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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김동인 단편소설 『태형(笞刑)』

by 언덕에서 2024. 8. 26.

 

김동인 단편소설 『태형(笞刑)』

 

김동인(金東仁. 1900-1951)의 단편소설로 1922년 12월부터 1923년 1월까지 [동명]에 3회에 걸쳐 연재된 작품이다. ‘옥중기의 일절’이라는 부제처럼 3ㆍ1 운동 때의 옥중기(獄中記)다. 1919년 동생의 부탁으로 일제에 대한 격문을 쓰고 감옥살이했던 실제 경험이 밑바탕이 되어 환경에 영향을 받는 인간의 모습을 그렸다.

 김동인 소설의 표현상의 특징으로 세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 문장이 간략하다. 군더더기의 수사나 화려한 문체가 보이지 않는다. 둘째, 구성이 평면적이다. 이는 주로 그의 소설이 단편에 보다 강점을 지니는 이유가 된다. 셋째, 충격적인 수사의 내용이다. 당대의 문장으로 보면, 참신성과 독창성을 지닌 국면이다. 김동인을 직선적인 작가라고 한 이도 있는데, 이 '직선적인 작가'라는 말은 김동인의 정신적, 문학적 기질과 결부된 것이지만, 표현상의 조건만 가지고 말할 때에는 문장의 간략성과 구성의 평면성을 의미한다.

 이 소설은 김동인의 일반적 경향인 현실을 배제한 극단적인 미의 추구에서 비껴나 자신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엿보였다. 그러나 결국 개인의 비리에 결부시켜 김동인다운 작품의 하나가 되어 버렸다.

소설가 김동인 (金東仁. 1900-1951 )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3ㆍ1운동으로 많은 사람이 옥에 갇히게 되자 감방마다 미결수들이 꽉 차게 되었다. 잠도 사람들을 삼등분해 돌아가며 잘 형편이고 더위 또한 견디기 어려웠으며 종기, 옴, 탁한 공기 등 최악의 조건이었다. 죽음보다도 더한 이 상황에서 일초만이라도 벗어나고자 하는 것이 모두의 소원이었다.

 어느 날 70노인이 재판을 받고 돌아 왔다. 90대의 태형 노인은 나이가 있어 맞으면 죽을 것 같아 공소를 했다고 하였다. 한 사람이라도 나가면 나머지 사람들은 넓은 공간에서 살 수 있으므로 나는 3ㆍ1운동 때 총 맞아 자식이 둘씩이나 죽었는데 더 살아 무엇하고 다른 사람을 위해 취하 하라고 하며 다른 사람들에게도 말을 해 그들의 동조도 얻었다.

 저녁때 노인은 취하하겠다고 해 간수를 불러 이야기를 전했다. 간수는 영감을 데려 갔고 방안 사람들은 얼굴에 넓어졌다는 기쁨의 빛이 있었다. 목욕을 하는 날이어서 모두들 즐거움에 젖어 이십초 동안의 행복을 느끼고 감방으로 돌아 왔다. 매를 맞더라도 좀 더 할 걸 하는 이도 있었다.

 몇 시간 후 더위로 무감각해진 우리들의 귀를 지르는 소리가 들렸다. 첫째 사람은 서른 대를 맞고 앓는 소리를 들었다. 두 번째 사람은 한대한대 때릴 때마다 기운 없는 외마디 소리를 질렀다.

 나는 누구인지 알 것 같았다. 어젯밤 방에서 끌려나가며 노인이 한 말이 떠올랐다.

 “칠십 줄에 든 늙은이가 태 맞고 살길 바라겠소. 난 아무케 되든 노형들이나...”

하며 말을 맺지 못했다. 영감은 초연하였다. 내어쫓은 장본인인 나는 머리가 숙여졌고, 나오는 눈물을 막으려 눈을 힘껏 감았다.

 

 이 작품은 훗날 발표하는 <감자>와 함께 환경이 인간의 윤리 의식을 박탈해 가는 과정에 대한 관찰의 기록이다. 감옥이라는 폐쇄된 공간 속에서 극심한 고통을 감수하여 살아가는 죄수들을 설정해 놓고, 그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갈등을 통해 인간의 이기심과 양심의 문제를 다룬 작품이다. 즉, 환경 결정론적 인간의 본성을 그린 작품이다. 다른 사람의 죽고 사는 문제보다는 자신의 조그만 편함에 더 관심을 가지는 인간들을 설정하여 인간의 도덕성에 관한 질문을 제출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극한 상황에서 인간이 얼마나 비인간적이고 이기적일 수 있는 가를 우리에게 고발하는 사실주의 경향의 소설이다. 물론,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 나는 고개를 숙임으로써 자신의 행위에 대하여 부끄러움을 나타낸다. 이는 작가의 '환경 결정론'에 대한 믿음이 깨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한편, 이 작품은 다른 시각에서 본다면, 이 감옥 안에 들어와 있는 사람들은 독립 만세를 부르다가 잡혀온 사람들이어서 작가가 일제에 대하여 마음 속으로나마 항거한 흔적을 찾게 한다.

 

 

 이 작품은 감옥이라는 극한 상황 속에서 생겨나는 갈등과 사건을 중점적으로 다루어 나가고 있다. 정상적인 인간의 생활 모습은 전혀 나타날 수도 없고 허용되지도 않는 공간에 놓인 인간들의 언행을 통해 인간성의 부정적인 한 측면을 명료하게 부각시키고 있다.

 노인이 태형을 받는 마지막 장면에 이르기까지 보여준 감옥의 극한적인 상황에 대한 묘사라든가, 고통스러운 상태에서 오는 갈등의 표현 등은 말하자면 노인을 태형으로 몰아낼 수밖에 없었던 전말을 밝히기 위한, 즉 사건 전개에 논리적 근거를 제공하기 위한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노인이 받게되는 태형과 감옥의 극한적 상황이 필연적인 인과 관계에 놓여있음을 보여준다.

 이 작품은 모든 서술 과정이 하나의 사건으로 집약되는 산뜻하고 짜임새 있는 구성을 보여주기 때문에 주제 의식이 선명하게 부각된다. 즉, 이 작품은 인간이 극단적인 상황에 놓이게 될 때 보여줄 수 있는, 추한 이기심과 도덕이나 양심을 포기해 버리고 오로지 원시적이고 충동적인 욕구에 따라 사고하고 행동하는 인간의 부정적 측면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다시 말해서, 인간이 극한적 상황에 놓이게 될 때 그 심성이 얼마든지 왜소해지고, 추해질 수 있다는 인간의 비극적 진실을 진단해 본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