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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래5

술이 원수라고? 술이 원수라고? 좌충우돌의 미학은 / 너로 말미암아 비롯하고, / 드디어 끝난다. / 구슬도 먼지도 못되는 / 점잖은 친구들아, / 이제는 당하지 않을 것이니 / 되려 기뻐해다오. 위의 시는 김관식1(1934 ~ 1970) 시인의 시 '김관식의 입관(入棺)' 중 일부이다. 너로 말미암아 비롯하고 끝나다니 ‘너’는 누구일까? 바로 ‘술’이다. 술 때문에 죽게 되었다고 원망하는 것인데 실제로 그는 술 때문에 죽었다. “오오냐, 오오냐 적당히 살거라 시인들아!”라며 세상을 온통 긍정하면서도 눈물로 시적 에스프리2를 캐냈던 박용래3 시인은 천성적 순수로 현실에는 도저히 편입될 수 없는 시인이었다. 강경상고를 졸업하고 은행에 들어갔으나 돈 세는 것에 염증나 그만둬버린 시인은 돈ㆍ사회와는 영영 등을 돌리고 술로만 .. 2014. 12. 5.
군더더기 없는 언어의 결정체 『박용래 시선』 군더더기 없는 언어의 결정체 『박용래 시선』 박용래(1925 ~ 1980)는 전설적인 눈물의 시인이다. 바위틈의 꽃처럼 저 홀로 한가롭게 피어 유심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눈에 띄지 않는, 그런 시인이었다. 다만 죽는 날까지 그의 시처럼 잔잔하고 조심스럽지만 행간은 뜨거웠던 시인의 행보를 .. 2013. 9. 2.
그 봄비 / 박용래 그 봄비 박용래(1925∼1980) 오는 봄비는 겨우내 묻혔던 김칫독 자리에 모여 운다 오는 봄비는 헛간에 엮어 단 시래기 줄에 모여 운다 하루를 섬섬히 버들눈처럼 모여 서서 우는 봄비여 모스러진 돌절구 바닥에도 고여 넘치는 이 비천함이여 박용래, 향토적인 정서를 시적 여과를 통해 간결하고 섬세하게 표현함으로써 한국 현대시의 한 갈래를 형성한 분입니다. 또한 그는 향토적인 사물을 눈물겹도록 사랑하는 마음으로 시를 썼지요. 시류(時流)에 흔들리지 않고 타인을 눈치 보는 일 없이 자리 잡힌 자세로 자기의 아늑한 세계 안에서 꾸준하게 정진해 온 집착이 그 이유라고 합니다. 그의 시는 모두 아름답습니다. 향토적인 사물이나 현상의 구석구석에 편재(遍在)한 아름다움을 찾아내어 그 에스프리를 추려 극도로 간결한 표현.. 2012. 4. 2.
술에 관한 시에는 뭐가 있나요? 한국시의 술예찬 술에 관한 시에는 뭐가 있나요? 한국시의 술예찬 과거 우리 조상들은 술을 대단히 즐겼습니다. 조선시대의 명재상이었던 김육(金堉:1580.선조 13∼1658.효종 9)은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자네 집에 술 익거든 부디 날 부르시소. 내 집에 꽃 피거든 나도 자네 청해옴세. 백년덧 시름 잊을 일을 의논코자 하노라. 김육은 영의정까지 오른 고관이었지만 재산이 없었고 벼슬자리가 끝나면 직접 농사를 지으며 청빈하게 살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가난한 선비가 꽃 피는 날 벗을 청하여 술을 마시자는군요. 조선 후기의 가객(歌客 )김천택(金天澤)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엊그제 덜 괸 술을 질동이에 가득 붓고 설데친 무우나물 청국장 끼쳐 내니 세상에 육식자(肉食者)들이 이 맛을 어이 알리요. 고기가 귀한 당시, 살.. 2012. 1. 28.
저녁눈 / 박용래 저녁눈 박용래 늦은 저녁 때 오는 눈발은 말집 호롱불 밑에 붐비다. 늦은 저녁 때 오는 눈발은 조랑말 발굽 밑에 붐비다. 늦은 저녁 때 오는 눈발은 여물 써는 소리에 붐비다. 늦은 저녁 때 오는 눈발은 변두리 빈터만 다니며 붐비다. - (1966) * 말집 : 추녀가 사방으로 뺑 돌아가게 만든 집. 박용래 시인( 1925 ~ 1980)의 시는 점차 사라져가는 한국 농촌과 자연의 풍물에 강한 연민을 보이고 있으며, 이러한 감정이 전통적 . 애상적 정서에 힘입어 독특한 토속 미학을 형성한다. 이 시에서 겨울에 여행을 떠난 화자는 저녁때가 되어 허름한 주막에 찾아 든다. 저녁을 먹고 우연히 바깥을 바라보는데 함박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그러자 한가하던 주막은 갑자기 활기를 띠고 바빠진다. 주막임을 표시하는 희미.. 2009. 9.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