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의 어원
이야기는 줄여서 ‘얘기’로도 표기할 수 있다. 이야기라는 뜻에는 크게 옛날의 어떤 사건에 살과 피를 붙여 말하는, 할머니가 슬슬 등을 쓸어 만져주면서 들려주던 그 이야기가 있고, 그냥 하는 말을 이르는, 두 가지 뜻이 있다. 어떤 것이건 표기는 이야기다. 그렇다고는 해도 실제의 쓰임은 좀 더 세분되는 것이어서,
“어째 이상한 얘기가 돌더군!”
하면 ‘소문’이란 뜻으로도 되고,
“당신 얘기는 그렇다 해도 내 얘기 좀 들어보소.”
하면 ‘사정’이란 뜻이 되고,
“얘기가 어째 묘하게 돌아가는군!”
라면 ‘정세’라는 뜻으로 되는 등등…….
이야기 좋아하면 가난하게 산다고 했다, 옛날이야기를 이름이다.
‘옛날 오누이가 살았는데’, ‘옛날 늙은 호랑이가 살았는데’, '옛날 포수가 살았는데'로 시작되는 할머니의 그 밑도 끝도 없는, 자꾸만 되풀이되는 이야기를 못 듣는 현대의 어린이는, 그만큼 정감의 세계에서 삭막한 것이라고 할 것인지도 모른다.
‘이야기’의 중세어는 ‘니야기’였다. 그러니, ‘니’와 ‘야기’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가 있다. 우리의 ‘니’는, 현대어인 ‘이(齒)’인 채, 그 발음되는 위치에서 따질 때, 가령 영어의 트스(tooth)', 프랑스어의 ‘뎅(dent)', 독일어의 ’짜안(zahn)', 혹은 가까운 일본의 ‘하’ 같은 말보다 훨씬 더 ‘이’ 임을 잘 나타낸다 싶어지는 마음인데, 그 중세어인 ‘니’는 ‘이’보다 더 이를 잘 나타내는 말 아닌가 싶다. ‘니’ 혹은 ‘이’ 할 때 입이 이빨의 그 하얀 치열을 드러내기 위해 발음되는 듯하기 때문이다.
이 ‘니’에서 ‘이야기’에 관계되는 말들이 태어났으니, ‘닑다’ㆍ‘닐우다’(현대어의 읽다)ㆍ‘닐다’ㆍ‘닐오다’(현대어 ‘말하다’ㆍ‘이야기하다’ㆍ‘이르다’) 따위가 그러한 말들이다. ‘니’와 관계 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의 이름도 ‘닐홈(닐옴)’ → ‘일홈’을 거쳐서 된 말이라는 걸 생각할 때 이름도 이르는 것, 즉 남들이 그렇게 말함을 나타냄이었다.
이른바 머리소리법칙(두음법칙) 따라 ‘니’ 아닌 ‘이’가 현대의 표준말이라고는 해도, ‘톱니’ㆍ‘어금니’ㆍ‘송곳니’ㆍ‘아랫니’ 할 때의 표기는 여전히 ‘니’ 쪽이니, 그걸로써 지난날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할 것인지.
‘이야기’는 그 ‘니’와 ‘악’이 합쳐진 말이다. 그러면 ‘악’은 무엇일까? ‘악’은 ‘억’과도 같다. 어떤 구멍이나 공간의 위치를 알려주는 발가지(접미어)이다. ‘앙’이나 ‘엉’ 따위도 역시 그러했다. ‘부엌’은 ‘불’과 ‘억’이 합쳐진 말이다. 그러니 '불이 있는 공간'이다. 그것이 '부엌'이다. '뜨락' 역시 '뜰'과 '악'이. '주먹'은 '줌'과 '억'이 합쳐진 말이다. '뜰이 있는 공간‘이며, '줌'이 이루는 공간이다. 결국 '니악'은 ’니가 있는 공간‘, 그 공간에서 태어나는 것을 이름이다. 그것이 ’니악‘ → ’니약‘ → ’니야기‘로 됨은 발음상의 문제일 뿐이다.
어떤 자리에서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을 때, 그것은 ‘니’의 ‘아기’ 아니겠느냐고 말한 사람도 있었다. 곧 ‘니’에서 태어나는 아기라는 뜻으로 해석하자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굳이 그런 식으로 생각한다고 해도, 그 아기(兒)까지가 사실은, 어떤 공간(구멍)에서 태어난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러나저러나 마찬가지 결론에 이를 것도 같다.
- 박갑천 : <어원별곡(語源別曲)>(197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