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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총각김치’의 어원

by 언덕에서 2023. 12. 29.

 

‘총각김치’의 어원

 

 

 한때 인기 절정에 있던 가수 현미가 한창때 허스키 보이스로 불러댄, 조금쯤 노란 인상을 풍기는 노래가 있었다.

 “……달콤한 총각김치 새큼한 그 맛…….”

 열무김치도 아니다. 김장 때 보노라면, 서울 사람들은 이 총각김치를 담근다. 노래 말마따나 새콤한 맛도 맛이려니와 이빨에 안기는 딴딴한 감촉이 또한 특별한 미각을 곁들여 준다.

 어느 익살꾸러기가 이런 말을 하면서 웃었다.

 “총각감치가 있으면, 처녀김치도 있을 만하지 않은가?”

 그러나 '처녀김치’라는 것은 물론 없다. 그러나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에게 이렇게 대꾸해 줄 수밖에 없다.

 “그래, ‘죄(罪)스럽다’라는 말 있대서 ‘벌(罰)스럽다’는 말 반드시 있던가? 아니면, 좌천(左遷)이라는 말이 있대서 ‘우천(右遷)’이란 말 반드시 있던가?”

 그렇게 억세게 쓰는 말이고, 또 지금 서울에 사는 사람치고 총각김치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도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전에는 올라있지도 않았다. 역시 서울사람들이 속어로 쓰는 말이었던가?

 그런데 그와 같이 생긴 무를 달리 또 ‘달랑무’라고도 한다. 그것도 ‘총각무’라는 못지않게 노란 냄새가 풍기는 표현으로 되고 있다. 둥그스름한 귀가 예쁘고 쫑긋하게 솟아있는 미역을 ‘총각미역’이라고 미역의 고장에서는 말하는 까닭에 이 총각김치와는 적어도 그 말을 만든 심리적 과정에서는 같은 출발을 보여주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총각김치’가 아니라, 사실은 ‘청각김치’를 그렇게 잘못 쓰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총각김치에는 ‘청각’이 들어가야만 제 맛이 나는 것이어서 그 때문에 '청각김치'라 했던 것인데, 장난기 섞인 아낙네들의 노란 마음이 섞여 들어가서 '총각김치'라 하게 되었다는 탁론(卓論)을 편다. 그러나 그 탁론에도 불구하고 이 말 역시 사전에는 올라있지 않다.

 청각은 김장 때면 영념으로는 어디에고 끼어드는 홍조류(紅藻類)에 속하는 해초이다, 모양이 사슴뿔 같이 생겼대서 녹각채라고도 하는데, 특별한 맛이 나는 것은 아니나, 단조로운 그 맛을 찾아 양념으로 뿐 아니라, 그 자체만 가지고 무쳐 먹도 한다. 그래서 '청각김치'란다면 이를 테면 배추김치에라도 해서 그 청각이 안 들어가는 것도 아닌데, 하필 그 무김치에만 ‘청각김치’하는 이름이 붙어야 하느냐는 반문(反問)도 나오게는 되어 있다.

 총각김치는 역시 그 생긴 무의 모습 때문에 생겨난 아름 아니었겠느냐 하는 해석이, 그래서 조금쯤은 유력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게 된다. 남편은 바람을 피우고, 아니더라도 이미 경도(硬度)를 잃은 남편을 둔 처지의 여인네들이 무언가 욕구불만에 차 있는 가운데 이 무김치를 담그려고 씻으면서 매만지는 사이에 엉뚱하게가 아니라, 실감나게 회억(回憶)되는 짜릿한 느낌이 있었고, 그래서 이름 붙여 달래어 본 ‘총각김치’ 아니었겠느냐 하는 복사꽃빛 해석은 , 차라리 그것을 정설로 해야 할 만큼 그럴듯해진다.

 아닌 게 아니라, 총각김치의 거리가 되고 있는 그 무를 보고 있노라면, 그것이 꼭 고만고만하게 생겨 있으면서도 끝이 뭉툭하게 되어 있는 것이 또 특성이라면 특징이다. 처녀 허벅지만큼 큰 무를 재배해 낼 만큼 발달된 육종학인데도, 이 무는 꼭 고만고만한 크기인 것이 여간 색정적인 것이 아니다.

 총각김치, 담글 때뿐 아니라, 씹어 먹으면서도 무언가의 불만을 무산시켜 보는 여인네들도 있으렷다.

 

 

- 박갑천 : <어원수필(語源隨筆)>(197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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