 전해지나, 이것도 <수호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비록 그의 손으로 된 것이라 해도 순수한 창작이 아니며, 그때까지 설화로서 전승되던 것을 장편소설 형식으로 만든 것이다.

 

 

 그 문장은 <수호전>과 달라, 소위 군담 문체여서 간결하며, 문어체를 많이 섞은 백화(白話)이며, 정채(精彩)는 적으나, 힘찬 리듬을 가지고 있다. 이야기의 대강 줄거리는 진수의 <삼국지>와 대략 같으나, 민간설화에서 전개된 것인 까닭에 새로운 취미가 각처에 들어있다. 그 중에도 유비ㆍ제갈공명ㆍ조조ㆍ관우ㆍ장비 등 각종 형(型)의 영웅호걸들은 모두 명쾌하게 성격이 묘사되고, 그것이 복잡한 권모술수와 변화 있는 전투 장면 등과 서로 기복조응하면서 주마등 같이 전개되어 가는 그 거침없는 힘찬 필치는 역사소설 중에서도 극치일 것이다.

 중국인 사이에서 「삼국지연의」가 애독되는 열은 비상하여 연극ㆍ강담(講談) 등으로 글자를 모르는 사람에게까지 침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