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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철학서

이븐 바투타의 세 대륙 주유기 『이븐 바투타 여행기』

by 언덕에서 2017. 1. 17.





이븐 바투타의 세 대륙 주유기 『이븐 바투타 여행기』







이븐 바투타는 1304년에 출생하였고 지금의 북아프리카 모로코 탕헤르(Tanger)가 태어난 곳이며 베르베르족으로 이슬람 순니파에 속했다. 그가 살았던 시대는 마린 왕조였으며 페스(Fez)가 수도였다. 그의 세 대륙(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주유기는 상세한 이야기를 남겨 <동방 견문록(1298년 이후에 출간되었을 것으로 추정)>을 지은 마르코 폴로와 비교되고 있다. 1325년 6월, 메카 순례를 목적으로 단신으로 고향을 떠나 북아프리카 · 아라비아 · 동아프리카 · 중동 · 발칸 · 중앙아시아 · 인도 · 동남아시아 · 중국을 여행하고 1350년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 이듬해에 에스파냐 그라나다에 갔다가 1352년부터 1353년에 걸쳐 사하라 사막을 지나 니제르 강 중류 지역의 흑인 왕국을 방문하였다.

 마르코 폴로보다는 반 세기 가량 늦었지만 그가 구술한 <도시들의 진기함과 여로의 견문에 흥미를 느끼는 사람들에게 주는 선물>이라는 여행기는 당시의 인도 및 중국과 이슬람 세계를 아는 데 사료적 가치가 크다.








 바투타는 법학을 공부하여 카디라는 신분을 가지고 있었다. 1325년 이븐 바투타가 22살이 되던해 이슬람 성지를 순례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고향을 떠나 목적지인 성도(聖都) 메카(Mecca)를 향해 동쪽으로 여행을 시작했다. 그의 순례여행은 튀니스(Tunis)를 거쳐 이집트 알렉산드리아(Alexandria)로 갔으며, 낙타 대상들과 함께 시리아 다마스쿠스(Damascus)를 지나 1330년 경에 메카에 도착했다. 그의 순례여행은 계속되어 1331년에는 메카를 출발하여 홍해를 지났으며 아프리카 대륙 동쪽 해안을 따라 남쪽으로 향했다. 이 여행에서는 육로대신 배를 이용했다. 예멘(Yemen), 모가디슈(Mogadishu), 뭄바사(Mombasa)에 정박하였고 다시 북상하여 오만(Oman)을 거쳐 호르무즈(Hormuz) 해협을 통해메카로 돌아왔다. 이븐 바투타는 두번의 성지순례 여행을 통해서 그가 계획했던 순례여행을 마쳤으나, 인도의 이슬람 성지를 방문하기 위해 동방으로 향했다.




 


 인도 델리 술탄국을 방문하여 인도의 과디(법관)로 있었고 약 9년을 머물렀다. 술탄의 사절단의 일원이 되어 인도 남부지역을 순례하였는데 힌두교 죄수들의 처참한 죽음과 공중부양하는 요기 등 놀라운 풍물을 그의 여행기에 기록했다. 1345년 술탄의 요청으로 중국 왕을 방문하는 사절단의 일행이 되었으며 풍랑을 만나 몰디브 제도에서도 과디(법관)으로 머물렀으며 4명의 아내를 두었다.

 정크선을 타고 동쪽 바다로 항해했다. 이교도의 국가라고 언급한 중국을 방문하는 중에 여성들이 통치하는 타왈리시라는 소국(小國)의 이야기를 기록했다. 그리고 수마트라 술탄의 도움으로 취안저우[泉州]를 거쳐 베이징[北京]에 이르렀고 중국은 음식이 매우 발달된 나라라고 기록했다. 1349년 바그다드· 메카· 이집트를 거쳐 모로코로 돌아갔다고 기록했지만, 그가 실제로 중국을 여행했는지는 불확실하며 사실이 아닌 것으로 주장하는 학자들도 많다.

 북아프리카로 돌아간 뒤 사하라 사막을 여행, 나이저(江)에 이르렀으며, 30년에 걸친 여행거리 12만 km의 여행기 <도시들의 진기함, 여행의 경이 등에 대하여 보는 사람들에게 주는 선물>(1356)을 남겼다. 각지의 학자·수도사와 친분을 나누었으므로 그의 기록은 매우 풍부하며, 14세기 중엽의 이슬람사회를 잘 부각시켜 사료로서의 가치도 크다.


 





 오늘날 서구의 동양학 연구자들은 이븐 바투타가 자신이 구술한 지역을 모두 방문하였다고 보지 않고 있다. 자신이 직접 방문하지 않은 지역의 이야기는 이전에 그 곳을 방문한 다른 여행자들의 이야기를 참고하였을 것이라고 보는 데, 예를 들면 볼가강을 따라 불가르를 방문한 여정의 이야기는 이븐 바투타의 다른 지역 방문 이야기와는 매우 다르게 서술되어 있고 , 예멘 방문 기록도 의심가는 부분이 있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는 중국 방문도 실제로 한 것이 아닐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의구심들에도 불구하고 이븐 바투타의 여행기가 14세기 이슬람 세계에 대한 중요한 자료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

 이븐 바투타는 여행기 곳곳에서 서로 다른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문화충격을 기록하고 있다. 예를 들면, 이븐 바투타는 아내가 남편에게 봉사하는 것을 당연시하는 회교 문화에서 자라났지만, 투르크인이나 몽골인들이 남성이 여성의 종이 된 것처럼 존중하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이 외에도 이븐 바투타는 몰디브 제도나 사하라 남부에서 거의 벌거벗은 옷차림을 하고 사는 모습이나, 아프리카 서부의 식인 풍습 등도 기록하였다.

 여행기를 구술한 뒤 이븐 바투타가 어떻게 살았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 이븐 바투타는 말년에 모로코의 법관으로 생활하였으며 1368년(또는 1369년)에 사망하였을 것으로 추측될 뿐이다.

 여행기 도중에 이븐 바투타는 이렇게 고백한다. “사실 알라께 감사를 드리거니와, 현세에서의 나의 욕망, 즉 대지를 여행하려는 욕망은 이미 실현된 셈이다. 내가 알기로는 이 방면에서는 그 누구도 도달하지 못한 경지에 나는 도달했다고 감히 자부한다. 이제 남은 것은 내세의 일뿐이다. 그러나 나는 알라의 자비와 관용 속에 낙원에 들어가려는 나의 욕망이 필히 실현되리라는 강렬한 희망을 가지고 있다.”([여행기], 1권, 284쪽) 이븐 바투타가 과연 본인의 소원대로 죽어서 낙원에 들어갔는지 여부를 우리로선 알 길이 없다. 하지만 만약 그가 정말로 소원을 성취했다면, 이븐 바투타는 아마 이 세상에 살았던 어느 누구보다도 더 오랜 세월, 더 오랜 여정 끝에 낙원에 도착한 사람이 아니었을까 한다.