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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향림5

노향림 시집 『후투티가 오지 않는 섬』 노향림 시집 『후투티가 오지 않는 섬』 여류시인 노향림(盧香林.1942.4.2∼ )이 1998년에 펴낸 이 시집은 존재의 본질을 드러내는 말의 실존성을 회복하려는 남다른 언어적 과정을 통해 현실적 삶의 무의미성과 불모성을 형상화해 보여준다. 노향림은 절제된 감정을 깔끔하고 선명한 이미.. 2013. 4. 29.
여름이 가다 / 노향림 여름이 가다 노향림 (1942 ~ ) 만날 사람도 없이 긴 나무의자에 누워 있는 사람들의 얼굴이 불콰하다. 닫힌 얼음집 앞에 빚더미처럼 여름이 엎질러져 있다. 문 안에서 누가 톱질을 하는지 새벽에서 밤까지 슬픔들이 토막으로 잘려나오는 소리. 질이 연한 내 마음이 아프다. 쭈쭈바를 입에 문 아이가 기웃거리다 지나가는 쪽 속이 편안한지, 덜컹거리며 가야 할 길 버리고 시동 걸린 화물트럭이 빈 채로 대기중이다. 큰길 옆 버즘나무 그늘 밑 사람들이 얼굴을 펴면 뜨내기 꽃들의 얼굴에도 햇볕이 환하게 빛났다. 몰래 내다 버린 화분 속에 관절을 앓는 남천이, 은침을 박고 있는 어깨와 겨드랑이에 여름이 환하게 지는 중이다. - 시집『해에게선 깨진 종소리가 난다』2005년 창비 초특급 태풍이 지나갔습니다. 그러고 나니 .. 2012. 9. 3.
춘방다방 / 노향림 춘방다방 노향림 (1942 ~ ) 단양군 별방리엔 옛날 다방이 있다 함석지붕보다 높이 걸린 춘방다방 낡은 간판 춘방이란 나이 70을 바라본다는 늙은 누이 같은 마당 향기 없이 봄꽃 지듯 깊게 팬 얼굴에서 그래도 진홍 립스틱이 돋보인다. 단강에 뿌옇게 물안개 핀 날 강을 건너지 못한 떠돌이 장돌뱅이들이나 길모퉁이 복덕방 김씨 지팡이 짚고 허리 꼬부라진 동네노인들만 계란 노른자위 띄운 모닝커피 한잔 시켜 놓고 종일 하릴없이 오종종 모여 앉아 있다. 한참 신나게 떠들다가 오가는 사소한 잡담들이 열정과 불꽃도 없이 슬그머니 꺼져 구석의 연탄재처럼 식어서 서걱거린다. 네 평의 홀엔 다탁도 네 개, 탁자 사이로 추억의 '빨간 구두 아가씨'가 아직도 흐르는 곳 행운목과 대만 벤자민이 큰 키로 서서 드나드는 사람들을 .. 2012. 6. 4.
어떤 개인 날 / 노향림 어떤 개인 날 노향림 낡고 외진 첨탑 끝에 빨래가 위험하게 널려 있다. 그곳에도 누가 살고 있는지 깨끗한 햇빛 두어 벌이 집게에 걸려 펄럭인다. 슬픔이 한껏 숨어 있는지 하얀 옥양목 같은 하늘을 더욱 팽팽하게 늘인다. 주교단 회의가 없는 날이면 텅 빈 돌계단 위에 야윈 고무나무들이 무릎 꿇고 황공한 듯 두 손을 모은다. 바람이 간혹 불어오고 내 등 뒤로 비수처럼 들이댄 무섭도록 짙푸른 하늘. - 시집 (창비 1998) 맑게 개인 하늘을 소재로 한 맑은 수채화처럼 아름다운 이 시에서는 '짙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빨래가 널려 펄럭인다. 그 빨래를 '햇빛 두어 벌'로 표현하고 있다. 그 햇빛 두어 벌이 "하얀 옥양목 같은 하늘을 더욱 팽팽히 늘인다"는 표현은 읽는 이의 상상력을 극대화시켜 빛나는 것으로 환치시.. 2009. 11. 5.
노향림 - 마루 마루 마른 걸레로 거실을 닦으며  얇게 묻은 권태와 시간을  박박 문질러 닦으며  미국산 수입 자작나무를 깐  세 평의 근심 걱정을 닦으며  지구 저쪽의 한밤중 누워 잠든  조카딸의 잠도 소리 없이 닦아준다  다 해진 내 영혼의 뒤켠을  소리 없이 닦아주는 이는  누구일까  그런 걸레 하.. 2007. 12.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