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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화가 100인 작품

향토적이고 서정적인 야수파 화가, 이중섭(1916 ~ 1956)의 그림

by 언덕에서 2012. 4. 27.

 

 

 

 

 향토적이고 서정적인 야수파 화가, 이중섭(1916 ~ 1956)의 그림

 

 

 

 

 

 

 

 

 

 

 

 

 

 

 

 

1954, 복사꽃이 핀 마을

 

 

 

 

 

달과 까마귀

 

 

 

 

1953, 노을 앞에서 울부짖는 소

 

 

 

 

 

서귀포의 환상

 

 

 

 

나무와 달과 하얀새

 

 

 

 

1955, 성당 부근

 

  

 

 

   봄의 어린이

 

 

 

 서귀포 섶 섬이 있는 풍경

 

  

 1953, 판잣집 화실
 
 
 

 길 떠나는 가족

 

 

 

 

 

 

 흰 소

 

 

 

 1955, 환희

 

 

 

1954, 투계 

 

 

 

 1953, 물고기와 노는 세 아이

 

 

 

 

 도원  

 

 

 가족과 비둘기(1956) 
 

 

1954, 통영 수원지

 

 

 

1953, 떠받으려는 소

 

 

 

 

 

1954, 피난민과 첫눈
 

 

 

 

 

싸우는 소

 

 

 

 소와 새와 게

 

 

 

 

소와 어린이

 

 

 

 

 

  

 

싸우는 소

 

 

 

적십자병원에서 그린 마지막 그림 

 

 

 

 

이중섭. 서양화가. 호 대향(大鄕). 평남 평양 출생. 오산고보 졸업. 일본 도쿄문화학원 미술과 재학 중이던 1937년 일본의 전위적 미술단체의 자유미협전(自由美協展 제7회)에 출품하여 태양상을 받고, 1939년 자유미술협회의 회원이 되었다.

 1945년 귀국, 원산에서 일본 여자 이남덕(李南德: 본명 山本方子)과 결혼하고 원산사범학교 교원으로 있다가 6ㆍ25전쟁 때 월남하여 종군화가 단원으로 활동하였으며 신사실파 동인으로 참여했다. 부산ㆍ제주ㆍ통영 등지를 전전하며 재료가 없어 담뱃갑 은박지를 화폭 대신 쓰기도 했다. 1952년 부인이 생활고로 두 아들과 함께 도일하자, 부두노동을 하다가 정부의 환도와 함께 상경하여 1955년 미도파화랑에서 단 한 번의 개인전을 가졌다.

 그 후 일본에 보낸 처자에 대한 그리움과, 생활고가 겹쳐 정신분열증세를 나타내기 시작, 1956년 9월 6일 적십자병원에서 간염으로 죽었다. 작풍(作風)은 포비슴(야수파)의 영향을 받았으며 향토적이며 개성적인 것으로서 한국 서구근대화의 화풍을 도입하는 데 공헌했다. 담뱃갑 은박지에 송곳으로 긁어서 그린 선화(線畵)는 표현의 새로운 영역의 탐구로 평가된다.

 화단 활동은 부산 피난 시절 박고석·한묵·이봉상 등과 같이 만든 기조전(其潮展)과 신사실파에 일시 참여한 것 외에 통영·서울·대구에서의 개인전이 기록되고 있다. 살아있는 동안에 많은 인간적인 에피소드와 강한 개성적 작품으로 1970년대에 이르러 갖가지 회고전과 재평가 작업이 활발하게 일어났다.

 1972년 현대화랑에서의 유작전과 화집 발간을 위시하여, 평전의 간행, 일대기를 다룬 영화·연극 등이 상연되었으며, 많은 작가론이 발표되었다.

 그가 추구하였던 작품의 소재는 소·닭·어린이·가족 등이 가장 많다. 불상·풍경 등도 몇 점 전하고 있다. 소재상의 특징은 향토성을 강하게 띠는 요소와 동화적이며 동시에 자전적인 요소이다.

「싸우는 소」·「흰소」(이상 홍익대학교박물관 소장)·「움직이는 흰소」·「소와 어린이」·「황소」(이상 개인 소장)·「투계」(국립현대미술관 소장) 등은 전자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닭과 가족」·「사내와 아이들」·「집떠나는 가족」(이상 개인 소장)과 그밖에 수많은 은지화(담뱃갑 속의 은지에다 송곳으로 눌러 그린 일종의 선각화)들은 후자를 대표하는 작품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