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르네 지라르의 이론으로 본『젊은 베르테르의 슬픔』(Die Leiden des jungen Werthers)
독일 문호 괴테(Goethe,Johann Wolfgang von.1749∼1832)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창조한 여주인공 로테(Lotte)는 18세기 후반 독일 문학에서 가장 대표적인 이상화된 여성상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이 이상화는 단지 아름다움과 미덕을 찬양하는 낭만적 장치에 그치지 않고, 다양한 문학적·사회적 맥락에서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괴테의 로테 이상화는 단순한 문학적 아름다움이 아니라, 낭만주의와 계몽주의 시대를 가로지르는 여성관의 편향성을 보여준다. 그녀는 인간적 갈등이 제거된 채 순수와 미덕의 상징으로만 기능하며, 이는 오늘날의 시각에서 보면 비현실적이며 성 역할 고정 관념을 강화하는 요소로 평가받을 수 있다. 이처럼 이상화된 로테에 대한 비판은 괴테 개인의 문제라기보다, 18세기 말 유럽 사회의 여성관과 감정 문화의 반영으로도 판단할 수 있다. 이 관점에서 로테는 단순한 문학적 인물이 아닌, 한 시대의 심리적 구조물이라고 할 수 있다.
프랑스 철학자 르네 지라르(René Girard, 1923~2015)의 ‘욕망의 삼각 구조(모방 욕망 이론, mimetic desire)’는 문학 속 비극과 갈등의 본질을 해명하는 강력한 이론적 틀이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이 이론의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로 해석될 수 있다.
르네 지라르의 욕망 이론을 요약하자면, ‘욕망은 자율적이지 않다’라는 점이다. 인간은 어떤 대상을 자율적으로 욕망하지 않고, 타인의 욕망을 모방하여 같은 대상을 욕망한다. 이 구조는 다음과 같은 욕망의 삼각형을 이룬다.
주체는 대상 자체보다는 그 대상을 욕망하는 타인(모델)을 따라 그 대상을 욕망하게 된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비극 구조는 지라르의 ‘욕망의 삼각형’ 이론을 따른다.
● 주체(Subject) : 베르테르
● 모델(Model) : 알베르트
● 대상(Object) : 로테
처음에 베르테르는 로테의 미덕과 아름다움에 감동하여 사랑하게 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로테를 가진 알베르트에 대해 질투심과 모방 욕망을 느끼게 된다. 이때 베르테르의 욕망은 순수한 감정이라기보다, 알베르트가 가진 것을 갖고 싶어 하는 욕망의 구조를 띤다.
베르테르의 모방 욕망이 낳은 결과들을 살펴보자.
첫째, 로테를 향한 베르테르의 감정 강화이다. 베르테르는 로테를 처음에는 다정한 친구나 누이 같은 존재로 여기지만, 알베르트의 존재가 명확해질수록 그녀에 대한 집착은 강화된다. 이 감정은 ‘그녀가 좋은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그녀가 이미 누군가의 것이라는 점 때문에 더욱 간절해진다.
둘째, 알베르트에 대한 베르테르의 모순된 태도이다. 베르테르는 알베르트를 존경하면서도 점차 증오하게 된다. 이 감정은 지라르의 이론에 따르면 모방 욕망의 전형적인 현상이다. 모델을 따르다가, 친해지자 경쟁자이자 적으로 여기게 되는 순간이다.
셋째, 베르테르가 선택한 비극적 결말의 발생이다. 베르테르는 알베르트에게 권총을 빌린 뒤 자살한다. 이것은 욕망의 삼각관계가 극단으로 치달아 주체(베르테르)와 모델(알베르트)의 동일화/파괴를 향한 충동으로 수렴되었음을 의미한다. 베르테르는 로테를 얻을 수 없고, 알베르트처럼 될 수도 없으며, 결국 자기 자신을 파괴함으로써 욕망의 고리를 끊으려고 시도한다.
르네 지라르의 이론으로 중편소설『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해석하자면, 모방 욕망의 전형적인 비극이다. 르네 지라르의 이론에 따르면 이 작품의 비극은 로테를 향한 감정 그 자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알베르트라는 모델을 모방하며 형성된 욕망의 구조에서 발생한 비극이다. 즉, 베르테르는 로테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알베르트)가 소유한 로테를 욕망하는 형태며, 이에 따라 ‘우정 → 질투 → 절망 → 자기파괴’로 이어지는 전형적 삼각 구조의 비극을 겪는다.
♣
르네 지라르의 ‘모방 욕망’ 이론을 더 확장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비극성과 당대 사회의 감정 문화, 그리고 괴테가 이 작품을 통해 은밀히 드러낸 비판적 통찰까지도 함께 분석해 보면 작품 전체를 다음과 같이 해석할 수 있다.
첫째, 모방 욕망이 만드는 감정 문화의 위선이다. 베르테르는 순수하고 진실한 사랑의 화신처럼 보이지만, 지라르의 관점에서 보면 그의 욕망은 순수하지 않다. 그는 끊임없이 자신이 느끼는 비도덕적 감정(유부녀를 사랑하는)을 스스로 정당화하고, 로테와의 사랑을 숭고한 비극으로 미화한다. 하지만 그 속에는 자기 기만적 위선이 숨어 있다. 베르테르는 로테를 진정으로 이해하지도, 존중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그녀의 입장이나 감정을 고려하지 않고, 자신의 욕망만을 투사한다. 베르테르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타인의 관계를 파괴하려는 충동을 보유하고 있다. 그 결과, 로테의 남편인 알베르트를 무시하고, 그의 아내인 로테와 단둘이 있는 시간을 강요하곤 한다. 또한 자살이라는 행위를 ‘사랑의 순교’로 포장한다. 이후 자신의 욕망이 실현되지 않자, 이를 비극으로 미화하며 자기파괴로 귀결된다.
지라르는 이렇게 해석할 듯하다. ‘베르테르는 자신을 ‘감정의 순결한 주체’로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타인의 욕망을 모방하여 파괴적인 방향으로 흐르는 존재일 뿐이다….‘
둘째, 지라르적 갈등으로 희생양 메커니즘의 전조를 의미한다. 지라르는 인간 공동체가 갈등과 폭력을 피하고자 ‘희생양 메커니즘’을 동원한다고 주장한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는 베르테르가 그런 상징적 희생양으로 기능한다. 사회적 질서(알베르트와 로테의 안정된 약혼 관계)를 교란하는 인물은 베르테르이다. 공동체(로테, 알베르트, 로테의 가족)는 그로부터 점차 거리 두기를 하게 된다. 그 결과, 베르테르는 더 이상 사회적으로 포옹될 수 없는 존재로 자기희생을 통해 공동체로부터 퇴장한다. 이러한 구조는 고전 희생양 신화에서 볼 수 있는 전형을 따른다. 그는 사회적 갈등의 근원으로 낙인찍히고, 제거됨으로써 공동체는 다시 평온을 되찾는다.
셋째, 괴테의 비판 의식으로 감정주의에 대한 반어적 풍자를 지적할 수 있다. 많은 독자는 베르테르를 감정의 화신으로 이해하지만, 지라르의 이론을 통해 보면 괴테는 이 인물을 통해 당대 감정주의 문화의 위선을 비판한 것으로도 읽을 수 있다. 베르테르는 루소적 감정주의의 전형적인 모방자여서 자연을 예찬하고, 감정의 진실성을 강조하며, 이성과 제도에 반감을 보인다. 그러나 그의 감정은 타인의 욕망을 모방한 것이며, 진실한 사랑이라기보다 자기애와 자기연민의 집합체다. 따라서 괴테는 ‘젊은이의 열정’을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모방적 감정이 어떤 비극을 낳는지를 철저히 해부하며, 감정이라는 이름의 폭력을 비판하고 있다.
상기의 논의를 요약하자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감정의 비극이 아니라 모방 욕망의 비극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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