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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한무숙 단편소설 『감정이 있는 심연(深淵)』

by 언덕에서 2024. 8. 30.

 

 

한무숙 단편소설 『감정이 있는 심연(深淵)』

 

한무숙(韓戊淑. 1918∼1993)의 단편소설로 1957년 [문학예술] 1ㆍ2 합병호에 발표되었다. 같은 해 발간된 두 번째 창작집의 표제 작품이기도 하다. 당시 문단의 충격을 던진 문제작으로 평가되었다. <유수암(流水庵)>, <어둠 속에 갇힌 불꽃들>과 함께 그의 대표작 중의 하나다. 이 작품은 인간의 자유사상을 고취하는 주제를 다룬 작품으로 평가되어 김성한(金聲翰)의 <귀환(歸還)>과 함께 제5회 [자유문학상]을 수상했다.

 단편소설 『감정이 있는 심연(深淵)』은 심연(深淵)과도 같은 인간 심리의 저변에 꿈틀대고 있는 콤플렉스를 다뤘다. 사회의 하층에서 자란 한 남자가 평생의 원(願)이었던 비자를 받아 들고 죄악 망상증에 걸려 정신병원에 입원하고 있는 애인을 찾아갔다가 되돌아 나오는 시간 사이에 일어난 그의 내면의 의식의 흐름을 추적해 간 작품으로, 심층 심리를 묘사한 작품으로써 시선을 끌었다. 오영수(吳永壽)의 <갯마을>, 전광용(全光鏞)의 <흑산도>, 강신재(姜信哉)의 <절벽> 등과 함께 1950년대를 대표하는 순수소설로 분류된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어린 나이에 부모를 여의고 지방 대지주의 마름을 맡아보는 당숙 밑에서 성장한 나는 신분의 콤플렉스를 간직한 20대 중반의 청년으로 미국 유학을 준비하고 있다.

 대학에서 미술을 공부하는 전아(典娥)라는 여성과 함께 유학을 떠나려고 했으나 일련의 사건이 벌어지고 만다. 전아는 당숙이 일을 보아주던 대지주의 손녀로 병적일 정도로 심약한 기질을 타고난 여성이다. 그녀의 연약함은 어릴 때부터 완고한 집안 분위기와 비정상적인 환경에서 너무 큰 중압감을 받으며 자란 탓이 크다. 과부이자 정신이상자인 전아의 모친을 비롯해 역시 과부로 친정에서 지내는 큰고모와 뛰어난 미인으로 조카를 돌보며 혼자 사는 작은고모 등 젊은 여자들만이 모여 사는 이 집은 죄의식에 민감한 기독교 집안이다.

 그러나 이 집안의 이면에는 부끄러운 추문이 많이 전해져 와 어린 시절부터 전아는 정신적 충격을 받으며 자란다. 특히 작은고모가 부정하게 잉태한 아이를 없애려다가 철장 신세를 진 사건은 이 집안 최대의 추문이자 어린 전아에 지울 수 없는 정신적 충격으로 각인된다. 당시 큰고모는 죄악의 심판을 보여준다고 어린 조카를 법정에 데리고 갔는데, 그곳에서 죄수복 차림의 작은고모를 본 전아는 정신을 잃고 만다. 그 후 작은고모는 죗값을 치르고 나와 모친을 일찍 여읜 전아를 돌보는 일에만 전념한다. 이후 전아는 말수가 적고 고집스러운 소녀로 성장한다.

 그림에 재능이 있던 전아는 예술대학에 진학하고, 그녀의 집안에 자주 드나들던 나와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 그러나 그녀의 가슴 깊은 곳에는 이성(異性)과의 본능적 사랑에 대한 깊은 죄의식이 자리하고 있었다. 먼저 미국행 비자를 받게 된 전아에 열등감 비슷한 것을 느끼던 나는 말다툼을 한 후,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그녀와 함께 하숙집으로 가서 육체적 사랑을 나눈다. 그날 저녁 나와 함께 차를 타고 있던 전아는 거리에서 여죄수를 호송해 가는 차를 보고 충격을 받아 비명을 지르며 정신을 잃는다. 그날 이후로 죄악망상에서 헤어나지 못한 그녀는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그 후 어렵게 미국행 비자를 발급받은 나는 병원으로 그녀를 찾아가지만 의사로부터 면회하지 않는 것이 좋을 거라는 암시를 받는다. 나는 병원문을 나서며 신분적 콤플렉스와 허영심에서 집착했던 미국행 비자도 모두 부질없음을 깨닫는다.

 

 

 이 소설은 인간의 심층 심리를 여성작가 특유의 섬세한 필치로 묘사한 이 작품은 당시의 문단에 신선한 충격을 던진 문제작이다. 인간 삶의 본질적인 문제에 관심을 기울인 한무숙의 중기 작품으로, 인습과 환경에 의해 강요된 정신적 상처로 고통받는 인간의 내면적 갈등과 순도 높은 감수성을 차갑고 신비스러운 분위기로 형상화해 낸 점이 주목된다.

 또한 이 작품은 인간 내면에 있는 콤플렉스 현상을 다룬 심리소설이다. 대체로 어둡고 차갑고 사색적인 어조로 한 집안의 분위기와 죄와 사랑의 의미를 서술하고 있는 이 작품은 ‘비자’라는 일종의 허영과 가식의 표상이 힘없이 무너지는 것을 통해 그것들의 본질을 암시하고 있다. 전아한 문체로 삶의 아픔이나 무의미성을 그린 작가의 작품세계가 잘 드러난 작품이다.

 주인공 전아의 섬약한 기질은 병적일 정도이지만 그로 인해서 발동되는 감수성은 순도가 짙다. 작품 전체를 통해 말수가 적고 차갑고 신비한 분위기가 일렁이는 그 뒤쪽과 또는 깊이에 숨겨져 암투하는 인간의 마음들을 피부로 느끼게 한다. 그리고 섬약한 젊은 전아가 쓰러지지만, 그 쓰러짐은 인습의 억압과 사랑의 가치 사이의 갈등이었으며, 이 아픔을 통해 '비자'라는 일종의 허영 표상이 힘없이 스러져 버린다는 점에 의미의 짙은 여운이 있다.

 

 이 소설에서 두 번째 충격 속에 이 소설의 매듭이 있다. 전아의 사랑과 사랑의 의미와 허무와 환경이 준 상처로 입는 재차의 타격과 그리고 무엇보다도 미국 유학길의 비자라는 것이 무용(無用)의 되고 만다. 전아는 정신병원에 입원했으므로 그것이 쓸데없어졌고, 청년도 전아의 좌절을 보고 나서, 빈천한 가정 출신으로서의 콤플렉스와 허영이 필요로 해서 얻어냈던 그 비자 역시 쓸데없는 것으로 여긴다. 그리고 사랑하는 전아의 좌절로 인해 자신이 전에 전아에 보여주고 싶었던 어떤 상승한 신분의 표시격인 비자 또한 헛된 것이 되고 만다.

 작품 전체를 통해 말수가 적고, 차갑고, 신비한 분위기가 일렁이는 그 뒤쪽과 또는 깊이에 숨겨져 암투하는 인간의 마음들을 피부로 느끼게 한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비자를 얻은 후 이미 쓸모도 없어진 것을 깨달으면서도 절망하지는 않는다. 좌절당하기는 하지만, 그들의 앞엔 빛을 향한 계단이 놓여 있기 때문이다. 한무숙의 세계가 니힐리즘이 배면(背面)에 짙게 깔려 있으면서도 절박한 몸부림이 없는 것은 그런 막연한 가능성에 대한 기대 때문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