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의 원한
(전략) 니체는 그리스도교의 평등사상이나 그것을 계승하는 민주주의 및 사회주의 사상을 모두 원한의 산물로 여겼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원한을 가장 극렬하게 품고 당시 지배적인 지위에 있던 고위층 유대인과 로마인들에게 복수하는 교묘한 사상적 수단을 발명한 사람이 바울이라고 보았습니다.
특히 바울은 자신의 원한을 갚기 위한 수단으로 예수라는 인물을 이용했으며, 예수가 원래 상징으로 사용했던 '하느님의 나라'나 '신의 아들'이라는 개념을 문자 그대로의 조악한 의미로 사용했습니다. 문자 그대로의 의미에서 신의 독생자인 예수를 믿는 자들은 죽은 후 하느님의 나라인 천국에 갈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은 모두 지옥에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으니까요.
따라서 바울은 니체와 달리 예수가 살아생전에 어떤 삶의 모습을 보였냐가 아니라 그가 신의 아들로서 무한한 권능을 갖는다는 사실을 강조했으며, 예수를 인간이 아닌 신이자 구세주로 격상시켰습니다.
이와 함께 바울은 예수의 부활을 날조해냈고, 모든 사람의 관심을 이 현세에서 어떻게 잘살 것인가라는 문제에서 최후의 심판에서 자신이 천국으로 갈 수 있는가 아니면 지옥으로 떨어질 것인가라는 문제로 향하게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그리스도교는 사랑을 실천하는 종교가 아니라 믿음의 종교, 죽어서 천국을 갈구하는 종교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이와 함께 모든 자연적인 것은 악하고 부정한 것으로 보게 되며 신체와 성욕을 악마시하게 됩니다. (중략)
니체는 바울이 사용한 영혼불멸이나 최후의 심판과 같은 개념들은 당시의 지배자들에 대한 원한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자신의 권력욕을 채우기 위한 것들이라고 보았습니다. 바울은 그러한 개념들을 무기로 하여 대중을 마음대로 지배하고 가축으로 길들이려고 했습니다.
즉, 사람들이 최후의 심판에서 지옥에 떨어지지 않고 천국에서 영원히 잘살기 위해서는 바울을 비롯하여 신을 대신하는 자들인 성직자들의 지배에 복종해야만 한다는 식으로 사람들을 협박했다는 것입니다. 사실 죽어서 천국에 가기 위해 교회에 다니고 성직자들의 말을 하느님의 말로 생각하면서 떠드는 사람들은 지금도 여전히 많지요.
- 박찬국「사는 게 힘드냐고 니체가 물었다」(21세기북스) 127~13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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