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진건 단편소설 『희생화(犧牲花)』

현진건(玄鎭健, 1900~1943)이 지은 단편소설로 1920년 11월 [개벽](5호)에 발표되었다. 작가의 처녀작으로 퍽 감상적이고 미숙한 습작 정도의 작품이다. 현진건의 초기 작품에서는 순진한 청춘남녀 학생들의 애정심리들이 즐겨 다루어졌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소재로 인한 미숙성, 즉 상투성이 문제가 아니라 그 내용이 가지는 의식과 그 의식을 드러내는 표현기법에 문제가 있다.
현진건은 1920년 11월 [개벽]에 「희생화」를 발표하면서 문단에 등단하였다. 처녀작「희생화」는 황석우에게서 혹평을 받았으나, 1921년 빈곤 속에서 나타나는 아내의 따뜻한 애정을 그린 <빈처>와 암담한 현실을 탈출하는 길이 술밖에 없음을 보여준 <술 권하는 사회>를 발표함으로써 소설가로서 인정을 받았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목사의 딸로 태어난 S는 예쁘고 똑똑한 학생이다. 어머니와 남동생과 함께 아버지의 유산으로 살아간다. 같은 학교의 미남이며 똑똑한 대구 양반가 출신의 K를 만나게 되고 서로 사랑하게 된다.
그러나 둘은 K집이 반대할 것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지만 S의 어머니를 만나게 되고 S의 집에서는 어머니와 동생에게 인정을 받게 된다. K의 행동거지가 이상함을 안 오촌당숙은 고향에 계신 할아버지를 올라오시게 하여 장가를 가라고 한다.
그때 누나의 편지를 들고 K가 묵고 있던 오촌당숙의 집에 갔던 나는 그 말을 듣게 되고 결국 누나에게 말하게 된다. 누나에게 이 말을 할 때 K는 누나를 찾아와 결혼을 안 하기 위해서 달아나기로 한 결심을 말하고 누나는 부모, 형제를 버리지 말라고 하며 자신은 생각하지 말고 행복하게 살라고 한다. K는 마지막 인사를 하고 떠나고, 누나는 그 뒤 시름시름 앓다가 죽고 만다.

이 작품에서는 신식교육을 받는 젊은 남녀 K와 S는 서로 열렬히 사랑하였으나 K의 봉건적 가문에 의하여 끝내 이루어지지 못하고, K의 도피와 S의 죽음으로 끝을 맺는다. 따라서, 이 작품이 말하는 것은 자유연애를 배척하는 ‘썩은 관습’이다. 즉, “그러나 우리가 오늘날 이렇게 된 것이 당신의 잘못도 아니고 저의 잘못도 아니야요. 그 묵고 썩은 관습이 우리를 이렇게 만든 것입니다.” 이 말은 그들이 헤어질 때 S가 하는 말로서 사실상 이 소설의 핵심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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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소설의 대부분은 상투적 표현의 남발 속에서 자유연애에 대한 감상적 묘사가 차지하고 있다. K와 S는 감상적 도피자와 감상적 '희생'화에 불과하였음을 보여준다. 이 작품은 무엇보다도 사회제도에 대응하는 작가의식의 나약함이 사건 자체를 상투적이고 관념적이며 이른바 신파조로 이끌고 갔으며, 감상적 기법 또한 그것을 더욱 미숙하게 만들고 말았다.
따라서, 이 작품 속에서 나레이터인 2학년 학생인 ‘나’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보기 때문에 실제 사실의 기록도 못 되고 허위와 과장이 강한 감상문이라는 혹평을 받기도 하였다. 작가가 의도하는 참된 사랑이 우스꽝스러운 영탄조의 표현에 실려 무의미하게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이 작품이 가지는 사건 자체의 진행, 즉 연애, 부모의 반대, 이별, 죽음이라는 사건진행은 현실성보다는 도식적인 신파 형태를 취함으로써 그 변화가 자연스럽게 이해되지 못한다는 점에서 ☞ 황석우(黃錫禹)는 ‘일개 무명의 한문’이라며 ‘소설이 아니다.’라고까지 혹평하였다.
☞ 황석우(黃錫禹.1895∼1959) : 시인. 호 상아탑). 서울 출생. 일본 와세다대학 정경과 중퇴. 재학 중 일본의 상징주의 시인 미키 로후(三木露風)의 영향을 받아 시를 쓰기 시작, 귀국 후 김억ㆍ오상순 등과 [폐허] 동인이 되어 <애인의 인도(引渡)> <벽모(碧毛)의 묘(猫)> 등을 발표하여 문단에 데뷔하였다. [장미촌] [조선시단] 등의 시지(詩誌)를 주재했고, [중외일보]ㆍ[조선일보]의 기자로도 활약했다.
시의 주조(主調)는 퇴폐적인 경향이 강했고 1920년대 초기에는 오상순ㆍ홍사용ㆍ변영로ㆍ주요한 등과 더불어 선구적 시인으로 활약했으나 곧 시단에서 은퇴하였다. 1958년부터 다시 시를 발표했으나 반응을 얻지 못했고, 만년에는 국민대학의 교무처장을 지냈다. 시집으로는 29년에 간행한 <자연송>이 있다. 난해한 상징시를 써서 ‘상징주의 시 운동의 기수’로 불렸다. 또한, 1920년대 중반에는 동인지 [장미촌], 시잡지 [조선시단]을 간행하는 등 시에 대한 열의가 대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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